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반항을 눈물 나게 응원하며
딸아이의 돌 앨범을 만들었던 십수 년 전 그때 “무슨 일이 있어도 평생 네 편이 되어줄게”라고 적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하는 나는, 그보다 더 멋지고 만질 수 있는 말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할 수 있다면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근사한 말을 생각해 내고 싶었건만. 두뇌 가동 범위 내에서 생각해 낼 수 있는 최선이 ‘네 편’이란 말이었다.
가족의 관계란 모름지기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무슨 짓을 해도 내 편이 되어줄 한 사람만 있어도 누군가는 살아 나갈 수 있는 법이니까. 나는 부모로부터 그런 믿음을 받아본 적이 없었지만 딸이 생기면 꼭 그런 믿음을 주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왜 꼭 딸이라고 특정했는지는 모르겠다. 이유는 몰라도 아들이 아니라 딸이라고 성별을 특정해서 마음속에 쟁여두었다.
물론 내가 생각했던 딸과 그 뒤를 이어 나온 아들과, 나의 관계 모두 예상 밖이다. 나는 딸애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아들 녀석이랑 죽이 더 잘 맞는다. 때로는 아들 녀석에게는 쉽게 허락되는 일이 딸에게는 그렇지 못함을 느끼면서 유전자를 난도질하고 싶은 기분마저 들기도 했다. 이런 습성까지 엄마한테 물려받았다고 생각하면 징글징글했다. 그래,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와 나 사이에는 애증의 이슈가 있고, 나는 아마도 평생 그것을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내리사랑이라고. 엄마와 나의 오래된 관계를 돌이켜보기보다는 딸애와 나의, 조금은 신선하게 팔딱거리는 사이를 들여다보는 일이 많아졌다. 어찌 보면 이것이 극복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어떤 가능성과 미래를 그릴 때면 주인공에 나를 대입하기보다는 딸애를 대놓고 그려보는 일이 많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세대를 건너가는구나. 이렇게 한 시대가 가는구나.
쓸쓸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나는 여전히 다른 누구보다 나 자신이 소중하고 나를 중심에 두는 사람이기에. 그러나 책 속의, 영화 속의 여성들이 겪었던 일들, 그들이 통과의례처럼 겪어야만 하는 일들이 내 딸애에게도 찾아올 것임을 깨닫고 마음이 벅찼다. 그러면서 딸애의 앨범에 적어두었던 말, ‘네 편’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되새겼다. 자, 너는 어떤 식으로 그 애 옆에 있을 거냐. 그렇게 물었다.
나는 지켜볼 것이다. 딸애의 반항과 무자비한 무시가 나를 향했을 때 때가 왔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딸애의 첫 경험이 내 것보다는 괜찮은 경험이기를 온 마음을 다해 바랄 것이고 그 애의 첫사랑이 내 첫사랑과 달리 거름이 되는 관계가 되기를 기원할 것이다. 아이가 겪을 좌절과 실패의 경험이 자아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종류가 아니기를 바랄 것이다. 딸애가 그 경험을 적어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기도할 것이다.
오로지 옆에서 응원할 것이다. 아이가 자신의 결대로 살 수 있도록, 세상의 잣대로 보지 않고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 편이 되어줄 사람이 엄마인 나 혼자가 아니길 바라며, 세상에 내 편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안되는 일인지 알게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