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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지워진 세계, 당신의 일상에 연대를

내일이 지워진 세계, 당신의 일상에 연대를

2026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영화 <정거장>  고백하자면 나는 예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고작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난민이라는 키워드로 대표되는 얄팍한 이미지뿐.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영화 <정거장>을 보겠다고 자리에 앉았을 때는 물론이고, 영화 속에서 파란 깃발과 주황 깃발로 대표되는 두 세력이 이란 같은 나라의 수니파와 시아파를 상징하는

By 윤명주 - 사적인 지각변동
비비안 마이어 Vivian Maier

비비안 마이어 Vivian Maier

"꿈이 있습니까?" 소셜 미디어 릴스를 넘기다 길 가는 이들에게 불쑥 꿈을 묻는 인플루언서의 영상을 보았다. 어느 정도의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꿈이라면 흔쾌히 들어주며 얼마 후 훈훈하게 콘텐츠를 마무리한다. 문득 길을 걷다 누군가 내 앞을 막아서며 꿈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대답할 수 있을까. 먹고사는 일에 치여

By 마침 - 명프로젝트 & 시필
우드 와이드 웹

우드 와이드 웹

[청소년 정신건강 칼럼] 숲속의 나무들은 혼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각자의 뿌리, 각자의 줄기, 각자의 잎. 서로 닿지 않은 채 홀로 견디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땅 아래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드 와이드 웹(Wood Wide Web)이다. 1997년 네이처지의 표지를 장식했던 시마드 삼림생태학 교수의 연구 내용에

By 김지혜 - 4등을 위한 글
중력을 잃은 언어 (7) - 하나

중력을 잃은 언어 (7) - 하나

미나의 개인 인큐베이터 안으로 두드리는 진동음이 빠른 박자를 만들었다. 새벽에 겨우 잠든 미나는 억지로 눈에 힘을 주어 빛을 받아들였다. 타미가 헤매는 미나를 억지로 부축하여 일으켰다.  - 아직 수면 시간인데 미안해요. 그런데 급해서요. - 아, 괜찮아요. 무슨일인데요? - 조이가 없어졌어요.  미나는 벼락을 맞은 듯 정신이 확 들어왔다. 정신없이 밀실로 달려갔다. 조이를

By 이안 -이 안의 숏텐츠
흔적. 남겨야 하는, 지워야 하는

흔적. 남겨야 하는, 지워야 하는

창가에 앉아 밝게 빛나는 종이를 바라본다. 짧게 이어가는 손길로 조심스레 스케치한다. 그려진 선을 따라 춤추듯 여러 빛깔로 덧칠한다. 마음이 머문 그림을 바라보며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나만의 개성이 새겨진 그 흔적을 고스란히 남겨둔다. 눈을 돌려 햇빛이 깃든 거실 한가운데를 바라본다. 보이지 않던 발자국이 희미하게 드러난다. 탁자에 마시고 올려 둔 유리잔에 입술

By 이지선 - 햇살 좋은 창가
12. 탈주 스캔들 (12) -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것 같은 상황

12. 탈주 스캔들 (12) -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것 같은 상황

인하의 눈매가 미세하게 찡그려졌다. 그렇잖아도 몇 시간에 걸쳐 해진과 함께 주변을 싸그리 훑은 참이었다. 엔진실, 부엌과 세탁실 등등. 애초에 선장과 함께 탑승한 승무원이 묵으며 일정 기간 생활할 걸 상정하고 만들었을 공간인 게 뻔해 보인다. 그런데도 누가 생명체만 골라 증발시킨 것처럼 안에 사람이 없는 게 신기했다. 과장 좀 섞어 어디 인적

By 가넷베리Garnetberry - 가넷베리의 숏텐츠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나는 별 탈 없이 살아간다. 헤벌쭉 웃는 얼굴을 한 그저 밝은 사람, 그게 나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삶을 살아가며 누군가 겪는 일을 나도 한두 개쯤 경험하며 살아왔다. 작년에 쓸개 제거 수술받았지. 반복된 유산과 임신으로 치질수술도 두 번이나 받았지. 지천명을 내후년에 앞두고, 완경을 맞이했지. 아픔은 희미하게 남겨진 조각 하나뿐이길 바랐다. 말 주머니에

By 이지선 - 햇살 좋은 창가
이미지 출처 : ⓒ 영화 《오디세이》 (Universal Pictures, Syncopy) Photo by 이표

감히 세상을 다스리려 할 때 _ 영화《오디세이》

※ 현재 상영 중인 영화 《오디세이》의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 방송사에서 취재 나온 기자가 다가와 인터뷰를 요청했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유물이 전시된다는 소식에, ‘무도 키즈’ 이전 ‘홍은영 키즈’였던 또래 아이들이 현장을 가득 채웠다. 엄마는 등을 떠밀며 말했다. “신간 나올 때마다 서점으로 달려갔어요. 얘는 모르는 게 없으니 물어보세요.

By 이표(李表) - 표류일지
원영적 사고 vs 정민적 사고

원영적 사고 vs 정민적 사고

유행이 한참 지났겠지만 원영적 사고에 대해 한마디 하겠다. 얼마 전까지 사람들은 대개 원영적 사고의 바탕이 삶을 대하는 좋은 태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사고하는 장원영이라는 아이돌 가수를 칭송하는 얘기도 들렸다. 장원영에 대한 개인적 심상은 제쳐두고 만사에 긍정 회로를 돌리는 게 한국인들에게 유독 필요한 방식이라는 점은 나로서도 인정하는 바이다.

By 윤명주 - 사적인 지각변동
테시투라 - 다음 중 가장 적합한 대응을 고르시오

테시투라 - 다음 중 가장 적합한 대응을 고르시오

시선은 앞을 향해 있었지만 귀는 옆을 향해 열려 있었다. 식당 백반을 앞에 두고, 지인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옆 테이블의 깔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비꼼과 농담 사이, 그 대상이 나와 지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밥을 다 먹었으면 빨리 나가든지 해야지, 괜히 손님 놓쳐 버렸네.” “언니처럼 주인 걱정까지 해주는 손님이 어딨어. 하하하.” 나는 아무

By 윤명주 - 사적인 지각변동
지금-여기, 당신이라는 숲의 온기

지금-여기, 당신이라는 숲의 온기

[청소년 정신건강 칼럼] 숲을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위를 올려다보게 된다. 하늘을 향해 뻗은 키 큰 나무들. 그 아래로 햇빛을 조금씩 나눠 받으며 자라는 중간 키의 나무들. 그리고 땅 가까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곳에서 바위와 흙 사이를 조용히 채우는 이끼. 숲은 키 큰 나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각자의 역할이 있다. 큰

By 김지혜 - 4등을 위한 글
포스트잇 : 편린

포스트잇 : 편린

나는 머릿속이 뒤죽박죽 할 때 포스트잇을 꺼내든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도, 당장 오늘 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도.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것보다 눈앞에 모든 내용을 무당이 쌀점치듯 흩뿌려놓으면 확실히 고민과 갈등의 시간이 단축된다.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소재가 정해지고 취재가 끝나면 촬영구성안을 작성한다. 취재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노트북 화면

By 서사이 - 도구의 사생활
모래 뺏기 놀이

모래 뺏기 놀이

하나뿐인 나를 나눈다. 보육에 나누고, 돌봄에 나누고, 나를 찾는 일에 조금 남겨둔다. 아들딸 셋, 다정한 남편, 양가 부모님 전부를 가졌지만 정작 나를 찾는 일에는 남은 것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배고프다는 한마디에 학교 준비물을 챙겨야 한다는 말에 막힌 코를 연신 풀어대고 침을 삼키며 멍한 귀를 뚫어보려는 행동에 여기저기 쑤시고 아파서 병원에

By 이지선 - 햇살 좋은 창가
강주룡

강주룡

강주룡

며칠 전 통장에 찍힌 월급 액수를 보고 계산기를 누르는 손가락이 바빠졌습니다. 어딘가 헛헛하다 싶더니 역시였습니다. 지난달 명세서와 한참을 눈싸움 하며 따져본 끝에 마침내 덜미를 잡았습니다. 주휴수당 항목이 문제였습니다. 치킨 몇마리 값이 사라질 위기입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다 일단 근로기준법 조항을 검색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권리의 출발점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 머릿속 노동운동의

By 마침 - 명프로젝트 & 시필
중력을 잃은 언어 (6) - 여섯 개의 점

중력을 잃은 언어 (6) - 여섯 개의 점

코마 상태인 조이가 말을 한다는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이주는 도망치듯 무언가를 찾으러 간다며 달려 나갔다. 밀실 상태 등이 붉게 번쩍거렸고, 조이의 몸이 뒤틀렸다. 이번엔 진통제를 투약했지만, 경직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바이털 수치를 확인하는 사이 조이와 눈이 마주쳤다. 텅 비어 있는 눈동자가 말하고 있다고 느낀 건 처음이었다.  - 조이씨,

By 이안 -이 안의 숏텐츠
ⓒpixabay

11. 탈주 스캔들 (11) - 어지간하면 딴 데 힘 안 쓰려 했는데

흔하고 익숙한 복도식 아파트. 복도 끝에서 세 번째 집으로 들어가면 ‘삼촌’과 둘이 살았던 집이 나온다. 해외 출장이 잦았던 부모님을 대신해 자주 돌봐주셨던 분. 눈앞에 선명하게 시큰대는 한 사람을 떠올리던 인하의 눈가가 찡그려졌다.   - 형사 일을 하겠다고? - 네, 이미 발령났어요. - 뭐라고?   진로를 결정한 뒤 말을 전하자 혀를 내두르는

By 가넷베리Garnetberry - 가넷베리의 숏텐츠
이미지 출처 : Photo by 이표

뜨개질

예쁜 쓰레기의 미학 _ 뜨개 인형

뜨개질을 취미라고 말할 수 있을 때쯤, 원칙을 하나 세웠다. 사용(使用)하지 않을 거면 뜨지 않는다. 실질적인 용도가 없으면 뜨지 않겠다는 말이다. 당연한 명제 같은데도 지키기 어렵다. 뜨개 웹사이트는 신상 실과 도안을 수시로 내놓고, 유튜브 알고리즘은 유행하는 ‘토마토 가방’ 도안으로 나를 안내한다. 하지만 내 옷걸이에는 이미 형형색색의 뜨개 가방이 걸려

By 이표(李表) - 표류일지
타인의 상처를 어떻게 읽어 낼 것인가

타인의 상처를 어떻게 읽어 낼 것인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인터뷰이가 고통을 삼키고 있다는 것을. 스물다섯 살 난 아들을 의료사고로 잃은 어머니가 아들의 사고 현장이 담긴 CCTV 영상을 한 프레임씩 돌려 보면서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했다. 뻔한 문장을 기사에 담기 위해서 나는 기어이 그 질문을 뱉었다. 예상했던 답변이 한숨을 통과해 나오자 나는 안도감과 동시에 자괴감을 느꼈다.

By 윤명주 - 사적인 지각변동
잠시 내려놓고 떠나자

잠시 내려놓고 떠나자

울음을 삼킨 채 떨리는 입술을 깨문다. 소리치고 싶지만, 입안을 맴도는 말을 삼킨다. 몇 번이고 꺼냈던 말은 끝내 닿지 못하고 다시 내 안으로 돌아온다. 그럴 땐 마음을 잠시 쉬게 할 나만의 피서지를 떠올린다. 따스한 햇볕 아래 눈을 감고 시원한 물결 속으로 발끝을 내밀어 귓가를 간지럽히는 바람 소리 발가락 사이를 살랑대는 물살

By 이지선 - 햇살 좋은 창가
전설의 시 창고-시 못쓰는 밤

시창고

전설의 시 창고-시 못쓰는 밤

예쁜 유리잔 속에 잘 영근 달 하나 담가 컴퓨터 앞에 놓아두고 . . . 아무 말도 고이지 않은 맑은 수면 . . . 키보드 위에 가지런히 모아놓은 손가락들 꼼지락꼼지락 눈치만 보다 슬그머니 거리를 넓힌 검지 끝에 시작되는 세상 구경 부업삼아 회사 차려 폐업까지 시켜보고 갈 길 잃은 내 마음 심리 파악 완료 주인 찾은 강아지 소식에

By 마침 - 명프로젝트 & 시필
그라프스톤 : 발가벗고 산다는 건

그라프스톤 : 발가벗고 산다는 건

연필은 모두 옷을 입고 태어난다. 나무라는 옷이다.  그러나 그라프스톤은 태초의 아담처럼 처음부터 발가벗고 세상에 나왔다.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을 숨기지 않은 채. 나는 진한 농도의 연필을 좋아한다. 연필이나 샤프심을 살 때 항상 2B를 사곤 했는데 좋아하는 연필가게에서 6B연필을 발견했다.  여기서 B는 Black. 앞에 붙은 숫자가 클수록 흑색이 짙고 그만큼 무르다.

By 서사이 - 도구의 사생활
여름은 마음도 데운다

여름은 마음도 데운다

여름은 기온만 오르는 계절이 아니다. 몸은 햇볕을 받아 뜨거워진다. 마음은 흘려보내던 한마디에도 들끓는다. "네가 뭘 알아?" "너는 몰라도 돼." "네가 제일 잘 알잖아." "네 생각이 궁금해." 같은 입에서 나온 말이라도 온도는 전혀 다르다. 갑자기 내리꽂히는 소나기처럼 감정의 물살에 휩쓸렸다. 달아오르는 것은 살갗만이

By 이지선 - 햇살 좋은 창가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

연일 뜨거운 날씨가 계속됩니다. 아무리 한여름이라지만, 새벽과 저녁의 공기까지 침범한 열기는 심상치 않습니다. 이럴 때 길가에서 만나는 나무 그늘은 생존을 위한 적당한 쉼터가 되어줍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피할 수 있는 나무 밑이 사라져갑니다. 가게 간판을 가린다는 이유로, 낙과가 바닥을 더럽힌다는 이유로, 편의에 방해가 된다는 온갖 이유를 붙여 우리보다 오래 살아온 나무가

By 마침 - 명프로젝트 & 시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