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빗소리 _ 농장 시뮬레이션 게임

4월의 빗소리 _ 농장 시뮬레이션 게임
이미지 출처: 스타듀밸리 (Copyright by ConcernedApe)

가슴이 철렁했다는 표현은 너무 진부하다. 그렇지만 이처럼 정확한 표현은 없다. 문자 속 “불합격”이라는 단어만 유난히 선명해 보였다. 또 탈락이다.

 

하긴 면접 전부터 기분이 이상했다. 오후 3시 면접에 적어도 5분 전에 와 있으라는 문자가 왔다. 공지가 없어도 15분 전에는 면접장에 도착해 있어야 한다. 나는 35분 거리의 면접장에 가기 위해 2시 17분에 집에서 나왔다. 간신히 8분 전에 도착할 시간이었다. 오후의 서울 버스는 간격을 맞추기 위해 평소보다 천천히 달렸다. 5분 전은커녕 아예 지각할 것 같았다. 그런데도 내 마음은 둥둥 떠 있었다. 할 말을 반복해서 외우면서 시계를 확인했다. 도착 예정 시간이 점점 늦어진다. 조급해야 마땅하지만, 그냥 모르겠단 심정이었다.

 

막판에 조금 뛴 덕분에 늦지 않게 도착했다. 물을 마시고 대기실에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옆자리엔 같은 면접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예상보다 인원이 많았다. 저마다 옷차림이 달랐다. 어떤 이는 각 잡힌 정장 차림이었다. 면접 복장은 보수적일수록 좋다. 반대로 대다수는 지나치게 자유로운 복장이었다. 괜찮은가, 싶다가 뭐 어쩌겠나 하는 심정이 되었다. 내 옷을 보게 된다. 추울 때 면접은 처음이었다. 옷장 깊숙한 곳에 모직 투피스가 있어서 해결했다. 블라우스 대신 목티를 입었다. 면접 복장을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었다. 계절마다 면접 복장을 갖추는 것도 일이니까.

 

내 차례가 되어 면접장에 들어갔다. 입을 떼자마자 이틀간 달달 외운 문장이 형편없이 나왔다. 분명 남의 옷차림을 살피며 물을 마실 만큼 여유로웠는데 목덜미가 뻣뻣해졌다. 목소리가 선명하게 나오지 않아 양해를 구하고 말을 멈췄다. 창피했다. 아니, 솔직히 창피하지 않았다. 이런 면접자가 한둘인가. 시간이 지나고 공간이 익숙해지자 나는 곧 떨지 않을 수 있었다. 모든 말이 웅웅대는 소리로 바뀌었다.

 

그래도 면접을 그리 망쳤단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말을 더듬었고 마지막 어필 기회도 제대로 살리지 못했으니 망친 면접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난 ‘이상하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도착한 지 20분도 되지 않아 면접장을 나왔다. “버스 환승이 될까, 아 하필 같은 버스가 오네. 그럼 새로 찍히는데.” 이런 생각을 하며 버스에 올라탔다. 분명 하나를 끝냈는데, 자유로운 느낌이 나지 않았다.

 

취준생 타이틀은 나의 감각을 다 지워버렸다. 의미 없이 반복되며 하루하루가 지나치게 빨리 흘렀다. 상황이 안정만 되면 재밌는 무언가를 하겠다는 계획도 없어진 지 오래였다.

 

 

참 결과를 빨리 내준다. 이곳은 불합격 문자도 주고 친절했다. “연락 없으면 그런 줄로 알아.” 같은 숱한 기업들도 많은데 말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잔인하게 느껴질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도 모르게 또 기대했었나 보다. 횡설수설 속에 내 진심이 잘 전달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면접까지만 가기만 하면 가능성이 있으니까. 면접 결과란 게 그랬다. 내가 왜 뽑혔는지도 왜 떨어진 건지도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다른 공고를 확인했다. 즐겨찾기 해두었던 공고는 모레까지였다. 그냥 내일 내버리자. 여러 자기소개서를 재조립해 본다.

 

 

아.

다시 보니 자격 요건이 하나가 안 맞다. 시간 낭비하기 전에 알아서 다행이다.

 

 

 

 

XX.

 

XX!!!!!

 

뭐가 다행이야, XX!!!!!!

 

입 밖으로 온갖 험한 욕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몇 등이었을까. 한 명 뽑는 자리에 아쉽게 2등이었을까. 대기실에 겨우 시간 맞춰 왔다는 게 전달됐을까. 혹시 합격자가 입사 취소하면 나에게 연락이 오는 건 아닐까. 다시 문자를 확인해 보니 확실한 불합격 같다.

 

이미지 출처: 스타듀밸리 (Copyright by ConcernedApe)

 

새로 쓰려던 지원서를 덮은 채, 잔뜩 경직됐던 목덜미를 억지로 풀어본다. 게임을 켰다. 혼자 농장을 경영하는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게임 내 오전 6시부터 새벽 2시까지 하루를 가득 채워 돌아다닌다. 하루는 광산에 가고, 하루는 낚시만 한다. 도구를 업그레이드해 가며 레벨을 높인다. 하는 만큼 보상이 따라온다. 운이 좋으면 특별한 아이템이 나온다. 잠자는 시간을 놓쳐 집 밖에서 쓰러진 나를 이웃이 구해준다. 이 작은 마을 속 이웃들은 친해지면서 저마다 사연을 풀어 놓는다. 나는 그들이 좋아하는 선물을 주며 호감을 쌓는다.

 

졸린 눈으로 바위를 깨고 또 깼다. 이제야 눈물이 나왔다. 잠 때문인지 소금기 때문인지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게임 속 어느 봄날, 세찬 봄비가 내렸다. 빗방울 소리가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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