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주 - 사적인 지각변동

오늘 당신의 마음에는 어떤 지각변동이 있었나요?

윤명주 - 사적인 지각변동
실패를 포장하는 진화생물학적 방식

실패를 포장하는 진화생물학적 방식

당장 이번 주에 마감해야 할 원고가 없다는 건 생각보다 큰 공간을 일상에 만들어 냈다. 집안에 좋은 기운을 들인다는 목표로, 대체 언제 열었는지도 모를 신발장을 정리하고, 출근하는 날마다 배달 음식으로 때웠던 날들을 반성하며 밀프렙이라는 시스템 도입에 품을 들일 수 있었다. 고작 한 주 뿐이었는데도 가슴을 누르고 있던 돌덩이를 치워버린 기분이었다. 그럴

By 윤명주 - 사적인 지각변동
운명의 올가미를 푸는 사적인 방법

운명의 올가미를 푸는 사적인 방법

한때 아주 유행했던 드라마에서 건진 대사가 하나 있었다. “운명은 신이 던지는 질문이고 그 답은 인간들이 찾는 것이다.” 운명론인지, 개척론을 따를 것인지, 그런 고민을 20대 내내 했었다. 답을 찾지 못한 채 그저 마지못해 살았고, 심한 자괴감에 시달렸다. 인간은 결코 신이 내린 운명의 덫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실험실 쥐에 불과하다며, 나를 상자

By 윤명주 - 사적인 지각변동
살아야 할 이유를 물은 당신에게, 공명

살아야 할 이유를 물은 당신에게, 공명

“왜 살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 말을 듣자 목구멍에서 간질거리는 느낌이 올라왔다. 내가 말할 타이밍이지만 또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예감. 알량한 내 혓바닥이 저지를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고 난 후에 나는 그냥 입을 다물기로 결정했다. 위로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건 오만이지. 속으로 생각했다. 암 진단을 받아 수술

By 윤명주 - 사적인 지각변동
파국이 귀찮아 지하철 대신 버스를 탑니다

파국이 귀찮아 지하철 대신 버스를 탑니다

일곱 살 큰 딸이 태권도 학원에 다닐 때 일이다. 모처럼 승급 심사가 있는 날. 다른 학부모들과 함께 관람하려 체육관 바닥에 앉아 있을 때, 땀내 나는 지하 태권도장에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불쾌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던 차였다. 편의점 앞에 파라솔과 함께 놓일 법한 플라스틱 의자가 구색 맞추기 용으로 몇 개 놓여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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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반항을 눈물 나게 응원하며

너의 반항을 눈물 나게 응원하며

딸아이의 돌 앨범을 만들었던 십수 년 전 그때 “무슨 일이 있어도 평생 네 편이 되어줄게”라고 적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하는 나는, 그보다 더 멋지고 만질 수 있는 말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할 수 있다면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근사한 말을 생각해 내고 싶었건만. 두뇌 가동 범위 내에서 생각해 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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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들의 첫사랑이 찬란하기를

모든 이들의 첫사랑이 찬란하기를

20대의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나 사귀는 사람 있어. 근데, 여자야.” 동성애가 뭔지 잘 몰랐던 시절이었다. 내가 아는 한, 친구는 동성애자가 아니었고. 당시에는 범성애자니 무성애자니 하는 말은 알지도 못했다. 보통 잘 알지 못하면 두려움부터 느끼게 마련이지만 나는 “어, 그래?” 했다. 친구의 상황을 충분히 알지 못했고 내 반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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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없다는 말을 넘어

소용없다는 말을 넘어

중학교 때 체육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 반에 체육 선생님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었다. 오래 전 일이고 졸업 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그 애 이름과 얼굴이 또렷이 기억이 난다. 우리가 친한 사이였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다만 그 애는 2차 성징을 비교적 빨리 겪었고, 그래서 우리보다 더 일찍 당황스러움을 경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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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순간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순간

버스의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 본다. 품이 넉넉한 스커트를 입고 모자까지 갖춰서 쓰고 있다. 할머니와 함께 해 온 세월만큼 여러 번 빨아 입은 티가 나는 옷이다. 비싼 옷은 아니지만 주름이 잘 가는 치마라 다림질도 꼼꼼하게 했으리라. 바닥에 앉아 다림질을 하는 할머니 모습을 그려본다. 할머니는 옷에 맞춰 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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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줌의 예의

한 줌의 예의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라 했다. 그럼 회피하는 기술은 어떤가. 그 또한 신이 인간의 생존과 안위를 위해 준 것일까. 신의 선물이든, 생존하기 위한 뇌의 작용이든 하루치의 안정을 위해 나라는 인간이 선택하는 방식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대명천지에 이런 일이 가능한가 싶다. 내가 지금 조선시대로 타임슬립이라도 하게 된 건가. 당치 않은 놈들에게 맞지

By 윤명주 - 사적인 지각변동
사랑의 밀도에 대하여

사랑의 밀도에 대하여

“아무런 내색 없이, 마음 놓고 그녀가 울 수 있도록 나는 스스로의 마음을 그녀의 눈물 밑에 펼쳐주었다. 따뜻한 벽난로를 등지고서도, 해서 내 마음은 한 장의 손수건처럼 자꾸만 젖어들었다. 젖고, 젖었으며... 내가 젖을수록 조금씩 말라가는 그녀의 눈물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마르고 따뜻해질 때까지, 언제까지고 나는 그녀의 고통을 흡수해주고 싶었다.” 『죽은 왕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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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인 중독자의 하루

카페인 중독자의 하루

굳이 이걸 이 시점에 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쯤에서 접고 그냥 한 잔 시원하게 마셔버릴까 하는 생각을 참는 게 언제까지 가능할지 알 수 없다. 하루 종일 갈등 상황에 내팽개쳐진 기분이다. 대체 왜 이 고난을 사서 하는 건지 나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다. 마약이나 알코올도 아니고 그저 커피일 뿐인데. 시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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