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을 잃은 언어(4)
-조이씨가…… 아직도 격리 치료실에 있어요?
-이번 프로젝트는 팀장의 시신 수습을 대외적인 목표로 삼고 있지만, 사실은 조이의 문제를 풀려고 진행되는 프로젝트입니다. 조이씨 상태는 철저히 비밀입니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 의사를 밝히셔야, 조이씨에 대해 자세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타미의 말투엔 힘이 실려있었고, 어느 때보다 차분했다. 눈만 크게 뜨고 있는 미나에게 타미는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 뒤돌아서 멀어졌다. 잠이 부족한 상태로 너무 많은 데이터가 들어와서 과부하가 걸렸는지, 미나는 오른쪽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아직도 의식이 없는 건가? 의식이 있는데, 문제가 있는 건가? 아, 무슨 상관. 몰라. 나랑 무슨 상관이야.’
……굴린다. 굴러간다. 투명한 원통형 튜브 같은 걸 밀고 있다. 내 옆에 누군가가 있네? 아, 팀장. 근데 왜 굴리는 거야. 튜브 안에 조이가 피를 흘리고 있다.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조이는 내 눈에만 보이는지, 팀장은 해맑게 나를 보며 웃고 있다. 조이는 나에게 살려달라는 듯 손을 뻗으며 몸부림친다. 웃고 있는 팀장과 피투성이 조이를 번갈아 본다. 뒷걸음친다. 그리고 뒤돌아 달린다……
미나는 땀범벅이 되어 눈을 떴다. 침대 옆 협탁 서랍을 열어 정신없이 뒤적거렸다. 하얀색 작은 약통 안에 신경안정제를 한 알 꺼내 입에 넣고 일어났다. 물을 먹으면서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3시. 주황색 불빛이 문틈으로 스미는 작은방으로 갔다. 책을 보다가 그대로 잠든 규리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수면등을 끄고 이불을 고쳐 덮어줬다. 침대에 누우면, 다시 이어질 거 같은 꿈이었다. 소파에서 비스듬히 기대어 쿠션을 끌어안았다.
[ 특보입니다. 1년 전 의식 없이 지구로 귀환한 우주인의 몸 안에 외계 생명체가 자라고 있다는 내부 고발이 나왔습니다. 이대로 기자가 우주항공본부에서 소식을 전합니다.
이대로 기자입니다. 우주항공본부 소속 의료진이었다는 익명의 제보자를 통해 격리 치료실에 있는 우주인 몸 안에 의문의 생명체가 자라고 있다고 폭로했습니다. 지금 우주항공본부 출입문은 봉쇄되어 있고, 본부에서는 해당 제보에 대해 아무런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
새벽에 잠을 설친 탓에 뜨거운 커피를 먼저 들이켜는 아침이었다. 식탁에서 규리가 보던 애니메이션 화면에 갑자기 긴급 속보가 떴다.
-엄마, 저게 무슨 소리야?
-글쎄. 엄마도 잘 모르겠네. 유치원 늦겠다. 어서 아침 먹자. 이따가 유치원 끝나면 할머니가 데리러 가실 거야. 오늘 엄마 야근인 거 알지? 엄마 기다리지 말고, 할머니랑 먼저 자. 알았지?
-응
아침을 먹는 규리를 챙기는데, 미나는 뉴스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분명히 행성에서 초음파로 조이의 몸을 수색 했을 때 아무것도 없었다. 우주 비행시, 그 어떤 생명체나 물질도 지구로 반입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에, 담당 의료진은 우주인의 우주선 탑승 전과 후에 초음파로 몸수색하게 되어있다.
‘초음파로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 지구에 와서 발견됐다는 말인가? 내가 놓친 부분이 있다는 건가? ‘
-엄마, 아까 아줌마 몸에 뭐가 있다고 했잖아. 아직 아가인가 봐. 그러니까 크고 있지. 우주 아가가 지구에 오면, 걔 엄마는 어떡해? 엄마 보고 싶겠다. 나는 우리 엄마 옆에 있는데. 저번 저번에 규리 두고 엄마 멀리 가서 너무 싫었어. 엄마랑 헤어지기 싫어. 이제 절대 아무 데도 가지마. 엄마는 내꺼야.
-아침부터 규리가 엄마를 꼼짝 못 하게 하네. 걱정하지 마. 이제 규리 두고 어디 안 가. 근데 우주 아가가 집에 못 가면 어떻게 될까?
-아가가 못 가면, 아가 엄마가 아가 찾으러 오겠지.
규리는 식탁 위에서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레고 캐릭터 두 개로 엎치락뒤치락 싸움 놀이를 하고 있었다.
-나쁜 인간들, 내 아기를 내놔라. 무슨 소리야. 난 니 아기 없어. 내 아기를 숨기다니, 전쟁이다. 피슝. 팍.
-규리야, 유치원 늦는다. 어서 먹어.
사방으로 뻗은 규리의 머리를 하나로 바짝 묶었다. 묶인 머리 덕분에 동그란 규리의 눈은 고양이처럼 끝이 살짝 올라갔다. 사랑스러운 규리를 바라보는 미나의 눈이 웃었다. 남은 커피를 마시다 바라본 핸드폰에는 미확인 메시지가 떠 있었다.
[ 안녕하세요. 미나씨. 저 타미예요. K2-18 행성으로 우주선 발사 날짜가 잡혔어요. 2월 28일입니다. ]
-엄마! 엄마! 나 물 쏟았어. 엄마!
멍한 눈으로 식탁 위를 행주로 닦는 미나를 규리가 계속 봤다. 미나가 집중할 때마다 미간이 찌푸려지는 걸 규리는 유독 싫어했다. 찌푸려지는 미간을 의식할 여유가 없었다.
-엄마 화났어?
-아니야. 아니야. 물은 닦으면 되지. 괜찮아. 괜찮아.
늦장 부리는 규리를 달래서 어린이집에 보내고, 미나는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벌써 석 잔째 커피를 홀짝이며 응급의료센터로 들어섰다. 사건, 사고로 돌아가는 응급의료센터에 경찰이 들고나는 건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미나의 이름을 부르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천천히 미나에게 다가오는 경찰을 보며 미나는 생각했다. 아침에 무탈한 날을 빌지 않았던가?
-안녕하세요. 권미나씨 되시죠? 서에서 나왔습니다. 잠시 함께 가 주셔야겠는데요.
-무슨 일로 그러시죠?
-우주항공본부에서 기밀 유출로 신고가 들어와서요.
사람이 너무 어이가 없으면 아무 생각도 안 난다고 누가 말했던가? 미나는 뇌 회로를 열심히 굴렸지만,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한 채 경찰차에 탔다. 미나는 아무리 기억을 뒤적여도 본부에 대해서 입 밖으로 낸 적이 없었다. 일 년 전 일을 지금 들추는 거라면, 그래도 아니다. 아무에게도 그곳의 일을 말하지 않았다. 말하고 싶어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때 아침에 규리랑 봤던 속보가 떠올랐다. 보기만 했던 그 속보.
-뭔가 오해가 있으신 거 같습니다. 저는 지난해 본부에 파견 형태로 근무한 이후 단순한 연락도 주고받은 적이 없습니다.
형사는 미나에게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타미와 미나가 커피숍에서 만나는 모습을 몰래 찍은 사진이었다.
-본부에서 보내서 만난 거예요.
-본부에서는 문제가 있던 내부 직원이 외부로 기밀을 유출하여 기사화되었다고 형사고발 한 겁니다.
-그 내부 직원, 타미씨 좀 불러주세요.
-타미씨는 이미 진술을 끝내고 갔습니다. 일부 사실을 인정했어요. 미나씨를 만나서 회사의 상황을 설명했다고 진술했어요.
민중의 지팡이는 미나를 위하는 척 말을 계속했다. 대기업과 개인이 엮인 소송에서 개인이 이길 확률은 없다고. 합의하라는 말이 묘하게 비아냥처럼 들렸다. 미나는 자기편은 없다는 걸 묵직한 단어들에서 알 수 있었다. 알록달록한 젤리를 씹으며 다리를 떨고 있는 경찰은 시민의 억울함 따위는 관심 없다는 듯 점심 메뉴를 보고 있었다. 내내 미나의 눈을 쳐다보지 않았다.
-제가 혐의를 계속 부인한다면요?
-형사 절차가 길어질 겁니다. 아마 본업에도 타격이 있으시겠죠. 워낙 여론몰이를 잘하는 기업이라.
-협박처럼 들리네요. 핸드폰 좀 돌려주시겠어요.
미나의 핸드폰을 테이블로 올려두고 형사는 CCTV에 녹화되고 있다는 말을 남긴 후 나갔다. 밀폐된 취조실에서 미나는 뒤통수가 서늘해졌다. 혈류의 속도가 급격히 높아졌다가 급감하는 느낌이었다. 핸드폰을 꽉 쥐던 손으로 한자 한자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타미에게.
[ 왜? 꼭 저인 거죠?]
[ 우주인을 뽑는 절차가 얼마나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지 경험해서 아시잖아요. 지금 그럴 시간이 없어요.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합니다. 이건 국가에서도 알고 있는 상황입니다. 제가 미나씨를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저의 오만이었습니다. 우리에겐 선택권이 처음부터 없었어요. 미나씨는 선택권이 있는 상황을 만들어 드리고 싶었는데, 죄송합니다.]
고립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순응뿐이라는 걸. 발악을 한 후에야 받아들였다. 아니 미나는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실려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