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어디까지일까?
우리에게 가족은 어디까지일까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한집에서 삶을 나누는 사람들, 나와 남편, 그리고 아이가 있겠지요. 그리고 그 바깥으로는 부모님과 형제자매, 할머니와 할아버지처럼 촌수로 이어진 관계들이 있겠지요. 남편을 기준으로 하면 어머니,아버지, 그 위로 이어지는 할머니까지 나를 기준으로 하면 엄마, 아빠까지 그런데 문득 궁금해져요. 우리가 생각하는 가족의 범위는 모두 같을까요?
책 읽는 엄마, 책 짓는 엄마. 마음을 담아 덧칠해가는 그림과 이야기를 전합니다.
우리에게 가족은 어디까지일까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한집에서 삶을 나누는 사람들, 나와 남편, 그리고 아이가 있겠지요. 그리고 그 바깥으로는 부모님과 형제자매, 할머니와 할아버지처럼 촌수로 이어진 관계들이 있겠지요. 남편을 기준으로 하면 어머니,아버지, 그 위로 이어지는 할머니까지 나를 기준으로 하면 엄마, 아빠까지 그런데 문득 궁금해져요. 우리가 생각하는 가족의 범위는 모두 같을까요?
부부의날
순정으로 불타는 사랑으로 그러다가 전우애로 그러다가 애증으로 그러다가 측은함으로 다시 애정으로 다시 사랑으로 다시 전우애로 그러다가 미움으로 다시 애정으로 부부는 A였다가 B였다가 A+B, A-B, A*B, A/B 사칙연산을 하고 혼합계산을 하는 답을 찾고 만들어가는 사이.
학부모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작자의 마음입니다. 저와는 다르게 키우시는 부모가 많음을 알지만, 필자가 느낀 쉽지 않은 심정을 전달하고 싶어서 표현해 봤습니다. 틀리다가 아닌 다르다고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부모가 되었다. 그것도 3명의 아이를 가진 부모가. 내가 과연 이 어린아이들을 책임질 수 있을까? 매 순간 고민한다. 먹고 자고 싸고, 기본 생존에 필요한
가족은 또 다른 나, 자신인 듯 나와는 다른 존재이다. 나인 듯 닮아 있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은 사람들이다. 서로 다른 A와 B가 만나 DNA로 연결된 생명체 A∩B를 만든 인연이다. 밑바탕이 같은 뿌리를 이루고, 그 안에서 각자의 가지를 펼치며 자라난다. 외모도 습관도 조금씩 닮아가고 또 달라지며 서로의 모양을 만들어 간다. 가족은
같은 내 얼굴이지만 만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이에게는 징징거리느라 울상인 얼굴로 어떤 이에게는 정신 놓고 웃는 주름진 얼굴로 어떤 이에게는 세상 이야기로 미간에 내 천(川)자를 그린 얼굴로 어떤 이에게는 책임감 가득한 다부진 얼굴로 어떤 이에게는 눈동자에 힘 잔뜩 빼고 멍한 얼굴로 어떤 이에게는 빛이 반짝반짝 배움 가득한
무언가를 갖고 싶은 소비 욕구가 올라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책을 사거나 빌린다. 책을 펼치고 앉아 있으면 괜히 더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누군가에게 “내 취미는 책 읽기예요.”라고 말할 때도 조금은 있어 보이는 것 같아서 좋다. 베스트셀러나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을 굳이 고르지는 않는다. 그저 내
기억 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 날이 있다. 2014년 4월 16일. 그날, 내 아이는 뱃속에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고 다른 누군가의 아이는 깊은 바다로 가라앉고 있었다. 고위험군 산모였던 나는 임신 중독 검사를 받기 위해 서울대학교 병원을 찾았다. 금식을 한 채, 정해진 시간마다 액체를 마시며 아이를 위한 검사를 이어갔다. 검사를 마친 뒤 친정엄마와
어느 순간, 식목일은 법적 공휴일에서 빠져 있었다. 푸르름을 기념하던 하루도 함께 사라졌다. 초록을 즐기던 날은 기억 속에만 남았다. 나무를 심고 싶어도 아무 데나 심을 수는 없다. 땅은 사적 재산이고, 나무는 허락이 있어야 자란다. 묘목은 조경이 되고, 개인이 나무를 심는 일은 선택지가 되었다. 환경을 위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하고 싶은 일은 할
흙 속에 오래 머물러 있던 나는 살랑이는 봄바람을 타고 조용하게 새싹이 솟구쳐 오르는 순간을 꿈꾸고 있다. 노란색 꽃이 될지, 붉거나 자주색 꽃이 될지, 어떤 모습으로 피어날지는 아직 알지 못한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조심스럽게 바깥으로 나가보려 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어쩌면 나는 화려한 꽃이 아니라 오래 자라는 나무일지도 모르니까. 계절을 몇 번이나
정해진 모양 없이 그저 끄적이는 시간이 좋다. 손이 이끄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선을 긋다 보면, 어느새 무의식 속으로 조용히 스며든다. 그곳에서는 마음이 흐르는 쪽으로, 아무 거리낌 없이 고를 수 있다. 누구에게도 상처를 남기지 않는 선택을. 온전히 나만의 세계이기에 더 편안하다. 보이는 모든 색을 꺼내어 천천히 칠하고, 그 위에 다시
3월의 새 학기, 가족들을 보내고 난 뒤 집 안에 남은 아침 햇살이 나를 천천히 깨웠다. 창가에 앉아 집안을 한 번 둘러봤다. 햇살 속에서 어제는 보이지 않던 먼지들이 하나둘 떠다녔다. 아이들을 보내고 나면 창가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마시고 싶지만, 눈앞의 작은 먼지들이 나를 먼저 움직이게 했다. '그래, 이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의 상징은 '빵과 장미'입니다. 빵은 노동권을, 장미는 참정권을 뜻합니다. 그 상징이 외쳐진 이후,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디쯤 와 있을까요 ? 2026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여성의 날에 무엇을 말하고 싶을까요 ? 여성의 노동권과 참정권을 가진 21세기, 그렇다면 이제 충분한 걸까요 ? 일과 양육을 함께하고 싶은 여성은 여전히 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