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옥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

권기옥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

“비행기를 배워 조선 총독부를 부수겠습니다.”

 수천 킬로미터의 대륙을 홀로 가로질러 문을 두드린 이방 여인의 기백 앞에서, 마흔 살 군벌 총독의 완고한 빗장이 마침내 풀렸습니다. 윈난 육군항공학교의 견고한 금녀의 벽을 무너뜨린 이 호기로운 선언이, 고작 스물둘의 망명객 권기옥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는 태어난 순간부터 거절당한 존재였습니다. 1901년 평양,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버지는 어서 죽어 가라며 아이의 이름을 ‘갈네’라 지었습니다. 환영받지 못한 채 태어났으나 3·1 만세 운동의 모진 고문을 견뎌냈고, 멸치잡이 배에 몸을 싣고 사선을 넘어 상해로 탈출한 이였습니다. 하지만 망명지에서 마주한 현실 역시 차가웠습니다. 대륙의 항공학교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를 문전박대했습니다. 제국주의의 심장을 겨누기도 전에, 또 다른 벽들이 앞길을 막아선 것입니다.

탕지요우 교장의 집무실.
수많은 청년들이 고개를 숙이고 허락을 구하던 자리, 그러나 그 문 앞에 선 것은 이름도 낯선 조선의 한 여성이었습니다.
잠시 이어졌을 망설임은 당대의 질서 전체가 흔들리는 순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여성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규범, 식민지인은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전제, 그리고 전쟁은 남성의 몫이라는 오래된 믿음이 그 짧은 침묵 속에서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문이 열립니다.

권기옥이 뚫어낸 것은 단지 한 학교의 입학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성별, 식민지, 기술이라는 세 겹의 경계를 동시에 가로질렀습니다.
비행기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제국과 군사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그 조종간을 쥐겠다는 선택은 곧 지배의 기술을 전유함을 말합니다. 그는 억압을 피해 도망치는 대신, 그 한가운데로 들어가 그것을 전복 했습니다.

일본 경찰의 암살 위협 속에서도 그는 새벽마다 비행을 거듭했고, 결국 군용 비행기의 조종간을 쥐게 됩니다. 이후 중국 공군에 투신하여 최전선의 비행원으로 항일 전쟁을 수행했습니다. 비록 일제의 감시와 비행기 고장으로 조종사로서 하늘을 날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는 지상에서도 투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한국 공군 창설에도 힘을 보탭니다. 말년에는 자신의 전 재산을 장학 사업에 내놓으며, 쉬이 할 수 없는 헌신과 애국의 길을 마지막까지 걷습니다.

한국애국부인회

“또 딸이야. 갈네라고 불러야겠군.”
태어난 순간부터 세상은 그에게 체념과 복종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등을 떠미는 손에 밀려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날개를 선택했습니다.
“할 수 없다”는 말이 반복되며 굳어버린 인식의 틀은 바깥에서 강요되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 안에 자리 잡아 스스로를 멈추게 만듭니다. 그래서 그의 삶은 단순한 성공담으로 남지 않고 하나의 질문으로 남습니다.

나를 가로막는 것은 정말 세상의 벽인가,
아니면 이미 안 된다고 믿어버린 마음의 관성인가.

그리고 지금, 나는 어느 쪽 앞에서 멈춰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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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을 잃은 언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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