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없다는 말을 넘어

소용없다는 말을 넘어
Photo by Paran Koo / Unsplash

중학교 때 체육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 반에 체육 선생님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었다. 오래 전 일이고 졸업 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그 애 이름과 얼굴이 또렷이 기억이 난다. 우리가 친한 사이였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다만 그 애는 2차 성징을 비교적 빨리 겪었고, 그래서 우리보다 더 일찍 당황스러움을 경험해야 했다는 사실이 기억난다.
100미터 달리기 기록을 재는 체육 시간, 그 애는 28초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웠다. 100미터가 끝나는 지점에 서 있던, 짝사랑 상대인 체육 선생님에게 가슴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그 애는 옷을 앞으로 모아 부풀게 한 뒤 달리는 것도, 걷는 것도 아닌 속도로 갔다. 똑바로 하라는 선생님의 호통을 듣고서 조금 달리는 척했지만 결과는 전교 꼴찌. 우리는 소리 내서 웃었다. 체육 선생님은 화난 것 같지는 않았고, 웃음을 참는 것 같았다. 창피해서 죽고 싶은 심정이라는 걸 온몸으로 내뿜었던 그 애의 새빨간 얼굴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당시에는 나도 소리 내 웃었지만 지금이라도 그랬을까 돌아보게 된다. 아마 그 애의 행동에 깔린 의도가 풋풋해서 웃음이 나올지는 몰라도 ‘진짜 깨는 애야’라는 식으로 웃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나 역시 2차 성징을 겪는 동안 내 몸이 보여주는 과정과 결과에 적잖이 당황했으니까. 짝사랑하는 선생님도, 남자 친구도 없었지만 내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그 친구가 그랬던 것만큼 나를 당황하게 했다. 내게는 창피함이 아니라 공포에 가깝다는 점이 달랐을 뿐.

공포를 초래한 건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한 사건 때문이었다. 중학생이 되어 어린이 티를 가까스로 벗게 되었을 무렵 실내 수영장에서 어떤 할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했고 나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당장 꺼지라고 말하지 못했고, 물속에서 내 몸을 더듬는 손을 뿌리치지 못한 채 얼어버렸던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피해자인 내가 그날을 반추하며 탓해야 했던 시간이 참으로 길었다. 나를 용서하지 못했던 시간 동안 가슴을 압박붕대로 감고 다녔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치마는 절대 입지 않았다. 당시에 찍었던 사진을 보면 나는 마치 어린 소년처럼 보였다. 그래야 내가 안전해지기라도 할 것처럼.

지금껏 살아오며 연을 맺었던 여성들에게는 같은 류의 이야기가 있었다. 이가 갈리도록, 내가 나서서 복수해 주고 싶을 만큼 듣기 힘든 이야기도 있었고, 웃픈 이야기도 있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든 여성으로서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 중 하나가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라는 것은 한숨이 나오지만, 그것 또한 엄연한 현실.
그로 인해 누군가는 나처럼 안전해지는 방법을 찾아 자기 몸을 억압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평생에 걸쳐 트라우마를 다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결코 그 경험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길은 없다. 지금은 그때 일어난 일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자책해야 할 사람은 피해자인 내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무성의 존재로 보이고 싶은 노력은 접었고, 가슴에 하고 다니던 압박붕대는 진즉에 풀었지만 누구나 괜찮아지는 동일한 경험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말해진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니 더 많이, 더 자주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한때는 자기의 경험을 말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당신과 내가 같은 경험을 갖고 있고 그걸 알았으니 그러면, 다음은 뭔가.
세월이 흘러 내 경험이 별로 특별할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제는 괜찮아’라고 생각해도 된다는 감각과 보편적인 일이기에 ‘이대로 둬선 안 된다’는 인식이 동시에 생겨났다. 그러면서 오래된 자격지심과 무력감이 생겼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가 없다. 안다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다. 나의 시도가 거대한 호수에 물 몇 방울 튀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을까. 세상의 구조란 너무나 견고한 반면, 그 안의 나는 나약하고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러나 한편으로 변화는 의외의 곳에서 생겨날 수도 있다는 점 또한 잘 알고 있다. AI가 인간의 트라우마를 다루는 시대에 어쩐지 여성의 자리는 한 뼘 더 위태로워졌지만 과거에 빚지고 사는 우리는 그동안의 투쟁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 아무것도 소용없다는 얘기는 조금 미뤄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뚝딱 하는 순간에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내가 말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준 여성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나 또한 누군가에게 곁을 내주어야 한다.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10주기 추모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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