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코노
적정선을 넘지 말 것 _ '혼코노'
어느 평일 퇴근 시간, 지하철역 근처 사거리 보행자 신호가 한꺼번에 초록빛을 냈다. 모든 방향 차량이 멈춘 거리 위, 사람들이 사방팔방으로 건너갔다. 대각선 방향을 향해 발을 떼었을 때, 난데없는 고함이 들렸다. 사람들이 일제히 바라본 곳에는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말쑥한 옷차림의 여성이 있었다. 그는 허공을 향해 있는 힘껏 소리쳤다. 정확히 뭐라고
불안이 일상이 된 세대, 90년대생. 하루 종일 TV 앞에 있던 어린 시절을 지나며 보고·듣고·읽는 취향이 자연스럽게 쌓였다. 대중문화 속 장면을 빌려 사유한다.
혼코노
어느 평일 퇴근 시간, 지하철역 근처 사거리 보행자 신호가 한꺼번에 초록빛을 냈다. 모든 방향 차량이 멈춘 거리 위, 사람들이 사방팔방으로 건너갔다. 대각선 방향을 향해 발을 떼었을 때, 난데없는 고함이 들렸다. 사람들이 일제히 바라본 곳에는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말쑥한 옷차림의 여성이 있었다. 그는 허공을 향해 있는 힘껏 소리쳤다. 정확히 뭐라고
증언들
피가 샜다. 이불에 묻지 않아 천운이었다. 찬물에 속옷과 잠옷 바지를 담갔다. 짜증이 밀려왔다. 20년 넘도록 반복해 왔는데도 조금만 방심하면 이런 일이 생긴다. 나는 주기가 불규칙한 편이다. 캘린더 앱을 켜는 행위는 그저 습관일 뿐, 실제로는 몸의 신호로 시작일을 가늠했다. 이번엔 장마가 문제였다. 언제 산뜻했냐는 듯, 7월이 되자 내가 잘 아는 습한
사그라다파밀리아
성가족 성당,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중앙탑 '예수 그리스도의 탑'이 144년 만에 완공되었다. 건축가 가우디 사망 100주기에 맞추어 레오 14세 교황이 직접 참석해 축복식과 준공식을 진행했다. 생각보다 이른 ‘완공’ 소식에 놀랐다가 전체 완공은 아직 멀었다는 전망에 마음이 다시 가라앉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완공이면 좋은 게 아닌가. 왜
프리미어리그
꾸역승도 승이다. 우당탕 골도 골이다. 토트넘 홋스퍼는 시즌 마지막 경기를 1:0으로 이기고서야 겨우 프리미어리그 잔류를 확정 지었다. 6만 2천 관중석이 꽉 찼다. 처참한 경기를 차마 두고 보지 못하겠다던 팬들은,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경기장을 찾았다. 지난 시즌 유로파리그 우승컵을 축하하던 그 길에 다시 서서 선수들을 맞이하고 힘을 실어주었다.
동묘시장
현금 3만 원을 들고 주말 동묘시장에 갔다. 한 다큐멘터리에 나왔다며 엄마가 방문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어버이날이 하루 전이었으니 군말 없이 따랐다. 뉴트로 열풍과 함께 전통시장이 ‘힙’해진 것은 꽤 오래전이지만, 그중 동묘시장은 최근까지도 흐름이 유지되고 있었다. 내심 한번은 방문해 보고 싶기도 했다. 동묘시장에 가까워지자 그 시장의 원래 주인이었던 어르신들은 물론, 10대
커피는 꼭 스타벅스 걸로, 누구나 이름을 알 만한 명품 가방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기.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고 꿈꿨던 멋진 ‘커리어우먼’의 모습은 이러했다. 현실은 물론 영화 속에서도 허영심으로 매도되었던, 성공을 향한 여성들의 욕망이 매력적이었다. 개봉하고 20년이 지나서 다시 보니 내 사회 초년생 시절 지녔던 건방진
실패담은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친구들에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하자마자 부끄러움이 밀려 들어왔다. 필명도 밝히고 책 제목과 연재처 링크를 공유했지만, 어떤 무리에게는 주저했다. 지나가는 말로 가볍게 꺼내려던 마음과 달리, ‘사실은,’ 같은 호흡을 넣어 무려 ‘선언’을 해버렸다는 점은 같았다. 유난스러운 나의 성격을 인정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감히 네가?
20○○년 ○월 손에 익은 일은 머리를 복잡하게 쓰지 않아도 자연스럽다. 가장 먼저 커피 머신을 켠다. 우리 카페에서 가장 비싼 놈이라던 사장님의 말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 같다. 제빙기 얼음이 잘 채워졌는지 확인하고, 전날 마감 아르바이트생들이 곳곳에 뒤집어 말려 놓은 집기들을 제자리에 가져다 둔다. 화장실 휴지를 일부러 안 채워 놓는 것이
가슴이 철렁했다는 표현은 너무 진부하다. 그렇지만 이처럼 정확한 표현은 없다. 문자 속 “불합격”이라는 단어만 유난히 선명해 보였다. 또 탈락이다. 하긴 면접 전부터 기분이 이상했다. 오후 3시 면접에 적어도 5분 전에 와 있으라는 문자가 왔다. 공지가 없어도 15분 전에는 면접장에 도착해 있어야 한다. 나는 35분 거리의 면접장에 가기 위해 2시
인생의 갈림길이 많아질수록,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같은 후회가 많아진다. 더군다나 그 선택이 다른 사람의 설득 때문이라면 후회는 원망으로 바뀐다. 나에게는 그것이 제주행이었다. 몇 년 전 나는, 쉼 없이 일했던 직장을 그만두기로 했다. 작은 규모의 직장이었기에, 내가 발전하는 만큼 함께 성장하는 것이 눈으로 보였다. 그게 재밌어서 힘든 줄도 몰랐다. 그렇게
한국인에게는 한 해를 시작할 기회가 세 번 주어진다고 한다. 1월 1일, 설날, 3월이다. 어릴 때부터 새로운 환경에 진입하거나 새로운 사람들을 잔뜩 만나왔던 3월은 긴장감과 기대감이 공존한다. 양력과 음력의 시작을 모두 놓친 우리에게 3월은, 습관처럼 찾아온 ‘써드 찬스(third chance)’이다. 하지만 지금 난 이 기회마저 외면하고 싶다. 기대감이 사라진 자리에
표류일지: 불안 세대의 문화 기록 <표류일지>는 시작을 미루고, 선택을 의심하며, 시대를 표류하는 한 90년대생의 문화 기록이다. 대중문화 속 장면에서 내게 필요한 말을 찾아낸다. 작가 소개 이표(李表, Ipyo) ipyo.writer@gmail.com 불안이 일상이 된 세대, 90년대생. 하루 종일 TV 앞에 있던 어린 시절을 지나며 보고·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