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파밍한 나라는 유물 _ 동묘시장과 풍물시장

시장에서 파밍한 나라는 유물 _ 동묘시장과 풍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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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3만 원을 들고 주말 동묘시장에 갔다. 한 다큐멘터리에 나왔다며 엄마가 방문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어버이날이 하루 전이었으니 군말 없이 따랐다. 뉴트로 열풍과 함께 전통시장이 ‘힙’해진 것은 꽤 오래전이지만, 그중 동묘시장은 최근까지도 흐름이 유지되고 있었다. 내심 한번은 방문해 보고 싶기도 했다.

 

동묘시장에 가까워지자 그 시장의 원래 주인이었던 어르신들은 물론, 10대 청소년부터 청년, 중년, 외국인까지 너나 할 것 없이 한데 어우러졌다. 벽이든 바닥이든 공간만 있으면 물건들이 잔뜩 늘어져 있었다. 알록달록한 천막과 마구잡이로 쌓은 물건들. 무질서가 이 시장의 질서였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보고 만지며 한껏 즐겼다. 옷걸이에 걸린 건 5천 원부터, 그밖에는 가격 상한선이 3천 원이었다. 좌판에 쌓여 있는 옷가지들은 마음대로 헤집어도 되고, 꼭 사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품목은 또 어찌나 다양한지. 생필품부터 귀해 보이는 장식품까지 가득했다. 물건을 볼 줄 아는 눈만 있다면 ‘득템’을 할 것 같았다. 사진을 찍는 외국인들 곁에서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여기 완전히 길바닥 ‘다이ㅇ’잖아.”

 

결국 빈손이었다. 어느 순간 중고 물품들 속에서 ‘파밍’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어떤 건 너무 지저분해 보였고, 비슷한 가격에 훨씬 품질 좋은 새 제품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다는 생각이 나를 설득했다. 엄마는 총 2만 3천 원어치 물건을 샀다. 검은 봉투에 담긴 것은 내가 가치 없다 외면했던 것들이었다. 장식용으로 쓰기에도 마땅찮은 잡동사니들을 보며 답답함을 삼켰다. 나는 쓰지 않을 무언가를 사 놓고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언젠가 꺼내 보고 싶을 때를 위해 뭐든 모아 두려 했다.

 

우리는 30년 넘게 살던 집에서 이사할 때 많은 것을 버려야 했다. 넓지도 않은 집에 뭐가 그렇게 많았는지, 창고처럼 한쪽에 쌓아 놓은 상자 안에는 말 그대로 온갖 것이 있었다. 대부분이 나와 오빠의 물건들이었다. 세월만큼 짐이 많은 거야 당연하다, 이 정도면 적은 편이다 위로해주는 이삿짐센터 사람들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먼지만 쌓인 채로 뭐가 어디에 있는지 기억도 못 하는 물건을 기어코 이삿짐에 실은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다. 결국 새집에서 짐을 풀면서 내 물건 대부분을 버렸다. 어릴 때 갖고 놀던 장난감, 빼곡하게 공부한 공책들, 작아진 옷들. 사진으로 찍어 두긴 했지만 끝내 열어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풍물시장으로 넘어가서야 엄마의 마음을 엿보았다. 내가 물건을 소비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따져 볼 때 엄마는 그것에 담긴 이야기를 찾았다. 집에 가기엔 아쉬운 날씨라 한번 들러본 풍물시장은, 실내에 구획이 색깔별로 구분되어 있었다. 문을 닫는 중이었는지 고요했다. 서늘하게 느껴질 때쯤 영업 중인 골동품점이 온기를 내뿜고 있었다. 주인을 잃은 흑백 인물 사진과 은은하게 빛나는 자개함, 아직도 이모네 집에 있는 고급 장식장들이 있었다.

 

엄마는 이런저런 물건을 살펴보다가 반가워하며 기다란 막대기를 가리켰다. 언뜻 악기 같기도 했다. “이거 엄마가 어릴 때 쓰던 거야. ‘북’이었나. 이걸로 실을 짜서 천을 만들었어.” 그러자 옆에 있던 사장님이 ‘바디’라고 정정해 주었다. 두 사람이 추억을 직조하는 사이, 나는 어떤 깨달음 속에 있었다. 이곳에 있는 물건들은 실제 누군가가 쓰던 물건이라는 것이 그제야 와닿았다.

 

 

어릴 때 엄마는 시골집에서 대도시로, 서울로, 다시 여러 차례 형제들 서울 집을 오가야 했다. 부자 사촌의 눈치를 보면서 방을 나눠 쓸 때도 있었다. 당신 물건을 한곳에 오래 수집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비단 엄마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격동의 현대사를 거치면서 귀하든 귀하지 않든 세간살이 물건들을 오래 간직할 수 없었다. 때로는 팔아야 했고, 때로는 버려야 했다. 누군가가 가족을 위해 포기했어야 하는 것들이었다.

 

박물관에 보존될 정도로 귀한 보물들은 그것을 관리할 사람과 보존할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것을 지키고 싶은 여러 마음이 필요하다. 그래서 귀하다. 시장에 나와 있는 중고 물품들도 그처럼 값지다. 물건 대신 지켜낸 사람들 값어치만큼. 나만큼.

 

주말 중고 시장은 사랑으로 가득했다. 검은 봉투 속에서 달그락거리는 것은 ‘나’라는 유물의 다른 이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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