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구두를 신고 설거지한다
스틸레토 힐(stiletto heel),
발끝이 뾰족한 구두로 또각또각 바닥을 울리며
바깥 세상을 향해 걷던 날들의 기억은
나를 알리는 일정한 방식이었다.
피나포어 에이프런(pinafore apron),
주름 장식이 달린 드레스 같은 앞치마를 두르고
가족의 밥을 짓고, 집안을 돌보며 보낸 시간은
또 다른 나로 무장하는 옷에 흔적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일하는 여성이었지요.
그러나 아이 둘을 맡긴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
아이를 돌봐주시라고 말하기 어려웠어요.
그렇게 커리어 우먼에서 하우스 메이커가 되었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를 옆에서 돌볼 수 있는 내 선택이 좋았어요.
아이와 함께하는 작고 소중한 추억과 경험이 쌓여서
서로가 연결되어 있어서 좋았어요.
아이가 성장하는 순간을 내 눈에 다 담을 수 있었어요.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행복했어요. 지금도 추억이 많아 행복해요.
그런데 회사를 그만두고 소속이 없어진 나는 언제나 노는 사람이었어요.
집에 있는 사람은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사회생활이라고 할 만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어요.
가끔 일용직 업무를 하기도 하고,
틈틈이 자기 계발도 하고 자격증도 취득했어요.
그럼에도 대가 없는 노동만 하는 나는 집에서 쉬는 사람이 되고,
이름도 없었어요. 점점 작아졌어요.
엄마라는 직업을 가졌지만, 그것은 나를 말해주지 않았어요.
한때는 두 모습이 서로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앞치마를 두른 채 하이힐을 신고 있는 내 모습이 있다는 것을.
직업으로 나를 설명하기보다는
삶의 역할과 태도로 보여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내가 일하는 직장이 바뀌었을 뿐이다.
순환직 근무를 하고 있을 뿐이다.
집을 돌보고, 사람을 돌보고,
그 사이에서 나의 이야기도 함께 가꾸어 갈 뿐이다.

파란 앞치마를 두르고 파란 구두를 신은 꿈꾸는 엄마,
나는 불균형 상태에서 변수를 줄이며 균형을 찾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