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표(李表) - 표류일지

불안이 일상이 된 세대, 90년대생. 하루 종일 TV 앞에 있던 어린 시절을 지나며 보고·듣고·읽는 취향이 자연스럽게 쌓였다. 대중문화 속 장면을 빌려 사유한다.

이표(李表) - 표류일지
시장에서 파밍한 나라는 유물 _ 동묘시장과 풍물시장

동묘시장

시장에서 파밍한 나라는 유물 _ 동묘시장과 풍물시장

현금 3만 원을 들고 주말 동묘시장에 갔다. 한 다큐멘터리에 나왔다며 엄마가 방문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어버이날이 하루 전이었으니 군말 없이 따랐다. 뉴트로 열풍과 함께 전통시장이 ‘힙’해진 것은 꽤 오래전이지만, 그중 동묘시장은 최근까지도 흐름이 유지되고 있었다. 내심 한번은 방문해 보고 싶기도 했다.   동묘시장에 가까워지자 그 시장의 원래 주인이었던 어르신들은 물론, 1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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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조차 되지 못한 이후에 _ 소설《순례 주택》

에밀리조차 되지 못한 이후에 _ 소설《순례 주택》

커피는 꼭 스타벅스 걸로, 누구나 이름을 알 만한 명품 가방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기.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고 꿈꿨던 멋진 ‘커리어우먼’의 모습은 이러했다. 현실은 물론 영화 속에서도 허영심으로 매도되었던, 성공을 향한 여성들의 욕망이 매력적이었다.   개봉하고 20년이 지나서 다시 보니 내 사회 초년생 시절 지녔던 건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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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 스물여덟, 스물아홉, 서른이 된 사람들

Extra. 스물여덟, 스물아홉, 서른이 된 사람들

20○○년 ○월 손에 익은 일은 머리를 복잡하게 쓰지 않아도 자연스럽다. 가장 먼저 커피 머신을 켠다. 우리 카페에서 가장 비싼 놈이라던 사장님의 말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 같다. 제빙기 얼음이 잘 채워졌는지 확인하고, 전날 마감 아르바이트생들이 곳곳에 뒤집어 말려 놓은 집기들을 제자리에 가져다 둔다. 화장실 휴지를 일부러 안 채워 놓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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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빗소리 _ 농장 시뮬레이션 게임

4월의 빗소리 _ 농장 시뮬레이션 게임

가슴이 철렁했다는 표현은 너무 진부하다. 그렇지만 이처럼 정확한 표현은 없다. 문자 속 “불합격”이라는 단어만 유난히 선명해 보였다. 또 탈락이다.   하긴 면접 전부터 기분이 이상했다. 오후 3시 면접에 적어도 5분 전에 와 있으라는 문자가 왔다. 공지가 없어도 15분 전에는 면접장에 도착해 있어야 한다. 나는 35분 거리의 면접장에 가기 위해 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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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이나 걸릴 순 없으니까  _ 영화 <설득>

8년이나 걸릴 순 없으니까 _ 영화 <설득>

인생의 갈림길이 많아질수록,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같은 후회가 많아진다. 더군다나 그 선택이 다른 사람의 설득 때문이라면 후회는 원망으로 바뀐다. 나에게는 그것이 제주행이었다.   몇 년 전 나는, 쉼 없이 일했던 직장을 그만두기로 했다. 작은 규모의 직장이었기에, 내가 발전하는 만큼 함께 성장하는 것이 눈으로 보였다. 그게 재밌어서 힘든 줄도 몰랐다.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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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작 _ 영화 <스파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작 _ 영화 <스파이>

한국인에게는 한 해를 시작할 기회가 세 번 주어진다고 한다. 1월 1일, 설날, 3월이다. 어릴 때부터 새로운 환경에 진입하거나 새로운 사람들을 잔뜩 만나왔던 3월은 긴장감과 기대감이 공존한다. 양력과 음력의 시작을 모두 놓친 우리에게 3월은, 습관처럼 찾아온 ‘써드 찬스(third chance)’이다.   하지만 지금 난 이 기회마저 외면하고 싶다. 기대감이 사라진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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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일지: 불안 세대의 문화 기록

표류일지: 불안 세대의 문화 기록 <표류일지>는 시작을 미루고, 선택을 의심하며, 시대를 표류하는 한 90년대생의 문화 기록이다. 대중문화 속 장면에서 내게 필요한 말을 찾아낸다. 작가 소개 이표(李表, Ipyo) ipyo.writer@gmail.com 불안이 일상이 된 세대, 90년대생. 하루 종일 TV 앞에 있던 어린 시절을 지나며 보고·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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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 어느 겨울 날의 창경궁 탐조 기록

[강추위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외출 시 방한용품을 착용하시고…]   연속된 문자 알림음을 따라 내 입김이 길게 이어진다. 내뱉은 숨이 곧장 얼어버릴 것만 같다. 옷을 벗은 나무들 사이에 열매 맺힌 나무는 몇 없다. 그곳에 맹금류인 새매 한 마리가 앉아 먹이를 찾아 헤매는 작은 새를 기다린다. 하지만 좀처럼 기회가 찾아오지 않자 이내 자리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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