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지당
숏츠를 내려보다 요즘 방영하는 드라마의 한 장면에서 스크롤을 멈췄습니다. 조선의 여인이 현재로 타임슬립해 면접장에 나타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는 신사임당, 허난설헌, 임윤지당을 차례로 언급하며, 이런 세상이라면 비혼을 선언하고 자기 분야의 제1인자가 되겠노라고 당차게 말합니다.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이지만, 임윤지당은 조금 낯선 이름입니다.
"성인(聖人)과 나는 동류다."
조선 시대 여성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기 힘든 주장입니다. '감히 여성이?'라는 편견의 벽을 깨부순 주인공, 바로 조선의 여성 철학자 임윤지당(任允摯堂, 1721~1793)입니다.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이 뛰어난 예술성으로 기억된다면, 임윤지당은 '철학'으로 존재를 증명했습니다. 당대에 예술은 여성에게 유희로써 어느 정도 허용되었지만, 성리학은 오직 남성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우주의 이치를 논하고 성인의 경지를 묻는 엄숙한 철학의 세계, 임윤지당은 여성을 가두던 그 금표를 당당히 넘어섰습니다.
사실 그의 삶은 안팎으로 가혹했습니다. 명문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유교 경전을 읽으며 자랐지만, 시대가 요구한 덕목은 배움이 아닌 침묵이었습니다. 열아홉에 결혼해 8년 만에 남편을 잃었고, 친자식과 양자마저 차례로 먼저 보냈습니다. 스스로를 외롭고 고통스러운 처지라 탄식할 만큼 삶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삶의 반경이 고통으로 좁아질수록, 역설적이게도 사유의 지평은 넓어졌습니다. 임윤지당은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 같은 주자학의 핵심 의제들을 정면으로 파고들며 외쳤습니다.
"하늘이 부여한 본성은 남녀가 다르지 않으니, 성인의 경지 또한 여성에게 닫혀 있지 않다."
남들이 한 번 힘쓸 때 자신은 천 번을 힘써 성인이 되겠다던 그의 다짐은, 당대 기준으로 지극히 혁명적인 선언이었습니다.
그의 유고집인 《윤지당유고》에 수록된 《척형명(尺衡銘)》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자(尺)와 저울(衡)을 보며 길이와 무게를 바르게 재듯, 스스로를 끊임없이 경계하고 성찰하겠다는 다짐을 담은 글입니다. 짧은 명문 안에 정밀한 자기 규율과 엄격한 수양론이 밀도 높게 응축되어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 이런 여성 철학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으십니까? 다른 시대에 태어난 임윤지당을 상상해보려다, 도리어 그 엄혹한 시대에 태어나서도 이만큼 나아간 인간이 있었다는 사실에 깊은 깨우침을 얻습니다.
배움은 누구의 것인가. 가능성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살면서 그 답을 온몸으로 써 내려간 철학자, 임윤지당이었습니다.
임윤지당의 말.
남녀의 성품은 본질적으로 같고 역할의 차이뿐이다
남녀의 존재를 상호보완적이라 보되, 성품으로는 남녀의 차이가 없고 오직 사람이 있을 뿐이며, 현실에서의 남녀 차이는 하는 역할의 차이에 불과하다
여성도 학문을 닦는 것은 하늘이 부여한 성품을 닦는 것이기 때문에 금할 이유가 없다
다만 부녀자의 직분 안에서 심신 수양을 목적으로 학문할 것을 권하였다.
전혜원, 『윤지당유고를 통해 본 임윤지당의 생애와 사상』, 전북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7,25~26p
성인과 어리석은 사람의 차이가 처음 부여받은 성품 자체의 차이가 아니라, 그 성품을 둘러싼 기질의 청탁과 그에 대한 학문·수양의 정도에서 비롯된다
전혜원, 『윤지당유고를 통해 본 임윤지당의 생애와 사상』, 전북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7, 25~26p
“누구나 학문과 수양을 통해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보았고, 자신의 궁극적 목표를 성인에 이르는 심신수양과 학문도야로 삼았다”
전혜원, 『윤지당유고를 통해 본 임윤지당의 생애와 사상』, 2007, 25~26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