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 명프로젝트 & 시필

마침내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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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동, 노란 블루

부암동, 노란 블루

이른 가을인가 했다 어깨 맞댄 나무들이 어서 오시게 가지 흔들어 주던 하늘 반쯤 가린 부암동 비탈길 흩뿌리던 잎에 홀려 시큰거리는 무릎도 잊고 걸었더랬지 나무와 나눈 말이 곧 이름이 된 사람 그 뜰에 기댄 은행나무 둘의 대화가 잎마다 노란 물이 되어 돌담을 넘고 골목 안으로 번지던 화양연화 아직 여름의 기척이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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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시작이 없었다면

박완서의 시작이 없었다면

공모전의 계절이다. 칼바람이 맹위를 떨치는 겨울 신춘문예가 지나고, 코끝을 스치는 바람에도 엉겨 붙은 감정의 결정이 맺히기를 기다리는 공모전이 여기저기 열린다. 유려한 문체로 문단을 휘어잡는 젊은 작가들이 늘어나는 동안, 지천명을 앞둔 나는 문학 '학도'로만 몇 년째인지 모른다. 이렇게 기약 없는 일을 해도 되는 걸까, 끊임없이 의심하다가도 그 주저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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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시콜과 나이팅게일의 문

메리시콜과 나이팅게일의 문

2018년, 일본 열도를 뒤흔든 도쿄 의과대학 입시 조작 사건은 충격이었다. 대학 측이 여성 합격자 수를 줄이기 위해 10년 넘게 여성 수험생들의 점수를 일괄 감점해 온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 그 사실보다 더 입을 다물 수 없게 한 것은 현직 여성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였다. 응답자의 65%가 여성 수험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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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마리 개의 입

아홉 마리 개의 입

구부정하게 웅크린 개가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이 배를 낮게 깔고 있어 오늘 밤은 누군가 흠뻑 젖겠군 구덩이를 파고 있던 개가 콧 등의 흙을 털어낸다 구역질이 나 사람들이 또 무언가를 묻고 갔어 구경만 하던 개는 마른 꼬리를 흔들고 눕는다 구태여 파헤칠 것 있나 비 오면 흙이 알아서 입 다물 텐데 구둣발에 차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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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나혜석

“조선 남성의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처에게 순결을 요구하면서 남의 처에게는 정조를 빼앗으려 하오. 남녀가 다 같이 불완전한 인간이요, 서로의 자유를 존중해야 할진대 어찌 여성에게만 순결의 멍에를 씌우려 드는가.” — 나혜석, 「이혼고백서」 (잡지 『삼천리』, 1934년 8월호·9월호 연재) 세기의 이혼 소식이 들려오고 포털과 유튜브는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누구의 잘못인지, 위자료와 재산분할은 몇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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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재구성

추억의 재구성

개와 늑대의 시간이었을 거야 사실 이보다 멋들어진 말을 찾지는 못했어 이건 모두의 말이야 네가 좋아한다고 너만 쓸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늘어진 나뭇가지가 사십 도쯤 기울어지고 있었던 것 같아 내 가르마와 반대 방향으로 불어대는 바람에 머리칼이 흐트러졌고 나는 슬슬 짜증이 났어 내 이마에 주름이 잔뜩 졌다며 너는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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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마이어 Vivian Maier

비비안마이어

비비안 마이어 Vivian Maier

"꿈이 있습니까?" 소셜 미디어 릴스를 넘기다 길 가는 이들에게 불쑥 꿈을 묻는 인플루언서의 영상을 보았다. 어느 정도의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꿈이라면 흔쾌히 들어주며 얼마 후 훈훈하게 콘텐츠를 마무리한다. 문득 길을 걷다 누군가 내 앞을 막아서며 꿈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대답할 수 있을까. 먹고사는 일에 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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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복날

복

들끓는 한복판 남김없이 속을 도려내 비워낸 품 안에는 쓰고 달고 맵고 떫은 사방에서 여문 것들을 차곡차곡 들여앉혀 품은 것들이 흩어질새라 두 손 두 발 여미고 숨 한자락도 토하지 못하게 안으로 안으로 뼈는 살을 놓아주고 살은 제 모양을 내려놓으면 허물어진 것들 사이로 켜켜이 밴 것이 흘러나와 마침내 마주 앉은 이의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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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룡

강주룡

강주룡

며칠 전 통장에 찍힌 월급 액수를 보고 계산기를 누르는 손가락이 바빠졌습니다. 어딘가 헛헛하다 싶더니 역시였습니다. 지난달 명세서와 한참을 눈싸움 하며 따져본 끝에 마침내 덜미를 잡았습니다. 주휴수당 항목이 문제였습니다. 치킨 몇마리 값이 사라질 위기입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다 일단 근로기준법 조항을 검색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권리의 출발점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 머릿속 노동운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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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시 창고-시 못쓰는 밤

시창고

전설의 시 창고-시 못쓰는 밤

예쁜 유리잔 속에 잘 영근 달 하나 담가 컴퓨터 앞에 놓아두고 . . . 아무 말도 고이지 않은 맑은 수면 . . . 키보드 위에 가지런히 모아놓은 손가락들 꼼지락꼼지락 눈치만 보다 슬그머니 거리를 넓힌 검지 끝에 시작되는 세상 구경 부업삼아 회사 차려 폐업까지 시켜보고 갈 길 잃은 내 마음 심리 파악 완료 주인 찾은 강아지 소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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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버터플라이 힐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

연일 뜨거운 날씨가 계속됩니다. 아무리 한여름이라지만, 새벽과 저녁의 공기까지 침범한 열기는 심상치 않습니다. 이럴 때 길가에서 만나는 나무 그늘은 생존을 위한 적당한 쉼터가 되어줍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피할 수 있는 나무 밑이 사라져갑니다. 가게 간판을 가린다는 이유로, 낙과가 바닥을 더럽힌다는 이유로, 편의에 방해가 된다는 온갖 이유를 붙여 우리보다 오래 살아온 나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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