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선을 넘지 말 것 _ '혼코노'

적정선을 넘지 말 것 _ '혼코노'
Photo by Ryoji Iwata / Unsplash

어느 평일 퇴근 시간, 지하철역 근처 사거리 보행자 신호가 한꺼번에 초록빛을 냈다. 모든 방향 차량이 멈춘 거리 위, 사람들이 사방팔방으로 건너갔다. 대각선 방향을 향해 발을 떼었을 때, 난데없는 고함이 들렸다. 사람들이 일제히 바라본 곳에는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말쑥한 옷차림의 여성이 있었다. 그는 허공을 향해 있는 힘껏 소리쳤다. 정확히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얼굴에 핏대를 세워가며 외치는 소리에는 이런 말이 담긴 것 같았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너나 그렇게 해. 누군가는 인상을 찌푸렸고 누군가는 끝까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대다수는 소란의 실체를 확인하고 다시 제 갈 길을 갔다.

 

나는 애초에 쳐다보지도 않은 것처럼 굴었다. 그 사람의 지극히 사적인 영역을 엿본 기분이었다. 그는 왜 거기서 소리 질러야 했을까. 도저히 참을 수 없던 걸까. 왜 그렇게 사람 많은 곳이어야 했을까. 누군가 그 소리를 들어주길 바랐을까. 소리를 지른 후 그는 개운했나. 듣고도 듣지 않은 것처럼 구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한 고독을 느꼈나. 그날 코인 노래방으로 향하던 내 발걸음 위로 질문들이 쏟아졌다.

 

Photo by 이표

3년 전 새로운 동네로 이사 오고 나서 첫 번째로 한 일은 단골 코인 노래방을 만드는 것이었다. 물 한 병을 들고 노래방에서 소리 지르는 게 내 삶의 낙이었다. 단골 ‘코노’에는 조건이 붙었다. 지하가 아닐 것, 직원이 상주할 것, 음질이 좋을 것. 모두를 만족한 곳은 한 군데였다. 의자는 좁았지만 혼자 이용할 거니까 괜찮았다.

 

어릴 때는 엄마의 단골 노래방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았다. 5번 방은 우리 고정 방이었고, 사장님은 손님 없는 낮 시간대 어린 손님들에게 서비스 시간을 넣어주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새로 생긴 프랜차이즈 ‘ㅅ 노래방’으로 향했지만, 사장님의 끝나지 않는 10분이 그립기도 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친구들은 술이 없으면 노래방에 가지 않았다. 도저히 맨정신으로 놀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이해되지 않았다. 노래가 좋아서 가는데, 왜 술이 필요하지. 술을 마시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음정이 갈피를 잃는다.

 

 

나에게도 노래방은 ‘함께 즐기기 위함’에서 ‘혼자 스트레스를 풀러’ 가는 곳으로 바뀐 지 오래다. 혼자 가면 장점이 많았다. 억지로 댄스곡을 부르지 않아도 되고, 내가 부를 차례에 친구들이 화장실에 가거나 노래가 끝난 순간 몰려드는 부끄러움을 견디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홍철 없는 홍철 팀’처럼 동전 없는 코인 노래방이 당연한 시대다. 코노에서 곡 단위로 결제하면 다음 곡을 여유롭게 예약할 수 있다. 전주와 간주도 충분히 즐기면서 혼자만의 속도로 목을 가다듬을 수 있다.

 

하긴, 이제 ‘혼코노’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이사 오기 전까지 함께 했던 노래방 메이트와 더 이상 시간을 맞추기 어렵다. 새로운 사람과는 서로의 노래를 온전히 들어줄 여유도, 서툰 음정을 보여줄 용기도 흐릿하다. 우리는 소리를 격리할 방을 찾아 각자 흩어진다. 약속된 시간이 다 되어 점수 화면이 나오면, 모르는 남자 아이돌 노래를 배경 삼아 차림새를 정비한다. 문을 열고 나선 노래방 복도에서 마주친 이들은 방금까지 소리를 질러댄 사람들처럼 보이지 않는다.

 

단점도 분명하다. 아무리 중간중간 쉬어준다 한들, 한 시간을 내리 홀로 부르는 건 전문 가수도 힘들다. 한번은 다음날 반차를 내고 이비인후과에 갔다. 자고 일어난 후에도 귀 한쪽 ‘삐’ 소리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명은 초기에 빠르게 대처해야 했다. 다소 유난스럽게 청력을 검사하고, 약을 처방받았다. 다행히 곧바로 사라졌지만, 제한이 한 가지 더 늘었다. 요령 없이 질러댔다간 목이 상하고, 귀까지 상할 수 있었다. 나의 1평짜리 요새에서, 도리어 속을 무너뜨려서는 안 되었다.

 

그날 여성은 무언가를 망가뜨린 셈이다. 무언의 질서를 깨뜨리고, 제 몸을 돌보지 않았다. 적정선을 넘지 말 것. 서로를 위해 우리는 약속했다. 신호등이 바뀐 후 길을 건너고, 흘러넘치는 감정은 홀로 삭이며, 소리는 방음벽 안에서 질러야 한다. 그의 고함은 퇴근길 많은 이들에게 어떤 상처와 동시에 해방감을 남겼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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