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주 - 사적인 지각변동

오늘 당신의 마음에는 어떤 지각변동이 있었나요?

윤명주 - 사적인 지각변동
기록하는 자의 태도

기록하는 자의 태도

여러 번의 북토크를 진행하는 동안 관객들이 내게 가장 궁금해 한 질문은 이거였다. “기록하시면서 구술자의 어떤 모순을 발견하셨나요?” 순간 멈칫했다. 인간의 모순에 관심이 많다는 후기를 쓴 게 화근이었다. 내 구술자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쩌렁쩌렁 귓가를 때렸다. 당사자를 곁에 두고 그의 뒤틀린 삶과 모순을 발가벗겨 전시하라는 요구. 웃자고 하는 얘긴가? 그렇다면 그에 걸맞게

By 윤명주 - 사적인 지각변동
그 남자의 사과법

그 남자의 사과법

세상에는 이런 걸 사과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혹시 내가 서운하게 한 것이 있다면 마음 푸세요.” 이게 왜 문제냐면 일단 자기 잘못에 대해 깨끗이 인정하는 태도가 없다는 것이다. “~한 것이 있다면”은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당신이 그렇다고 하니,라는 바탕이 깔려 있는 셈이다. 게다가 “서운하다”는 단어는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나

By 윤명주 - 사적인 지각변동
세상의 눈으로 나를 보기

세상의 눈으로 나를 보기

아무래도 나는 본다는 것과 평가한다는 것의 차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본다는 건 그냥 눈에 들어온 심상을 관찰하는 것에 불과하며, 평가는 본 것에 대한 판단이나 가치가 끼어드는 것이다. 문자의 의미야 알았겠지만 평가와 자기 객관화의 결론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그걸 여태 내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오늘에야 알았다. 오랜만에

By 윤명주 - 사적인 지각변동
완벽한 사랑이라는 오답_영화 <옵세션>

완벽한 사랑이라는 오답_영화 <옵세션>

여자는 문 앞에서 출근한 남자를 기다리며 용변을 그 자리에 선 채 해결한다. 퇴근해 돌아온 남자는 오물을 뒤집어쓰고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여자를 욕실로 들여보낸다. 더럽고 냄새나서 미안하다는 여자의 사과를 그는 어떤 마음으로 들었을까. 자는 모습이 귀여워 새벽의 어둠 속에서 자기를 쳐다보는 여자를 보고 놀란 남자는 불길함을 애써 지우기로 결정해 버린다. 냄새가

By 윤명주 - 사적인 지각변동
그해 여름, 수영장

그해 여름, 수영장

해가 넘어가는 시간은 지독한 졸음을 동반했다. 내 무릎에 가만히 앉아 쌕쌕 숨소리만 내뱉고 있는 아이를 안고 나는 종종 잠에 빠지곤 했다. 아이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곧잘 칭얼거리며 다음 이야기를 채근했다. 자그마한, 말 못 하는 등은 동화책의 아기자기한 그림이 전해 주는 이야기에 목말라 있었다. 나는 전날 밤의 음주로 매일 숙취에

By 윤명주 - 사적인 지각변동
효율의 역설

효율의 역설

강사가 검사 방법 설명을 끝내기도 전에 나는 이미 검사지의 그래프까지 완성해 놓은 상태였다. 80여 명의 학우들이 모인 수업이니 강사가 검사 방법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고 떠먹여 주듯 각 단계를 진행하는 것은 당연한 일.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내가 검사에 의구심을 가진 건 자가 채점식이라는 점 외에도 주도형, 표출형, 분석형, 우호형

By 윤명주 - 사적인 지각변동
내일이 지워진 세계, 당신의 일상에 연대를

내일이 지워진 세계, 당신의 일상에 연대를

2026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영화 <정거장>  고백하자면 나는 예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고작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난민이라는 키워드로 대표되는 얄팍한 이미지뿐.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영화 <정거장>을 보겠다고 자리에 앉았을 때는 물론이고, 영화 속에서 파란 깃발과 주황 깃발로 대표되는 두 세력이 이란 같은 나라의 수니파와 시아파를 상징하는

By 윤명주 - 사적인 지각변동
원영적 사고 vs 정민적 사고

원영적사고

원영적 사고 vs 정민적 사고

유행이 한참 지났겠지만 원영적 사고에 대해 한마디 하겠다. 얼마 전까지 사람들은 대개 원영적 사고의 바탕이 삶을 대하는 좋은 태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사고하는 장원영이라는 아이돌 가수를 칭송하는 얘기도 들렸다. 장원영에 대한 개인적 심상은 제쳐두고 만사에 긍정 회로를 돌리는 게 한국인들에게 유독 필요한 방식이라는 점은 나로서도 인정하는 바이다.

By 윤명주 - 사적인 지각변동
테시투라 - 다음 중 가장 적합한 대응을 고르시오

테시투라 - 다음 중 가장 적합한 대응을 고르시오

시선은 앞을 향해 있었지만 귀는 옆을 향해 열려 있었다. 식당 백반을 앞에 두고, 지인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옆 테이블의 깔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비꼼과 농담 사이, 그 대상이 나와 지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밥을 다 먹었으면 빨리 나가든지 해야지, 괜히 손님 놓쳐 버렸네.” “언니처럼 주인 걱정까지 해주는 손님이 어딨어. 하하하.” 나는 아무

By 윤명주 - 사적인 지각변동
타인의 상처를 어떻게 읽어 낼 것인가

타인의 상처를 어떻게 읽어 낼 것인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인터뷰이가 고통을 삼키고 있다는 것을. 스물다섯 살 난 아들을 의료사고로 잃은 어머니가 아들의 사고 현장이 담긴 CCTV 영상을 한 프레임씩 돌려 보면서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했다. 뻔한 문장을 기사에 담기 위해서 나는 기어이 그 질문을 뱉었다. 예상했던 답변이 한숨을 통과해 나오자 나는 안도감과 동시에 자괴감을 느꼈다.

By 윤명주 - 사적인 지각변동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자의 관심사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자의 관심사

영화 <HOPE>를 보다가 문득, 스크린 안에서 무섭게 질주하는, 마베이요라는 이름을 가진 저 외계인이 모두를 죽여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속 등장인물뿐만 아니라 극장 안에 있는 사람 모두를, 나를 포함해서. 옆에 앉은 여자는 놀랄 때마다 몸을 뒤로 세게 기대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었다. 다양한 자극이 몰려오는 동안 두 가지 의문이

By 윤명주 - 사적인 지각변동
실패를 포장하는 진화생물학적 방식

실패를 포장하는 진화생물학적 방식

당장 이번 주에 마감해야 할 원고가 없다는 건 생각보다 큰 공간을 일상에 만들어 냈다. 집안에 좋은 기운을 들인다는 목표로, 대체 언제 열었는지도 모를 신발장을 정리하고, 출근하는 날마다 배달 음식으로 때웠던 날들을 반성하며 밀프렙이라는 시스템 도입에 품을 들일 수 있었다. 고작 한 주 뿐이었는데도 가슴을 누르고 있던 돌덩이를 치워버린 기분이었다. 그럴

By 윤명주 - 사적인 지각변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