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아닌 행동-에멀린 팽크허스트 (Emmeline Pankhurst)
영화 《에놀라 홈즈》를 보셨나요? 주인공 에놀라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엄마 유도리아 홈즈의 흔적을 추적합니다. 그 과정에서 마주한 진실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교양 있는 귀족 부인인 줄 알았던 엄마는 런던의 외딴 창고에서 화약을 제조하고 주짓수를 배우며, 기존의 판을 뒤흔들 거사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엄마 유도리아는 세상의 차별에 온몸으로 맞서던 비밀 서프러제트 suffragette(여성 참정권 운동가)였던 것입니다.
화려한 빅토리아 시대의 그림자 뒤편, 매연과 가난으로 뒤덮인 런던의 뒷골목에서 목숨을 걸고 폭탄을 만들던 엄마의 이야기는 영화 속 허구만은 아닙니다. 여성 참정권 운동을 주도한 핵심 조직 '여성사회정치동맹'을 이끌던 에멀린 팽크허스트. 그가 목격한 '구빈원'의 참상은, 훗날 그를 식탁 앞에서 두 딸과 함께 투쟁을 모의하는 투사로 바꿔놓았습니다.
20대까지만 해도 팽크허스트는 개혁적인 사상을 가졌지만, 비교적 우아하고 온건한 방식으로 활동하던 중산층 여성이었습니다. 하지만 1894년, 서른여섯의 나이에 맨체스터 구빈원의 감독관으로 선출되면서 그는 완전히 새로운 노선을 걷게 됩니다.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내팽개쳐진 시설 안에서 팽크허스트가 목격한 현실은 참혹했습니다. 남편에게 버림받아 갈 곳 없는 임산부들이 맨바닥에서 고통스럽게 아이를 낳고 있었고, 어린 소녀들은 제대로 된 옷도 입지 못한 채 노동을 착취당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법과 제도는 이들을 인간으로 대접하지 않았고, 보호할 안전망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 비참한 현장에서 팽크허스트는 깨닫습니다. 단순히 빵을 나눠주고 눈물을 닦아주는 동정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의 삶을 법적으로 지킬 수 있는 정치적 힘, 즉 투표권이었습니다. 서명 운동이나 평화적인 대화라는 우아한 관행은 이 참혹한 현실을 구제하기엔 너무나 한가하고 무력해 보였습니다. "여성에게 투표권이 없는 한, 이 비참함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는 확신이 박힌 순간, 그의 삶은 이론을 공부하는 사람에서 현장을 바꾸는 투사로 완전히 전환됩니다.
그 확신은 말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03년 팽크허스트가 창설한 여성사회정치동맹의 구호는 "말이 아닌 행동(Deeds, not words)"이었습니다. 청원과 연설로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구빈원에서 이미 뼈저리게 배운 뒤였기 때문입니다. 평화적인 청원과 연설이 철저한 무관심에 가로막히자, 동맹은 마침내 유리창을 깨고 우체통에 불을 지르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세상의 귀를 열고자 했습니다. 당연히 온 사회가 발칵 뒤집혔고, 테러라는 비난과 손가락질이 쏟아졌습니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오늘날까지도 거센 논쟁을 낳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평화적인 청원과 연설이 철저한 무관심에 가로막혔을 때, 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많지 않았습니다.
세 번의 투옥과 아흔 번이 넘는 단식 투쟁 속에서도 팽크허스트의 뜨거움이 꺼지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관념의 영역에 머무는 생각은 지치기 쉽고 타협하기 쉽지만, 온몸으로 들이받으며 체화한 현실은 결코 닳지 않는 사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1928년 6월 14일, 그는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불과 몇 주 뒤인 7월, 영국 여성들은 마침내 남성과 완전히 동등한 조건으로 투표할 수 있는 권리를 손에 쥐었습니다. 구빈원의 차가운 맨바닥에서 시작된 한 여성의 목격이, 삼십여 년의 시간을 건너 한 사회의 거대한 법과 상식을 뒤바꾼 것입니다.
오랜 관성을 깨부수고 지치지 않는 에너지를 얻는 법은 책상 위에 있지 않습니다. 매번 말만 앞세우다 이내 냉소로 돌아설 것인가, 아니면 삶의 현실 속으로 걸어 들어가 나만의 뜨거움을 체화할 것인가. 한여름의 볕보다 강렬했던 그들의 행동 앞에서, 이제 우리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차례입니다.

세상을 바꾸는데 관심이 없겠지. 이미 당신에게 딱 좋은 세상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