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가위를 내려놓기 전에
[청소년 정신건강 칼럼]
‘필통에 있는 가위를 꺼내 친구에게 휘두름’
학생 의뢰서에 적힌 내용이다.
교실 안에서 흉기라 불릴 만한 것을 휘두르는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다.
그 날카로움은 타인을 향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기 자신을 향하기도 한다.
상담실에서 만난 아이는 의뢰서의 문장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순한 인상이었다.
“왜 가위를 휘둘렀을까?”
“친구가 수업 시간에 제 의자를 발로 찼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사소한 이유였다.
그 아이에 대한 탐색이 조금 더 필요했다.
“3월부터 걔가 계속 저한테 뭔가를 던졌어요.
지나갈 때마다 귓속말하며 웃었고요.
무시하려고 참았는데 그게 잘 안됐어요.”
“그런데 왜 무시하려고 했어?”
“말하면, 일이 커지잖아요.”
아이는 일이 커지는 것이 두려워 화를 눌렀다.
역설적이게도 일이 커지는 것이 무서워서 숨겨둔 화가 결국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터져버렸다.
이처럼 사람들은 대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분노 안에는 공격성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를 냈다가 일이 커진 경험들이 많이 있다.
또한 우리는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는다.
“화내면 안 돼”
“참아야 해”
“착한 사람은 화내지 않아.”
아니다.
분노도 다른 감정과 마찬가지로 건강하게 표출되어야 한다.
표출되지 않는 분노는 사라지지 않고 어디론가 향한다.
분노가 내부로 향하면 자기를 공격한다.
과도한 죄책감, 자기혐오, 자해 등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분노가 외부로 가면 엉뚱한 곳에서 터질 수 있다.
가위를 휘둘렀던 그 아이처럼 사소한 일인데 바람직하지 못한 방식으로 폭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분노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1. 분노 속에 숨은 자동적인 생각 찾고 검증하기
분노는 사건을 바라보는 나의 ‘자동적 사고’ 때문에 유발된다.
가위를 든 학생의 경우, 친구들의 웃음소리를 듣는 순간
“저 애들이 나를 비웃고 무시한다.”라는 생각이 자동으로 떠올랐다.
이 친구가 화가 난 진짜 이유는 “나를 무시했기 때문”이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사고 검증이다.
이것은 내가 틀렸다는 뜻이 아니다.
분노에 끌려가지 않고, 내가 먼저 상황을 읽겠다는 선택이다.
“친구가 웃은 것이 정말 나를 향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가.”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분노의 온도는 조금 낮아진다.
2. 나의 반응 신호 점검하기
가끔은 내가 나를 얼마나 존중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끝없이 참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면,
나도 모르게 내 감정을 가장 먼저 무시하는 사람이 내가 되어버린다.
타인의 무례함에 분노하기 전에,
내가 나에게 먼저 괜찮다고 말해주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이다.
3. 분노가 하고 싶은 이야기 듣기
분노는 나를 지키는 신호다.
그리고 그 신호를 잘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를 무시했어’라는 분노의 신호는 사실 ‘나 존중받고 싶어’라는 뜻일 수 있다.
이 친구가 진짜 원했던 것은 가위가 아니라, 누군가 나를 존중해주는 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게 되면, 가위 대신 “의자 치지 마, 그건 무례한 행동이야”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건강한 표현법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4등에게는 이 과정이 유독 어렵다.
인생에서 인정받은 경험보다 무시당한 경험이 더 많기 때문이다.
“어차피 말해도 안 들어 줄 거야.”
“화내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겠지”
이런 패배감이 분노보다 먼저 찾아온다.
그래서 4등의 분노는 늘 안으로 나를 공격하거나, 감당할 수 없을 때 흉기처럼 빠져나온다.
그래서 4등의 분노는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어차피 안 돼”라는 생각이 먼저 찾아와도,
그 아래에 있는 진짜 마음을 들여다보는 연습.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할 자격이 있다는 것을 조금씩 믿어가는 연습.
분노는 나쁜 감정이 아니다.
나를 지키려는 신호다.
그 신호를 건강하게 전달하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4등이 자기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단단한 선물이다.
당신의 분노는, 당신이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4등을 위한 글>
오늘 당신을 화나게 한 것이 있다면,
그 분노가 하고 싶은 말에 귀 기울여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