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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탈주 스캔들 (15) - 취조는 때와 장소를 안 가리네

15. 탈주 스캔들 (15) - 취조는 때와 장소를 안 가리네

셋을 태운 보트가 외딴 무인도 해변에 선체를 마찰하며 멈춰서자마자 인하는 안도감에 푹 한숨을 내쉬었다. 폭발하는 크루즈에서 나와 물을 헤치고 다시 뭍으로 올 때까지 쌓인 긴장감이 상당했다. “에스코트할께요, 형사님.” “손 치워라…….” “가만히 좀 계시겠어요?” 인하가 반발하든 말든 해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에스코트했다. 보트 비상함에 다행히 소독약과 붕대 등등이 있어서, 응급처치하는 건

By 가넷베리Garnetberry - 가넷베리의 숏텐츠
기록하는 자의 태도

기록하는 자의 태도

여러 번의 북토크를 진행하는 동안 관객들이 내게 가장 궁금해 한 질문은 이거였다. “기록하시면서 구술자의 어떤 모순을 발견하셨나요?” 순간 멈칫했다. 인간의 모순에 관심이 많다는 후기를 쓴 게 화근이었다. 내 구술자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쩌렁쩌렁 귓가를 때렸다. 당사자를 곁에 두고 그의 뒤틀린 삶과 모순을 발가벗겨 전시하라는 요구. 웃자고 하는 얘긴가? 그렇다면 그에 걸맞게

By 윤명주 - 사적인 지각변동
이미지 출처: 드라마 《영 셸던》 공식 스틸컷 © CBS / Warner Bros. Entertainment Inc.

바위를 굴리는 데 필요한 85% _ 드라마 《영 셸던》

‘환승 이직’에 성공했다. 지난 몇 년간 위장병을 앓아가며 애써왔던 게 무색할 만큼 나의 거취는 빠르게 정해졌다. 이력서도 제출하지 않았는데 간단한 지원 양식만 보고도 면접이 잡혔다. 내 일정에 다 맞춰주겠다 하여 기존 직장에 연차를 내지 않아도 됐다. 유달리 잘 본 것 같지도 않은 15분이 지나 이틀 후 합격 연락을 받았다.

By 이표(李表) - 표류일지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손바닥을 펼쳐 휴대폰을 볼 공간조차 없었다. 불빛의 반사 때문에 손을 움직이다 보니 앞사람 팔꿈치를 건드렸다. 등을 찌르기도 하고 스치기도 했다. 앞사람과 뒷사람 사이 10센티미터 미만. 그 공간에 나를 밀어 넣었다. 낯선 사람들, 등짝의 뜨거움이 나에게도 전달됐다. 머리 위에서 불어오는 에어컨 바람조차 땀을 머금은 끈적한 뜨거움을 식히지 못했다. 출입문이 열릴 때마다

By 이지선 - 햇살 좋은 창가
부암동, 노란 블루

부암동, 노란 블루

이른 가을인가 했다 어깨 맞댄 나무들이 어서 오시게 가지 흔들어 주던 하늘 반쯤 가린 부암동 비탈길 흩뿌리던 잎에 홀려 시큰거리는 무릎도 잊고 걸었더랬지 나무와 나눈 말이 곧 이름이 된 사람 그 뜰에 기댄 은행나무 둘의 대화가 잎마다 노란 물이 되어 돌담을 넘고 골목 안으로 번지던 화양연화 아직 여름의 기척이 남아

By 마침 - 명프로젝트 & 시필
콕 집어 말하기 어렵지만

콕 집어 말하기 어렵지만

ㄴ + ㅏ= 나 ㄴ + ㅓ= 너 나와 너의 차이, 겨우 모음 하나 바깥으로 삐쭉 나온 선, 그곳만 바라보던 ㅏ는 안으로 감춰진 선, 그곳에 숨어버린 ㅓ를 밖으로 끌어내려 했다. 하나의 단어로 똑같아지길 바라며 간격을 좁혔다가 넓혔다가 그렇게 서로의 선을 넘나들었다. 그렇게 나와 너를 담은 글자를 알아간다. ㄴ+ㅏ+ㅓ = 내 나는

By 이지선 - 햇살 좋은 창가
[정신건강의 날 특별편] 죽으려고 한 건 아니에요_청소년 자해를 이해한다는 것

[정신건강의 날 특별편] 죽으려고 한 건 아니에요_청소년 자해를 이해한다는 것

[특별편 - 정신건강 이야기] 10월 10일, 정신건강의 날을 맞아 어떤 주제로 글을 쓸지 오래 고민했다. 청소년 정신건강 칼럼을 쓰면서 언젠가는 꼭 다뤄야겠다고 생각해 온 주제가 있었다. 중학교 3학년 학생이 어머니와 함께 상담실에 찾아왔다. 아이는 커터칼로 손목을 그은 상태였다. 어머니께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이가 왜 죽으려고 할까요?” 하지만 자해를 한 아이의

By 김지혜 - 4등을 위한 글
그 남자의 사과법

그 남자의 사과법

세상에는 이런 걸 사과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혹시 내가 서운하게 한 것이 있다면 마음 푸세요.” 이게 왜 문제냐면 일단 자기 잘못에 대해 깨끗이 인정하는 태도가 없다는 것이다. “~한 것이 있다면”은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당신이 그렇다고 하니,라는 바탕이 깔려 있는 셈이다. 게다가 “서운하다”는 단어는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나

By 윤명주 - 사적인 지각변동
박완서의 시작이 없었다면

박완서의 시작이 없었다면

공모전의 계절이다. 칼바람이 맹위를 떨치는 겨울 신춘문예가 지나고, 코끝을 스치는 바람에도 엉겨 붙은 감정의 결정이 맺히기를 기다리는 공모전이 여기저기 열린다. 유려한 문체로 문단을 휘어잡는 젊은 작가들이 늘어나는 동안, 지천명을 앞둔 나는 문학 '학도'로만 몇 년째인지 모른다. 이렇게 기약 없는 일을 해도 되는 걸까, 끊임없이 의심하다가도 그 주저함을

By 마침 - 명프로젝트 & 시필
플라스틱 수선실 - 3. 4256번 로봇 수선

플라스틱 수선실 - 3. 4256번 로봇 수선

지철은 시큰거리는 무릎 관절을 매만지며, 몸을 일으켰다. 아침에 지철의 관절은 뼈와 뼈 사이에 자갈이 있는게 분명했다. 작은 움직임에도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고, 소리만큼 통증도 요란했다. 경직이 풀리지 않은 오른쪽 다리를 끌고 프린터 앞으로 갔다. 출력이 끝난 4256번의 오른발을 프린터에서 떼어냈다. 오른발에 엉겨 있는 지지대용 플라스틱을 제거했다. 지지대가 있던 자리의 거친 부분을

By 이안 -이 안의 숏텐츠
14. 탈주 스캔들 (14) - 꼬맹이는 눈 감아

14. 탈주 스캔들 (14) - 꼬맹이는 눈 감아

“윽…….” 인하는 폭발 직후 파편에 긁힌 눈가를 찡그렸다. 괜찮아, 눈은 멀쩡하다. 다행히 비상 수단과 응급 상황에서의 탈출로 정도는 미리 봐 뒀다. 해진과 눈이 마주쳤을 때 눈짓으로 신호한 뒤, 간발의 차로 아이를 감싸 안고 뛰어내릴 수 있었다. 워낙 커다란 선체다 보니 세찬 폭발이었음에도 약간 시차가 있었다. 물론 그래봤자 고작 몇 초였지만,

By 가넷베리Garnetberry - 가넷베리의 숏텐츠
가을 밤하늘 아래, 너와 나

가을 밤하늘 아래, 너와 나

강아지풀이 가득한 낙산성곽길 위에서 하늘을 바라봤다. 빛나는 건 붉게 물든 건물과 노랗게 물든 흥인지문뿐이었다. 둥근달은 짙은 어둠 속 어딘가로 숨어버렸다. 풍성한 보름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려던 나는 고개를 떨궜다. 좁고 울퉁불퉁한 흙길, 발끝이 자꾸만 돌부리에 걸렸다. 앞서가던 너는 잠시 멈춰 뒤를 돌아보았고, 뒤따르던 나는 네 손에 이끌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성곽을

By 이지선 - 햇살 좋은 창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