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전환 좀 해볼까?

기분 전환 좀 해볼까?
ⓒ 2026. 이지선. All rights reserved.

세탁물이 한쪽으로 쏠렸다는 UE(불균형) 에러 코드가 깜빡였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청소기를 돌리다가도 번번이 멈춰 서서 세탁기를 확인하느라 나의 외출 계획에 자꾸만 잡음이 났다. 집안일을 마치고 삼청동 미술관 무료 전시를 관람하려던 계획에 실타래가 엉켜 풀리지 않았다. 햇살 가득한 거리를 선글라스를 끼고 거니는 여행자를 상상했다.

여행 목적지를 먼 곳이 아닌 가까운 곳으로 변경했다. 키가 작은 나의 눈높이를 올려주는 힐을 신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또각또각 박자를 맞추며 걸었다. 서점에 들러 예전에 즐겨보던 화려한 패션잡지를 한 권 사고, 그 길로 발걸음을 돌려 전통시장으로 향했다. 한 손에는 보그 잡지를, 다른 한 손에는 저녁 밥상에 올릴 대파와 애호박을 든 채.

계획과는 다르게 흘러간 하루. 비록 장소에 맞는 옷차림은 아니었지만, 나를 위한 외출인 건 분명했다. 나는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낸 화보를, 자연 스스로 만들어낸 양식거리를 품은 시간을 읽고 돌아왔다.

여행하듯 거리를 거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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