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a. 스물여덟, 스물아홉, 서른이 된 사람들

Extra. 스물여덟, 스물아홉, 서른이 된 사람들
이미지 출처: © 창비 / Photo by 이표

20○○년 ○월

손에 익은 일은 머리를 복잡하게 쓰지 않아도 자연스럽다. 가장 먼저 커피 머신을 켠다. 우리 카페에서 가장 비싼 놈이라던 사장님의 말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 같다. 제빙기 얼음이 잘 채워졌는지 확인하고, 전날 마감 아르바이트생들이 곳곳에 뒤집어 말려 놓은 집기들을 제자리에 가져다 둔다. 화장실 휴지를 일부러 안 채워 놓는 것이 분명하다고 구시렁거릴 때쯤 짤랑, 하는 소리와 함께 사장님이 출근한다. 인사를 하고 난 후 청소기를 가지러 창고로 향한다. 사장님이 주방 쪽 오픈 준비를 마무리하는 동안 나는 카페 이곳저곳을 쓸고 닦아야 했다.

 

청소를 마치고 돌아오니 그날따라 주방 일이 더뎌 보였다. 사장님은 오븐을 켜놓지도 않고 휴대폰만 붙잡고 있었다. 정신없어 보이는 사장님에게 대신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휴학하는 동안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하던 카페는 오전 11시 어중간한 시간에 열었다. 나는 평일 오픈 아르바이트생이었고, 어차피 평일 손님은 주로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빙수를 먹으러 오는 중·고등학생들이었다. 그때까지는 혼자 조용한 시간을 즐기고 싶거나, 비밀스러운 만남을 원하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날따라 처음 방문한 손님이 많았다. 눈에 익지 않은 손님들이 처음 만들어보는 메뉴를 주문했다. 신경 쓸 게 많았다.

 

그런데도 사장님은 손님이 잘 찾지 않는 창가 자리에 앉아 미동이 없었다. 집에 무슨 일이 있으신지 물어야 하나 고민했다. 숨을 돌리고 나도 간식을 챙겨 먹을 때쯤, 사장님은 불거진 눈으로 나에게 말했다. “애들 어떡하니, ○○야. 이 많은 애들이… 세상에.” 나는 출근 준비 시간에 맞춰 간신히 눈을 뜨고 달려와서 세상 소식과 단절되어 있었다. 고등학생 자녀가 있는 사장님은 참담한 얼굴이었다. 따로 검색해 보니 온갖 제목들이 눈에 들어왔다. “구조하고 있다는데요? 괜찮을 거예요.” 깊이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앞으로 몰아칠 손님들을 위해 빙수 재료를 준비해야 했다.

 

교복 입은 학생들이 줄을 이었다. 개중 나를 언니라고 부르며 퍽 친근하게 구는 애들도 있었다. 마감 아르바이트생이 또 지각했다. 그를 보러 온 여학생들의 얼굴에 기대감이 차올랐다. 나는 그 잘생긴 얼굴을 몰래 노려봐준 뒤, 5분 거리 집으로 향했다. 가족들도 뉴스를 보고 있었다. 사장님이 보여준 화면과 바뀐 게 없었다.

 

“구조했다며.”

“아니래. 세상에. 저렇게 코앞에 있는데.”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며칠 사이, 단체 채팅방에서도 이야기가 계속 오갔다. 수학여행, 침몰, 에어포켓, 수습.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 한 문장에 있었다. 누군가를 시작으로 프로필 사진이 전부 노란색으로 바뀌었다.

 


2017년 5월

 

한창 마블 시리즈에 빠져 있었다. 친구들과 <스파이더맨:홈커밍>을 보러 영화관으로 향했다. 아직 어린 학생인 피터 파커가 영웅 스파이더맨으로 성장하는 내용을 담았다. 재미있었다.

 

내 웃음은 큰 배가 반으로 쩍 갈라지는 장면에서 멈췄다. 배에 타고 있던 민간인들은 속수무책이었다. 거대한 배가 순식간에 기울었고, 엄청난 물살이 그들을 덮쳤다. 스크린 속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 피터는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의 좌절감이 느껴졌다. 내 가슴이 지나치게 두근거렸다. 화면에서 눈을 떼고 귀를 막고 싶었다. 숨이 막혔다. 곧 아이언맨이 등장하자 습관적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그제야 누가 날 보고 있었을까 봐 민망했다.

 

영화관을 나서며 누군가에게 어서 털어놓고 싶었다.

 

“나 알고 보니 트라우마가 있었나 봐. 아까 그 장면에서 너무…”

 

서둘러 말을 멈췄다.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내 감정이 갑자기 초라해졌다. 트라우마라니. 내가 도대체 뭐라고. 당사자도 아닌 내가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건가. 3년이나 지나서 오락영화를 보다가? 감히.

 


2025년 9월

 

처음으로 ‘문학 주간’이란 것을 알았다. 프로그램 목록에 최근 재밌게 읽은 단편 소설의 작가 이름이 보였다. 연극 「유원」을 연출가, 배우, 동명의 청소년 소설의 작가 셋이 이야기한다고 했다. 결국 당일까지도 소설을 읽지 않았지만, 뭐라도 배워오자는 마음으로 대학로로 향했다. 관객석엔 청소년들과 학부모들이 많았다. 작품을 열성적으로 이야기하는 그들의 마음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연극을 이미 본 관객을 대상으로 열린 행사였기에, 나는 대충 내용을 유추하며 들었다. 유원이 인물 이름이었구나, 원이와 수현이의 우정이 담겼구나, 화재 사건 이후 엮인 인물들의 복잡한 심경을 그렸구나, 배경 옥상이 그런 의미구나. 한참 연극 이야기가 흐르고, 누군가 작가에게 물었다. “『유원』을 쓴 계기가 있으신가요?”

 

작가의 입에서 ‘세월호’가 나왔다. 참사 이후의 사람들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 말은 꽤 담백하게 들렸다. 나는 달랐다. 갑자기 내 마음을 누군가 틀어쥔 듯했다. 외부인처럼 관조하던 나는 예상하지 못한 이유였다.

 

연극 연출가는 눈물을 보였다. 그가 어릴 적 인천의 한 동네에서 일어난 참사의 현장 앞을 지나면서 느꼈던 감정을 말했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의 부채감 같은 것들. 그런 것을, 내가 느껴도 되는 거였나.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현장에서 나는 곧장 그들의 일부가 되었다.

 


2026년 4월

 

책을 샀다. 휴대폰 화면에서 4월 3일이라는 날짜가 눈에 들어왔다. 당장 읽어야 했다. 표지엔 '유원'이라는 두 글자와 함께, 옥상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 두 소녀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선명한 푸른색이 마음에 들었다.

 

소설은 화재 사건이 12주기가 되기 며칠 전, 예정의 생일날부터 시작한다. 원이는 참사의 생존자로서 세 명의 몫을 안고 살아야 했다. 원이를 살리고 죽은 언니 예정이의 몫, 원이를 살리다가 불구가 된 아저씨의 몫까지. 사람들은 유원이 행복해야 한다고 했고, 불행해야 한다고 했다. 너무 무거웠다.

 

다시 달력을 보았다. 12주기. 벌써 그렇게 됐구나. 예정이는 살아 있었다면 스물아홉이 되었겠네. 아이들은 서른이 되었겠구나. 아, 만 나이를 쓰려나.

 

스물여덟, 스물아홉, 서른이 된 아이들.

 

메모장에 썼다가 ‘아이들’이란 글자를 ‘사람들’로 고쳤다. ‘살아남은 아이들’로 고정되지 않기를 바랐다. 딱 한 사람의 몫만 지고 사는 것도 벅차다. 원이가 현재 어떻게 자라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다.

 

그 나이 땐 왜 그렇게 빙수가 좋았을까. 이제는 찬 게 좀 부담스럽지만, 가끔 그 맛을 추억하고 오늘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그런 시시한 하루를 보낸다. 너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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