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을 잃은 언어 (1) - 필터 없는 말

중력을 잃은 언어 (1) - 필터 없는 말
Photo by Kryštof Zajíček / Unsplash

단어들이 내려가지 못하고 둥실둥실 떠다닌다. 누군가에게 닿지 못하고 뜬구름처럼 흐른다. 수신자도 발신자도 잃어버린 이곳에선 소리로 만들어진 언어라는 건 무용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우주복에 자막을 달아버렸다. 딱 그만큼 무거워진 우주복을 입고 단어들을 발사했다.

-팀장님, 보이십니까? 제 뫌이 보이쉽니까?
-이건 우리가 모두 청각장애인이 된 거 같은 기분이군.
-에이 그건 좀 심한 뫌 같은데오.
-언제 중력 만들어 준대? 그거 힘들 거 같지도 않구만. 우주인처럼 말고 지구인처럼 살고 싶다.

통통 튀어 오르는 공기 풍선처럼 걷고 있는 팀장은 두 다리를 땅에 붙이려고 버둥거렸다. 지구에선 그 카리스마에 말도 못 붙이는데, 우주에만 오면 저 뒤뚱거림에 팀장이 자꾸 귀여워진다.

-중력이 있어야, 지구처럼 밥도 먹고 씻기도 하고 그럴 거 아니냐고. 

두 다리로 중심을 잡는 걸 포기한 채, 땅에 앉은 것도 떠 있는 것도 아닌 이상한 자세로 행성의 미세한 중력에 몸을 맡긴 팀장은 행성에 굴러다니는 돌 중에 가장 얇고 뾰족해 보이는 거로 우주복 위를 쿡쿡 쑤셔대며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지구 중력이 좋으면 지구에 있지, 왜 우주인을 지원하셨냐는 말이 생각났지만, 텍스트로 쓰지는 않았다. 이 자막 기계는 뇌파와 연결되어 있어서 생각만으로도 글을 쓸 수 있지만, 그 기능을 나는 꺼놨다. 개인적으로 생각까지 통제하는 건 너무 힘들었다. 내면을 들키는 일보다는 입으로 나오는 언어만 텍스트로 쓰는 방법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미나씨, 그거 뇌파 연결로 입력값 바꿔. 텍스트 정확도가 너무 떨어져.
-아니애요. 저는 이게 푠합니다. 

생각을 거치지 않고 발설되는 단어들을 스스로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팀장의 머릿속이 우리에게 텍스트로 다 전달되고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제어가 되고 있다고 믿는 모양이었다.

-저거 저거, 또 똥 싸놨구먼. 저 자식은 언제 어른 되는 거야.

툭하면 팀원들을 욕하는 텍스트가 자막 액정에 떴다. 일부러 저런다고 의심한 적도 있었지만, 총책임자가 왔을 때도 욕이 써지는 걸 보고 알았다. ‘모르는구나.’ 몰라서 저렇게 용감하구나. 팀장이 싸질러 놓은 단어들이 자신을 공격하는걸 경험한 직원들은 하나둘 뇌파 연결을 끊었다. 

-팀장임, 오늘 수푸드시겠어요? 아님 쉨크 드식엤어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나 양송이수프!
이 새끼들은 왜 뇌파 연결을 끊어서 못 알아듣게 지랄이야. 편한 걸 놔두고.

팀장의 욕을 실시간 텍스트로 봐야하는 여긴 유일하게 생명체가 살았다는 증거가 나온 행성. 우리처럼 잠시 왔던 탐사선이 지구로 돌아가지 못하고 생명체의 흔적을 남긴 것인지 연구가 필요했다. 우리 지구인의 흔적인지, 아니면 외계인의 흔적인지. 더 많은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정차 중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3일. 그 시간 안에 답이 없다면 복귀 에너지를 위해 지구로 출발해야 한다.

그때 수신기에 텍스트가 배달되었다. 근처 순찰을 나선 지질전문가 조이였다.

-미나씨, 뼈처럼 생긴 화석이 발견됐어요. 북위 25도, 동경 173도 부근입니다.
-알겠습니다. 조이씨, 본부에서 챙겨갈 장비 없나요?
-다 가져왔   s ㅡㅂ  %2ㅣ ㄷ ㅏ
-왜 이렇게 텍스트 정확도가 떨어지죠? 조이씨, 통신 반경에서 너무 멀어졌나봐요!
-조이님이 접속 해제 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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