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뤄진 완공, 뼈만 남은 물고기 _ 소설《노인과 바다》
성가족 성당,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중앙탑 '예수 그리스도의 탑'이 144년 만에 완공되었다. 건축가 가우디 사망 100주기에 맞추어 레오 14세 교황이 직접 참석해 축복식과 준공식을 진행했다. 생각보다 이른 ‘완공’ 소식에 놀랐다가 전체 완공은 아직 멀었다는 전망에 마음이 다시 가라앉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완공이면 좋은 게 아닌가. 왜 나는 끝나지 않기를 바랐던 걸까.
내가 그곳을 방문했던 건 2015년이었다. 당시 나는 스페인의 한 지방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막 시작한 참이었다. 스페인어를 1년 넘게 공부했지만, 어떤 말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내가 영어를 너무 못한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남의 도움을 받아야만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삶은 낯설었다. 그렇게 자괴감이 고조되었을 때, 바르셀로나로 향했다. 같은 시기에 스페인 순례길을 걸은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아무런 계획도 하지 않아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다행히 건축에 관심이 많았던 친구가 가우디의 행적을 따라다녀야 한다며 이끌어준 덕분에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 주객이 전도된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그때 완공 일자를 두고 누군가 말했다. “요즘 발전된 기술로 진작에 완공하고도 남는다. 마케팅일 뿐이다.” ‘미완’을 마케팅 요소로 삼고 완공되었을 때 다시 방문하게 만드는 방법이라는 말이었다. 진실인지는 담당자만이 알겠지만, 완공 소식에 순간적으로 아쉬웠던 걸 보면 나는 이 의견에 힘을 실어주는 셈이었다. 어쨌거나 70대 둘째 이모가 기뻐하실 테니 다행이었다. 당신 생전에 완공되는 것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하셨으니 말이다. 신실한 기독교인인 이모에게도, 완공이 미뤄지길 바라는 나에게도 좋은 소식이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에서 노년의 어부 산티아고는 엄청나게 거대한 청새치를 잡았지만, 상어 떼에게 뜯겨 뼈만 들고 마을로 돌아온다. 그는 지난 84일 동안 물고기를 잡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보고 운이 다했다고 했고, 그것은 마치 그의 삶도 끝났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래서 산티아고는 아끼던 소년 마놀린을 밀어냈다. 먹을 게 없으면서 밥을 먹었다고 거짓말하며 소년의 도움을 거절했다. 최소 두 명은 함께 배에 타야 했지만, 그는 홀로 바다로 향했다. 평소보다 더 먼 곳까지 나갔다. 그의 삶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그동안의 모든 불운을 상쇄할 만한 거대한 청새치를 만난다. 기회를 노리던 그는 끈질긴 사투 끝에 청새치를 잡아 올렸다. 하지만 그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상어와 여러 차례 혈투가 이어지고, 그는 결국 살아남았다. 그의 곁엔 뼈만 남은 청새치가 전부였지만 말이다. 그때 놀라운 일이 생긴다. 마놀린은 물론 그를 걱정하던 마을 사람들이 돌아온 그를 따뜻하게 맞이했고, 그의 귀환을 반겼다. 돛배에 묶인 뼈만 남은 청새치도 영광의 상징으로 당당히 자리 잡았다.
‘뼈만 남은 물고기.’ 노인의 영광은 그뿐이었다. 그러나 그뿐이었기에, 오히려 가치 있었다. 소년 마놀린은 살아남은 그에게 ‘다음’을 말했다. 노인의 운이 다하지 않았으니, 아니 다했어도 상관없었다. 그들은 다음에 함께 바다에 나갈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뼈만 남은 물고기를 보며 노인의 투지를 상상했다. ‘미완’의 경이로움이었다.
뼈만 남았기에 다음 만선을 꿈꾼다. 미완이기에 완공을 기다린다. 나의 반년 교환학생은 결국 스페인어 말문을 트이지 못하고 끝났지만, 나는 다음을 꿈꾸며 여전히 하루의 끝을 스페인어로 마무리한다.
바르셀로나 곳곳에 파격의 아름다움을 남긴 가우디는 노숙자로 오해받고 길에서 죽었다. 사람들은 그의 삶을 144년 동안 기렸고, 앞으로도 기릴 것이다. 나 또한 하루 한 시간을 채워갈 테다. 완공될 그날을 기다리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