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탈주 스캔들 (9) - 콩가루 같은

9. 탈주 스캔들 (9) - 콩가루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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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애인을 계기로 몸담은 조직에서 손 씻고 나오고 싶어 했을 조직원이, 해진의 얘기를 들으면서 머릿속에 그려졌다.

“형도 마지막에는 후련해 보였어요. 좋은 데 갔겠죠.”

후천적으로 형성된 유사 가족 놀이. 그럼에도 어지간한 선천적 혈연보다 지독했을 관계였다.

혈기 왕성한 나이의 짐승들은 발목 잡는 걸 끊어내려 서로의 발목을 물어뜯어야 했겠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일어난 것뿐이었다.

그렇게 끝까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고 미공개 사건 파일 내용물이 되어버린 이들이 있다. 사실 꽤 많았다. 당장 인하 눈앞의 이 남자, 정해진을 포함한 이야기였다.

한밤중의 항구는 여전히 그들 말곤 인적 하나 없이 고요했다. 바닷바람에 해진의 머리가 헝클어졌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이리저리 이마에 지는 그림자가 바뀌었다.

“그런데 그새 딴 생각하는 표정이네요, 형사님.”

해진이 시큰둥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인하와 눈을 맞췄다. 서운하다는 듯 눈매가 가늘어진다.

“아니, 뭐, 별 생각 안 했어.”
“의외로 순순히 인정하시고요.”
“아.”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셨어요?”

다 들킨 와중 인하는 시선을 돌렸다. 마침 콩가루 같은 집안 얘길 듣다 보니 비슷하게 가루가 잔뜩 뿌려진 음식 하나가 떠오르던 참이었다.

“티라미수…….”
“티, 뭐요?”

해진이 온몸으로 물음표를 그리다가 무슨 은어 같은 거냐고 이어 물었다.

“아니, 그냥 말 그대론데.”

인하는 허, 작게 헛웃음을 짓는 해진을 외면했다.

“주 형사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까 좀 신기하네요. 평범하게 그런 걸 다 좋아하시고.”
“무슨, 나도 평범하게 케이크 먹을 줄 아는 사람이거든?”

멋쩍어서 크흠, 헛기침하던 인하는 수평선을 보며 뒷머리를 긁었다. 대학교 다닐 때 친구들의 손에 이끌려 카페에 갔을 때를 떠올려봤다.

 

*

“그럼 아, 해보실래요, 형사님?”

낮게 울리는 목소리에 인하는 정신이 확 들었다. 해진이 시킨 대로 입을 벌리는 대신 눈을 둥그렇게 떴다.

“아무리 찾아봐도 티라미수는 없었지만요.”

토스트 위엔 서니 사이드업으로 한쪽 면만 노릇하게 구워진 계란 노른자가 먹음직스럽게 얹어진 채였다. 거기다 옆에는 채소도 몇 종류 있었다. 알록달록하게 배치된 당근, 양상추와 양배추에 치커리, 방울토마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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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뭔데?”
“찾아보니 이것저것 많더라고요.”
“아니, 지금 음식 얘기가 아니라.”

인하는 해진과 음식 접시 너머로 사방이 막힌 방안을 살피다 벌떡 일어났다. 쳐져 있던 암막 커튼을 걷자마자 희뿌옇게 펼쳐진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 한밤중이었건만 어느새 해가 떠올라 있다. 배편을 고민하다 임시 은신처에서 깜빡 잠들었더니만 배 안으로 옮겨져 있었고.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저도 좀 전에 일어나서 살펴봤는데, 여기 배 안쪽이 엄청 넓거든요. 이만하면 세상이 멸망해도 벙커 역할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겠던데.”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이 태평양 한가운데란 걸 깨닫자마자 절로 인하의 입이 벌어졌다.

“냉장고랑 냉동고에 먹을 게 가득 채워져 있더라고요. 누군진 몰라도, 애초부터 우리가 일어나자마자 휘젓고 다닐 걸 염두에 두고 대비를 했단 거 아닐까요.”

그리고 이 와중에도 해진은 요리를 해왔다. 구색을 다 갖춰가면서.

“그래서, 어디 납치됐는지도 잘 모르는 와중에 휘적휘적 브런치나 만들고 있냐?”

이게 태연함일지, 대범함일지, 아니면 진즉부터 머리가 맛이 간 걸지, 혀가 내둘러지는 여유였다.

“이렇게 됐다고 굶을 순 없잖아요.”

해진이 인하의 앞으로 토스트 등등이 담긴 접시를 내밀면서 태연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먹을 수 있을 때 든든히 먹어둬야 한다면서요?”

깔끔하게 씻긴 방울토마토 하나가 접시 위에서 또르륵 구르다가, 멀찍이 울려온 뱃고동 소리와 함께 잘게 몸을 떨었다.

“아, 말이 씨가 된다더니만 하여튼…… 괜히 크루즈 얘기 같은 걸 꺼내선.”
“저 때문이라고요.”

크루즈 대신 반강제로 시작된 배 여행이라니, 이 자식과 엮인 뒤로는 살벌하고 일방적인 일들 뿐이었다.

“안 그래도 가족 같던 인간들에게 누명 써서 사형수 된 것도 억울한데.”

사실 지금도 탈주한 해진과 이러고 있는 게 잘 안 믿겼다. 잠이 덜 깨 헛것을 보나 싶었지만, 느슨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신경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아무튼 형사님도 얼른 적응하셔야죠.”

언젠 하도 일이 많아서 어지간한 일엔 시큰둥하신 거 같더니, 해진이 눈썹을 들었다.

“아니면, 뭐 걸리시는 거라도 있어요?”
“그야.”

당장 신경 쓰이는 거야 뭐, 하나뿐이었다.

“네가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풀려나 있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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