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을 잃은 언어(3) - 서울에서 우리

중력을 잃은 언어(3) - 서울에서 우리
Photo by Quilia / Unsplash

움직이는 이송용 침대 위, 미나는 리듬을 입으로 세며 환자의 흉부에 규칙적으로 체중을 실었다. 정신없이 펄럭거리는 머리카락 사이, 분주한 시선 끝에 검은 그림자가 걸렸다. 반복적인 동작에 스치듯 담긴 검은색이 정지화면 같았다. 미나와 환자를 실은 침대는 빠르게 응급실로 들어갔다.

-하, 맥박 잡혔어요. 권 교수님 호출하고, 흉부 엑스레이 준비해 주세요.

미나는 기름이 흐르는 머리 냄새를 맡으며 모자를 눌러썼다. 뻑뻑한 눈을 껌벅거리며 병원 밖, 눈부신 아침으로 향하던 미나는 새벽에 스치던 검은 그림자가 시야에 걸렸다. 못 본 척 정면을 보고 걸음을 재촉했다. 마침, 미나 집으로 가는 버스가 정거장을 출발하고 있었다.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달렸다. 달리는 미나를 무언가가 잡아끌었다.

- 아! 뭐야!

- 미, 미나씨.

- 타미?

- 미, 미안해요. 오늘은 놓치면 안 될 거 같아서, 놀라셨죠.

여전히 미나와 눈도 못 마주치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하는 타미는 본인이 잡아놓고 어쩔 줄 몰라 했다. 이게 얼마 만이지? 1년이 다 돼가네.

- 오랜만이에요. 그런데 저를 계속 찾아왔었어요? 

- 아, 자주는 아니고요…. 요 며칠 할 말이 있어서, 기다렸어요. 퇴근할 때 인사하려고 했는데, 걸음이 너무 빠르셔서요. 잘 지내셨어요?

 타미는 평소에 지나치게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사람이었는데, 오늘은 달랐다. 초조, 당황, 미안함, 부끄러움 등 여러 가지 감정이 얼굴을 물들이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 옆에 가장 조용해 보이는 커피숍에 들어가 앉았다. 타미는 한겨울인데도 얼굴이 붉어져서 아이스커피를 벌컥벌컥 마셨다. 타미가 진정될 때까지 미나는 타미에게 시선이 가는 것도 자제하면서 기다렸다. 

- 저, 저 스토커 아니에요. 본부에서 보내서 온 거예요. 오, 오해는 하지 마세요. 

- 아, 네. 근데 본부에서 무슨 일로 직접 연락을 안 하고 타미씨를 보낸 거예요?

- 그러니까, 예민하고 중요한 사항이라서 조심스럽게 전달하라고.

말을 못 하는 타미는 예민하고 중요한 사항을 아주 길게 뜸을 들이며 시간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당직 근무로 잠을 못 잔 미나는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인공눈물을 꺼내 위를 보며 뻑뻑한 눈에 방울방울 떨어뜨리는데, 타미가 말을 이었다.

- 팀장님 시신 수습을 하려고 프로젝트팀을 만들고 있어요. 그때 같이 비행했던 멤버가 1순위라고 해요. 그래서 저는 참여 하려고요. 미나씨도 같이 갔으면 좋겠어요.

천장을 향하던 미나의 시선이 타미에게로 내려왔다. 흡수되지 못한 인공눈물이 미나의 볼을 타고 흘렀다. 타미는 커피잔만 보고 있었고, 그런 타미를 미나는 한참을 봤다. 정적을 깬 건 미나였다.

- 아니요. 저는 생각이 없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미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가방을 낚아채듯 들고, 빠른 걸음으로 커피숍을 나왔다. 타미가 급하게 달려 나와 미나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 오, 오늘 결정하지 마시고, 일주일만 생각해 주세요. 부, 부탁드려요.

- 아니요. 저는 안 갑니다. 

- 그 행성의 환경과 팀장의 마지막을 알고 있는 미나씨가 저는 최적의 멤버라고 생각해요.

- 아니요. 저는 안 갑니다.

지나쳐 가려는 미나를 타미는 다시 가로막았다. 미나는 타미의 눈을 정면으로 봤다. 시선을 땅으로 떨구고 흔들리는 목소리로 타미는 마지막 힘을 쓰고 있었다.

- 우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일주일만 고민해 주세요.

- 내가 어떻게 일상으로 돌아왔는데요. 눈만 감으면 그 행성, 그 마지막 순간으로 돌아가 있어요. 어느 날은 내가 팀장이었고, 어느 날은 내가 그 징그러운 생명체가 돼서 팀장을 갉아 먹고 있어요.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온갖 정신과 약으로 버텼어요. 그런데 나 보고 또 거기에 가자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어요.

-나는 그래서 가려는거예요. 그래야 살 수 있을거 같아서요.

-전 아니예요.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요.

 뒤돌아 멀어지는 미나의 뒤통수에 타미가 소리를 질렀다.

- 그럼 조이씨는 어떡해요! 아직도 격리 치료실에서 나오지 못한 조이씨는요! 조이씨는 안 궁금해요!

타미의 입에서 조이의 이름이 나왔을 때, 미나는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의식이 없는 상태로 지구로 온 조이는 응급 인큐베이터 안에 보호된 상태로 본부 의료팀이 이송해 갔었다. 분명히 모든 의료 수치가 정상이었다. 의식만 없는 상태라서 금방 일상으로 복귀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멈춰선 미나가 고개를 돌렸다.

- 조이씨가……  아직도 격리 치료실에 있어요?

Read more

내일이 지워진 세계, 당신의 일상에 연대를

내일이 지워진 세계, 당신의 일상에 연대를

2026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영화 <정거장>  고백하자면 나는 예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고작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난민이라는 키워드로 대표되는 얄팍한 이미지뿐.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영화 <정거장>을 보겠다고 자리에 앉았을 때는 물론이고, 영화 속에서 파란 깃발과 주황 깃발로 대표되는 두 세력이 이란 같은 나라의 수니파와 시아파를 상징하는

By 윤명주 - 사적인 지각변동
비비안 마이어 Vivian Maier

비비안 마이어 Vivian Maier

"꿈이 있습니까?" 소셜 미디어 릴스를 넘기다 길 가는 이들에게 불쑥 꿈을 묻는 인플루언서의 영상을 보았다. 어느 정도의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꿈이라면 흔쾌히 들어주며 얼마 후 훈훈하게 콘텐츠를 마무리한다. 문득 길을 걷다 누군가 내 앞을 막아서며 꿈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대답할 수 있을까. 먹고사는 일에 치여

By 마침 - 명프로젝트 & 시필
우드 와이드 웹

우드 와이드 웹

[청소년 정신건강 칼럼] 숲속의 나무들은 혼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각자의 뿌리, 각자의 줄기, 각자의 잎. 서로 닿지 않은 채 홀로 견디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땅 아래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드 와이드 웹(Wood Wide Web)이다. 1997년 네이처지의 표지를 장식했던 시마드 삼림생태학 교수의 연구 내용에

By 김지혜 - 4등을 위한 글
중력을 잃은 언어 (7) - 하나

중력을 잃은 언어 (7) - 하나

미나의 개인 인큐베이터 안으로 두드리는 진동음이 빠른 박자를 만들었다. 새벽에 겨우 잠든 미나는 억지로 눈에 힘을 주어 빛을 받아들였다. 타미가 헤매는 미나를 억지로 부축하여 일으켰다.  - 아직 수면 시간인데 미안해요. 그런데 급해서요. - 아, 괜찮아요. 무슨일인데요? - 조이가 없어졌어요.  미나는 벼락을 맞은 듯 정신이 확 들어왔다. 정신없이 밀실로 달려갔다. 조이를

By 이안 -이 안의 숏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