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올가미를 푸는 사적인 방법

운명의 올가미를 푸는 사적인 방법
© pixabay

한때 아주 유행했던 드라마에서 건진 대사가 하나 있었다.
“운명은 신이 던지는 질문이고 그 답은 인간들이 찾는 것이다.”
운명론인지, 개척론을 따를 것인지, 그런 고민을 20대 내내 했었다. 답을 찾지 못한 채 그저 마지못해 살았고, 심한 자괴감에 시달렸다. 인간은 결코 신이 내린 운명의 덫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실험실 쥐에 불과하다며, 나를 상자 속 코너로 몰아넣은 신은 지독한 사디스트라고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독실한 개신교도인 친구들과 얘기하다 보면 닥치라고 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중 으뜸은 “신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준다”는 말이었다. 내 인생도 내 인생이지만, 의료사고 유가족이나 환자들을 인터뷰하고 기사를 쓰는 업을 하다 보니 반발심은 더 강해졌다. 진짜 신이 있다 믿냐고, 애꿎은 친구만 들볶았다. 진지하게 “그렇다”고 대답하는 친구를 속으로 비웃었다. 인간의 믿음이란 이토록 허망한 기반 위에 서 있는 것이라 여기며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네’, 그렇게 자조(自嘲)했던 나였다.

명리학을 공부해 보니 인간은 누구나 여덟 개의 글자를 타고 나는 존재였다. 어떤 사람의 여덟 글자는 올가미처럼 그 주인을 옴싹달싹 못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 틀에서 벗어나기란 어려웠지만 10년 주기로 들어오는 대운과 매년 들어오는 세운에 따라 유동적인 운영이 가능하기도 했다. 같은 글자를 타고나는 사람은 산술적으로만 따지면 대충 잡아 만 명이 넘는다. 삼성의 이재용과 같은 운명을 타고 난 사람이 우리나라에만 백 명 내외는 된다는 얘긴데, 이재용과 그들의 차이는 왜 발생하는가. 그게 이해가 안 됐다. 이재용이야 그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이라고 치더라도 간디나, 마더 테레사 같은 존재는? 그것이 내 의문의 핵심이었다.

그런 나를 드라마 대사가 깨달음으로 이끌었다. 이분법만큼 사람을 편협하게 만드는 것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운명론이니 개척론이니 하는 틀로 세상을 보고, 쉽게 판단하려고 했음을 자각했던 순간이었다. 그 또한 인간이 만들어 낸 틀일 뿐인데, 나는 어째서 그것이 진리인 양 굴었던 것일까. 철학가든 뭐든, 운명론이니 개척론 따위를 만들어 낸 자와 드라마 작가의 통찰이 그렇게나 차이 나는 것인 양 생각했던 것일까. 그간 살아오며 내린 결과, 세상은 하나의 이론이나 좁은 틀로 퉁쳐지는 곳이 아니었는데.
정해진 운명이 있는 건 맞지만 어떤 결과를 맺게 될지는 인간 각자의 몫이라는 것, 그게 참 마음에 들었다.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별로 상관없었다. 적어도 이 망조 든 인생을 어찌 해볼 실마리가 필요했을 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인생은 내 쪼대로 사는 것, 그게 나다운 결론이라 여겼다.

인생의 거대 담론은 차치하고 이토록 지랄 맞은 내 인생이나 해결하자 싶었다. 명리학 공부를 비롯한 다각도의 노력과 우연히 마주친 드라마 대사 하나로 나는 비교적 산뜻한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고.
사주 상 조후 문제가 있어, 생각만 잔뜩 하고 결실을 맺기 어려운 나란 인간에게 신이 던져놓은 질문은 명확했다. 지금까지의 삽질은 그걸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는 여정이었고,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었음을 안다. 언제나 어긋나고 삐끗해 버리는 특성을 적당히 눌러가며 여기까지 흘러왔으나 적어도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앞으로 남은 생을, 얼마인지 모르지만, 그 답을 찾기 위해 버텨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는 것도 납득했다. 그렇기에, 바다가 나를 부르는 눈부신 여름날의 휴일에, 이렇게 한 자라도 써보려고 밀짚모자에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도서관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것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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