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인 중독자의 하루

카페인 중독자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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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이걸 이 시점에 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쯤에서 접고 그냥 한 잔 시원하게 마셔버릴까 하는 생각을 참는 게 언제까지 가능할지 알 수 없다. 하루 종일 갈등 상황에 내팽개쳐진 기분이다. 대체 왜 이 고난을 사서 하는 건지 나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다. 마약이나 알코올도 아니고 그저 커피일 뿐인데.

시작은 그저 단순한 깨달음에서부터였다. 커피를 마신 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머리가 아프고 하품이 나오면서 졸리기 시작한다. 그때 커피를 한 잔 내려 마시면 어느새 두통이 가라앉는다. 그 순간 ‘아, 내가 확실히 카페인 중독이 맞구나’싶다.
뭔가에 중독된다는 것이 산뜻한 기분은 아니다. 스스로의 의지로 통제가 안 되는 상황에 대한 공포감이 있는 나로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한때는 치매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렸고, 영화 <스틸 앨리스>는 차라리 공포영화에 가까웠다. 그러니 단순한 것이든 뭐든 뭔가에 중독된다는 게 달가울 리가 없다. 그래서 상태는 고려하지 않고 이참에 끊어보자 했던 것이다.

시작은 간단했는데 과정은 생각보다 힘들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축약되거나 미화된 부분이 바로 여기다. 현실은 사실 디테일에 있는데 말이다. 중독자가 몇 분 정도 괴로워하는 영상을 음악과 함께 그리는 건 사실 대단한 왜곡이다. 그렇게까지 격렬하지도 않고 영상미도 없고 지질하고 지루한 과정에 가깝다. 마약 중독자는 보통 몇 분 정도(영상에서) 괴로워하다 다음 장면에서 초췌하지만 말간 얼굴로 나타난다. 카페인 중독자의 경우는 어떨까.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하루 종일 커피 생각에 안절부절 하는 것이 뭐 마려운 강아지 같다. 머리가 좀 아프고 온통 신경이 거기에 가 있다. 이러다 두통으로 죽는 건 아닌가. 약간의 현실감각을 잃은 공포감이 올라오고 혹시 이게 카페인 중독이 아니라 뇌졸중의 전조증상이 아닌가 싶은, 역시 현실감각을 잃은 건강염려증까지. 뇌졸중이었는데 카페인으로 인해서 그동안 전조증상을 완전히 묵살해버린...건.. 아, 그만하고 일에나 집중해야겠다.
그러면서 깨닫는다. 그동안 내 일의 성과는 카페인발이었다는 것을. 커피 없이는 왜 글을 한 줄도 못 쓰는 걸까. 이 정도면 글을 썼던 건 내가 아니라 커피였던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난 또 자괴감에 빠지고 열패감에 허우적대다 잠깐 소파에 앉아 풍경이나 보며 머리를 식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소파에 앉기만 하려고 했는데 잠은 또 왜. 전날 분명히 8시간을 잤는데 이상하게 졸리다. 몸이 점점 가라앉고 그렇게 잠들었다가 낮잠을 내리 두 시간을 자버린다. 어우, 오늘 밤에 잠자기는 틀렸네. 주섬주섬 몸을 일으켜 커피 없이 할 수 있는 일이라도 해보려 안간힘을 쓴다.
조금 노력하면 몸을 쓰는 일은 가능하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으려고 할 때 습관처럼 옆에 가져다 놓은 커피 한 잔. 완전히 체득해 습관처럼 굳어진 루틴이 아니라면 그럭저럭 일상생활은 가능하다는 걸 깨닫는다. 당분간은 집안일이나 좀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카페인 중독에서 벗어나려는 이 노력을 언제까지 해야 할지 가늠해 본다.
적어도 완전히 끊으려는 의도는 없다. 커피와 일상을 함께한 지 30년 가까이 되고 나름 몇 차례 커피를 끊겠다는 시도가 있었지만 완전히 끊는 데 (보시다시피) 실패한 건 커피를 안 마시면 사람들을 잘 안 만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카페에 가서 커피를 안 마시면 마실 수 있는 게 없다. 차를 마시면 된다고는 하나 내게 차는 맛없는 생수를 조금 견딜만한 것으로 만드는 대체제일 뿐. 단 음료나 탄산음료는 아예 안 마신다.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건 나의 최애 모먼트. 커피가 없다면 그 순간의 즐거움은 가파르게 줄어든다.
그러니 한 잔의 커피는 만남의 순간을 위해 아껴두어야 한다. 비록 억눌러온 욕망이 터져서 두 잔 세 잔 연거푸 마셔버릴지라도.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과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는 것 사이에서 선택한 타협점이 딱 거기다.

낮잠을 두 시간이나 잤으니 밤잠은 틀렸다고 생각했는데 여덟시가 되니 잠이 쏟아진다. 설마 잠을 그렇게 잤는데 잠이 오겠어? 설마 했는데 잠이 온다. 그대로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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