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수첩 : 思痕(사흔)
수첩은 밥이다. 나는 사랑하는 도구들에 밥이란 애칭을 붙인다. 적어야 살고 없으면 허기지는 그것. 누군가는 다 써버려야 사는 수첩을 나는 무지성으로 산다. 꽤 자주, 꽤 기꺼이. 반듯하고 단단한 하드커버를 보면 지나칠 수가 없다. 표지가 마음에 들면, 들춰서 내지를 확인한다. 가끔 당황할 때는 샘플도 없이 비닐로 꽁꽁 싸둔 노트를 발견했을 때다. 선이
수첩은 밥이다. 나는 사랑하는 도구들에 밥이란 애칭을 붙인다. 적어야 살고 없으면 허기지는 그것. 누군가는 다 써버려야 사는 수첩을 나는 무지성으로 산다. 꽤 자주, 꽤 기꺼이. 반듯하고 단단한 하드커버를 보면 지나칠 수가 없다. 표지가 마음에 들면, 들춰서 내지를 확인한다. 가끔 당황할 때는 샘플도 없이 비닐로 꽁꽁 싸둔 노트를 발견했을 때다. 선이
단어들이 내려가지 못하고 둥실둥실 떠다닌다. 누군가에게 닿지 못하고 뜬구름처럼 흐른다. 수신자도 발신자도 잃어버린 이곳에선 소리로 만들어진 언어라는 건 무용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우주복에 자막을 달아버렸다. 딱 그만큼 무거워진 우주복을 입고 단어들을 발사했다. -팀장님, 보이십니까? 제 뫌이 보이쉽니까? -이건 우리가 모두 청각장애인이 된 거 같은 기분이군. -에이 그건 좀 심한 뫌
임윤지당
숏츠를 내려보다 요즘 방영하는 드라마의 한 장면에서 스크롤을 멈췄습니다. 조선의 여인이 현재로 타임슬립해 면접장에 나타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는 신사임당, 허난설헌, 임윤지당을 차례로 언급하며, 이런 세상이라면 비혼을 선언하고 자기 분야의 제1인자가 되겠노라고 당차게 말합니다.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이지만, 임윤지당은 조금 낯선 이름입니다. "성인(聖人)과 나는 동류다." 조선 시대
[ 예? 담당 인력을 투입하는 게 아니라 그럼…… 여보세요, 듣고 계십니까? ] 인하는 해진과 묶인 상황도 잊고 펄쩍 뛰었다. “그래서, 어떻게 윗선이랑 딜을 하실 건데요?” “입 좀 다물어. 결정해도 내가 결정할 문제거든.” “아, 우리 형사님께서 또 귀엽게 고집을 부리시네.” 해진이 씩 웃으며 인하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면 이제부터 형사님께서 내 눈치 보는 거군요?
나는 연필,하면 아빠가 떠오른다. 공부 한번 봐준 적 없고, 손톱 한번 깎아준 적 없는 아빠가 유일하게 깎아주신 게 연필이었다. 일요일 저녁, 아빠가 집에 있는 날이면 우리 사형제는 아빠 곁에 두런두런 둘러앉았다. 날짜 지난 신문지 한 장이 촥 펼쳐지면, 제각기 필통에서 연필만 골라 좌르르 쏟아놓는다. 뭉툭해지거나 흑심이 다 닳아버린 연필들.
중학교 때 체육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 반에 체육 선생님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었다. 오래 전 일이고 졸업 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그 애 이름과 얼굴이 또렷이 기억이 난다. 우리가 친한 사이였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다만 그 애는 2차 성징을 비교적 빨리 겪었고, 그래서 우리보다 더 일찍 당황스러움을 경험해야
부부의날
순정으로 불타는 사랑으로 그러다가 전우애로 그러다가 애증으로 그러다가 측은함으로 다시 애정으로 다시 사랑으로 다시 전우애로 그러다가 미움으로 다시 애정으로 부부는 A였다가 B였다가 A+B, A-B, A*B, A/B 사칙연산을 하고 혼합계산을 하는 답을 찾고 만들어가는 사이.
동묘시장
현금 3만 원을 들고 주말 동묘시장에 갔다. 한 다큐멘터리에 나왔다며 엄마가 방문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어버이날이 하루 전이었으니 군말 없이 따랐다. 뉴트로 열풍과 함께 전통시장이 ‘힙’해진 것은 꽤 오래전이지만, 그중 동묘시장은 최근까지도 흐름이 유지되고 있었다. 내심 한번은 방문해 보고 싶기도 했다. 동묘시장에 가까워지자 그 시장의 원래 주인이었던 어르신들은 물론, 10대
학부모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작자의 마음입니다. 저와는 다르게 키우시는 부모가 많음을 알지만, 필자가 느낀 쉽지 않은 심정을 전달하고 싶어서 표현해 봤습니다. 틀리다가 아닌 다르다고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부모가 되었다. 그것도 3명의 아이를 가진 부모가. 내가 과연 이 어린아이들을 책임질 수 있을까? 매 순간 고민한다. 먹고 자고 싸고, 기본 생존에 필요한
아침 9시. 나는 타이머의 분침을 숫자 45에 맞춘다. 기지개를 한번 시원하게 켜주고, 비로소 글쓰기에 돌입한다. 긴장감이 손가락에 동력을 달아준다. 거침없이 딸깍딸깍거리는 소리가 엔진이 되어 뇌를 일깨운다. 무엇이든 쓸 준비가 돼 있고 써나간다. 물론 이렇게 쓴 글 태반은 휴지통 속으로 사라진다. 그래도 나는 쓴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시간감각은 인간의 원초적
청소년
[청소년 정신건강 칼럼] 중간고사가 끝난 봄날. 교실이 시끌벅적하다. “3반은 체육대회 유니폼 했대. 우리가 하려고 했는데” “그럼, 담임쌤 얼굴 박힌 티셔츠 어때?” “이건, 1반이 하기로 했다는데.” 곧 있을 체육대회를 앞두고 반 아이들은 벌써 들떠 있다. 응원 구호를 정하고, 함께 입을 응원복을 고르며, 누가 어떤 종목에 나갈지 이야기한다. 4등도 그 안에 섞여
“나 하나 꽃 피어,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나 하나 물들어,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말하지 말아라. 내가 꽃 피고 너도 꽃 피면 온 세상 꽃밭 되는 것 아니겠느냐.” 누가 봐도 노래의 클라이막스, 어떤 마디보다 힘을 주고 정성을 쏟아야 하는 지점이다. 그러면서도 아름다워야 하는 성악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