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지워진 세계, 당신의 일상에 연대를
2026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영화 <정거장> 고백하자면 나는 예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고작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난민이라는 키워드로 대표되는 얄팍한 이미지뿐.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영화 <정거장>을 보겠다고 자리에 앉았을 때는 물론이고, 영화 속에서 파란 깃발과 주황 깃발로 대표되는 두 세력이 이란 같은 나라의 수니파와 시아파를 상징하는
오늘 당신의 마음에는 어떤 지각변동이 있었나요?
2026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영화 <정거장> 고백하자면 나는 예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고작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난민이라는 키워드로 대표되는 얄팍한 이미지뿐.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영화 <정거장>을 보겠다고 자리에 앉았을 때는 물론이고, 영화 속에서 파란 깃발과 주황 깃발로 대표되는 두 세력이 이란 같은 나라의 수니파와 시아파를 상징하는
원영적사고
유행이 한참 지났겠지만 원영적 사고에 대해 한마디 하겠다. 얼마 전까지 사람들은 대개 원영적 사고의 바탕이 삶을 대하는 좋은 태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사고하는 장원영이라는 아이돌 가수를 칭송하는 얘기도 들렸다. 장원영에 대한 개인적 심상은 제쳐두고 만사에 긍정 회로를 돌리는 게 한국인들에게 유독 필요한 방식이라는 점은 나로서도 인정하는 바이다.
시선은 앞을 향해 있었지만 귀는 옆을 향해 열려 있었다. 식당 백반을 앞에 두고, 지인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옆 테이블의 깔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비꼼과 농담 사이, 그 대상이 나와 지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밥을 다 먹었으면 빨리 나가든지 해야지, 괜히 손님 놓쳐 버렸네.” “언니처럼 주인 걱정까지 해주는 손님이 어딨어. 하하하.” 나는 아무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인터뷰이가 고통을 삼키고 있다는 것을. 스물다섯 살 난 아들을 의료사고로 잃은 어머니가 아들의 사고 현장이 담긴 CCTV 영상을 한 프레임씩 돌려 보면서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했다. 뻔한 문장을 기사에 담기 위해서 나는 기어이 그 질문을 뱉었다. 예상했던 답변이 한숨을 통과해 나오자 나는 안도감과 동시에 자괴감을 느꼈다.
영화 <HOPE>를 보다가 문득, 스크린 안에서 무섭게 질주하는, 마베이요라는 이름을 가진 저 외계인이 모두를 죽여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속 등장인물뿐만 아니라 극장 안에 있는 사람 모두를, 나를 포함해서. 옆에 앉은 여자는 놀랄 때마다 몸을 뒤로 세게 기대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었다. 다양한 자극이 몰려오는 동안 두 가지 의문이
당장 이번 주에 마감해야 할 원고가 없다는 건 생각보다 큰 공간을 일상에 만들어 냈다. 집안에 좋은 기운을 들인다는 목표로, 대체 언제 열었는지도 모를 신발장을 정리하고, 출근하는 날마다 배달 음식으로 때웠던 날들을 반성하며 밀프렙이라는 시스템 도입에 품을 들일 수 있었다. 고작 한 주 뿐이었는데도 가슴을 누르고 있던 돌덩이를 치워버린 기분이었다. 그럴
한때 아주 유행했던 드라마에서 건진 대사가 하나 있었다. “운명은 신이 던지는 질문이고 그 답은 인간들이 찾는 것이다.” 운명론인지, 개척론을 따를 것인지, 그런 고민을 20대 내내 했었다. 답을 찾지 못한 채 그저 마지못해 살았고, 심한 자괴감에 시달렸다. 인간은 결코 신이 내린 운명의 덫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실험실 쥐에 불과하다며, 나를 상자
“왜 살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 말을 듣자 목구멍에서 간질거리는 느낌이 올라왔다. 내가 말할 타이밍이지만 또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예감. 알량한 내 혓바닥이 저지를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고 난 후에 나는 그냥 입을 다물기로 결정했다. 위로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건 오만이지. 속으로 생각했다. 암 진단을 받아 수술
일곱 살 큰 딸이 태권도 학원에 다닐 때 일이다. 모처럼 승급 심사가 있는 날. 다른 학부모들과 함께 관람하려 체육관 바닥에 앉아 있을 때, 땀내 나는 지하 태권도장에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불쾌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던 차였다. 편의점 앞에 파라솔과 함께 놓일 법한 플라스틱 의자가 구색 맞추기 용으로 몇 개 놓여있었는데
딸아이의 돌 앨범을 만들었던 십수 년 전 그때 “무슨 일이 있어도 평생 네 편이 되어줄게”라고 적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하는 나는, 그보다 더 멋지고 만질 수 있는 말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할 수 있다면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근사한 말을 생각해 내고 싶었건만. 두뇌 가동 범위 내에서 생각해 낼
20대의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나 사귀는 사람 있어. 근데, 여자야.” 동성애가 뭔지 잘 몰랐던 시절이었다. 내가 아는 한, 친구는 동성애자가 아니었고. 당시에는 범성애자니 무성애자니 하는 말은 알지도 못했다. 보통 잘 알지 못하면 두려움부터 느끼게 마련이지만 나는 “어, 그래?” 했다. 친구의 상황을 충분히 알지 못했고 내 반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중학교 때 체육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 반에 체육 선생님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었다. 오래 전 일이고 졸업 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그 애 이름과 얼굴이 또렷이 기억이 난다. 우리가 친한 사이였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다만 그 애는 2차 성징을 비교적 빨리 겪었고, 그래서 우리보다 더 일찍 당황스러움을 경험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