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탈주 스캔들 (10) - 살살해요, 형사님
“아, 모른 척 넘어가시는 줄 알았는데.”
“그럴 수 있겠냐.”
인하는 허탈하게 한숨을 내쉬면서 좀 더 거리를 좁혀 다가온 해진을 곧게 응시했다.
낯선 데서 눈을 뜨자마자 수갑 하나로 해진과 묶여 있던 손목이 풀린 걸 눈치챘다. 처음엔 해진의 짓인가 싶었으나, 그랬으면 같이 배를 타는 대신 진즉 튀었을 것 같았고.
“아시잖아요. 수갑 열쇠는 형사님이 갖고 계셨거든요.”
심지어 열쇠고 뭐고, 옷 보푸라기 하나 건드린 흔적도 없었다. 이렇게 깔끔하게 원하는 것만 달성해서 빠질 수 있는 건가. 어지간히 솜씨가 좋은 게 아니었다. 인하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그냥 납치당한 거였으면 말을 안 했어, 내가. 뭐 살면서 잠자리 바뀌는 거야 하루 이틀 일도 아니긴 한데, 이건 좀 낌새가 이상하잖아?”
인하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단서는 판의 크기였다. 일단 전직 형사에 현직 간수인 인하의 경우 강력반과 해문 교도소 대내외적으로 적대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짚이는 게 있으세요?”
“으응, 있어봤자 남의일 정도인데?”
남의일이야 뭐, 끽해야 뒤에서 욕하는 정도였지 절대 이 정도는 못 감당할 꺔냥의 인간이었다.
“하긴, 그 사람은 제가 봐도 소인배처럼 보이긴 했죠.”
해진이 낱개로 포장되어 있던 캡슐 버터의 포장지를 까서 빵 위에 잘라 올리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튼 넌 어때, 짚이는 구석 없는 거지?”
“예, 그렇다니까요.”
“나중에 딴 소리 하기만 해봐. 안 그래도 형 동생하던 사람, 꽤 많았던 걸로 알고 있는데.”
사형수인 해진 주변을 떠올려도 딱히 짚이는 건 없었다. 선천적 가족이고 후천적 가족이고, 죄다 포함해도 완벽하게 들어맞는 용의자가 없었다.
인하는 그쯤에서 몸을 돌렸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으나 또 아주 납득이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몸에 남은 증상들로 미루어보건대 독한 수면제를 쓴 듯하고,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술수를 부린 거라면…….
인하는 머리가 복잡한 만큼 몸을 움직였다.
찬장이며 선반, 갑판 마루 이중 구조로 감춰진 바닥까지. 벙커처럼 커다란 선실 내부를 돌며 상상할 수 있는 사각지대일 듯한 곳들을 샅샅이 뒤졌다.
“이런 것만 봐도 역시, 한평생 쇠창살 너머에 갇힌 짐승들이나 들여다보면서 살긴 아까운 재능인데 말이죠.”
“나불대지 말고 너도 일 좀 해, 어?”
“계속 형사일 하셨어야 되는데, 안 그래요?”
돌발상황에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신속하게 시작된 인하의 수색 과정을 지켜보던 해진이 휘파람을 불었다. 수확이 있었다. 선실 내부의 최신식 보안 장치의 흔적을 체크하는 인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렇게 수색하는 동안 다시 확인할 게 있다며 식당칸을 다녀온 해진이 새로 뭔가 요리를 해왔다. 뭐라 설명해줬지만 인하 눈엔 김이 오르는 빵 조각일 뿐이었다.
“활약하는 건 좋지만 좀 드시면서 하세요.”
인하는 해진이 직접 빵을 잘라 입에 넣어주려는 걸 받아 우물우물 씹었다. 버석한 가루가 입안에 흩어지는 바람에 입안이 쓸렸다, 하필 얄궂게도 언젠가 한 마디가 겹쳐 들렸다.
「뭐든지 배부터 채우고 해야지, 인하야. 안 그러냐?」
오래전 스스로 세상을 등진 삼촌의…….
아니, 자살로 위장해서 숙청당한 사람의 말이었다.
순간 목이 막혔다. 그와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인하가 십대 시절 방황할 때 조언을 아끼지 않으면서 진짜 가족처럼 보듬어주었던 옛 스승의 얼굴이 떠오른다. 여느 현장에나 남아 있는 지문처럼 그녀에게 남아 있는 흔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궁금한 게 하나 더 있어요.”
“묻지 마.”
“음, 궁금한데요.”
“그럼 그냥 궁금해하기만 해.”
떠올리기만 해도 아파지는 지점들이 있다. 소위 말하는 지뢰인 부분들. 그런 것쯤 살다 보면 낌새를 감지하는 요령이 생겨 피할 수 있었다.
“주 형사님께선 왜 검도를 그만두셨어요?”
그러나 충분히 좋게 좋게 넘어가도 되는 부분이었음에도 이 짐승 같은 놈은 고개를 디밀고 있었다. 인하는 어이가 없어 그에게 손을 휘휘 저었다.
“못 들었어? 묻지 말라니까?”
“혹시 이것도 흔해 빠진 술안줏거리인가요?”
지금까지 몇 번이나 말한 것처럼 시답잖은 일의 범주에 속하냐고, 호기심에 달아오른 눈이 검게 빛나는 걸 보며 인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별일 아니긴, 개뿔이. 왜 강력계 형사일을 마무리한 다음, 굳이 외딴섬에 있는 해문 교도소의 간부가 되었는지, 감일지 본능일지 인하 인생 중 터닝포인트인 부분들을 아무렇지 않게 짚어내는 해진이었다. 덕분에 속이 긁혔다.
“하긴, 우리 현실적인 형사님에겐 뭐가 중요하셨겠어요. 어릴 적 꿈 같은 것도-”
“말 조심해.”
인하는 해진 쪽으로 손을 뻗었다. 순간 확 감정이 격양됐다. 이마에 뜨끈하게 열이 올랐다.
“나라고 뭐 없었을 것 같아?”
“아, 이런, 살살해요, 형사님.”
그러나 빙긋 웃는 그는 반격은커녕 조금도 저항하지 않았기에 그대로 선실 벽 쪽에 밀려났다. 인하가 한 뼘 넘도록 큰 해진을 덮친 모습이 됐다.
“목숨 바쳐서라도 지키고 싶었던 게, 없었을 것 같냐고?”
해진을 붙잡은 손이 떨렸다. 소매에 자잘하게 주름이 갔고, 툭, 도르륵, 소리를 내며 해진의 옷에 달려 있던 단추가 하나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