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역승도 승이다 _ 해외 축구 프리미어리그

꾸역승도 승이다 _ 해외 축구 프리미어리그
이미지 출처: Tottenham Hotspur Official Website © 2026 Tottenham Hotspur FC

꾸역승도 승이다. 우당탕 골도 골이다. 토트넘 홋스퍼는 시즌 마지막 경기를 1:0으로 이기고서야 겨우 프리미어리그 잔류를 확정 지었다. 6만 2천 관중석이 꽉 찼다. 처참한 경기를 차마 두고 보지 못하겠다던 팬들은,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경기장을 찾았다. 지난 시즌 유로파리그 우승컵을 축하하던 그 길에 다시 서서 선수들을 맞이하고 힘을 실어주었다. 잔류가 확정된 후엔 경기장을 떠나지 않고 강등되지 않은 기쁨을 함께 누렸다.

 

하마터면 50여 년 만에 2부 리그로 강등될 뻔했다. 한 해설자의 말처럼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자기 팀이 1부 리그에서 떨어지는 걸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토트넘은 프리미어리그에 있는 게 당연했다. 팀의 중심을 잡아줄 베테랑 선수 없이, 핵심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인한 이탈 속에서, 사령탑 감독까지 바뀌면서 한 시즌을 버텨야 했다. 매 시즌 반복되었던 문제가 이번 시즌에 한꺼번에 터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마음이어도 모자랄 판이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았다. 강등되는 순간 빚더미인 구단은 주급 비싼 선수들을 팔아야 한다. 그렇게 한번 강등되면 한동안 1부 리그 복귀는 요원할 터였다. 팀이 조각날 상황이었다. 누군가는 강등을 막으려 노력하는 동안, 누군가는 몸값이 떨어지기 전 다른 팀을 알아볼 것이 뻔했다. 그렇게 어수선한 시즌에, 마지막까지 황당한 경기력을 보였으나 결국 의지로 승점을 따냈다.

 

이미지 출처: Tottenham Hotspur Official Website © 2026 Tottenham Hotspur FC

프로 축구를 보다 보면 축구야말로 결과가 중요한 스포츠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몸을 다쳐가며 열심히 했어도 결과가 따라오지 않으면 90분의 경기는 무의미해진다. 반면, 이렇게 재미없나 싶은 지지부진한 경기에서 쌓은 공격 포인트와 골 기록은 평생 남는다. 어떻게 이겼든 똑같이 3점이 쌓이고, 사활을 다해 비긴 경기도 1점을 나눠 갖는다. 지는 팀에겐 점수란 없다. 그 경기가 무려 챔피언스리그나 월드컵 결승전일지라도, 승부차기에서 놓친 단 한 골로 모든 명암이 갈릴 뿐이다.

 

아무리 위대한 선수여도 우승컵 한 번 들어보지 않은 선수는 은퇴한 후에도 결점으로 남는다. 말을 바로 해야겠다. 애초에 우승컵 한 번 들어보지 못한 선수를 위대하다고 하지 않는다. 위대한 미드필더, 위대한 수비수보다 골망을 직접 흔든 위대한 공격수를 기억하기 쉽다. 경기가 끝난 후 카메라는 결정적인 골을 넣은 선수를 우선 비춰준다.

 

이미지 출처: Tottenham Hotspur Official Website © 2026 Tottenham Hotspur FC

 

그것이 바로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이다. 아마추어(amateur)의 어원은 사랑하는 사람이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 축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고, 그만큼 아마추어는 어디에나 있다. 그들에게 축구는, 하기만 해도 좋은 것이다. 결과가 있으면 좋고 없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과정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반면 프로는, 세상에서 축구를 제일 잘한다는 사람들이 모여 수천억이 오가는 리그에서 뛰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겐 그만한 결과를 낼 의무가 있다.

 

우리는 인생을 프로 선수로 살아야 한다. 주기적으로 시험을 치르며 결과를 내왔고, 그 결괏값이 다음의 결과로 이어지는 진리를 학습했다. 냉정한 프로 세계에서는 아마추어를 용납하지 않는 법이다.

 

물론 프로처럼 살기엔 쉽지 않다. 실존을 고민할 만큼 깊은 경험을 한 사람들은 인생을 즐기지 못했음을 한탄한다. 아마추어로 살아야 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인생이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경기를 치르는 것과 같다. 쿨링브레이크를 만들어가며 물을 마셔줘야 하지만, 언제 얼마나 브레이크 걸어야 할지 알 수 없다. 혼자 감독과 선수와 심판이 되어 규칙을 세우고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 심지어 구단주도, 팬도 내 몫이다.

 

이미지 출처: Tottenham Hotspur Official Website © 2026 Tottenham Hotspur FC

 

그래도 위로가 되는 것은 잔류만 해도 박수받는다는 사실이다. 토트넘은 시즌 동안 밀린 숙제를 하듯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마음 졸이다가 겨우 승점 2점 차이로 잔류했다. 마음고생하던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울음을 터뜨리거나 포효했고, 팬들은 순수한 기쁨으로 화답했다. 어쨌든 잔류라는 결과를 냈으니, 다음에 더 잘하면 된다고 말이다. 마치 우승했을 때처럼 길을 걸으며 노래한다.

 

때로는 우승하고, 때로는 겨우 간당간당 잔류하는 프로의 삶.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경기를 혼자 꾸려 나가는 삶. 그러니 꾸역승도 승이고, 우당탕 골도 골이다.

Read more

중력을 잃은 언어(4)

중력을 잃은 언어(4)

-조이씨가……  아직도 격리 치료실에 있어요? -이번 프로젝트는 팀장의 시신 수습을 대외적인 목표로 삼고 있지만, 사실은 조이의 문제를 풀려고 진행되는 프로젝트입니다. 조이씨 상태는 철저히 비밀입니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 의사를 밝히셔야, 조이씨에 대해 자세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타미의 말투엔 힘이 실려있었고, 어느 때보다 차분했다. 눈만 크게 뜨고 있는 미나에게 타미는

By 이안 -이 안의 숏텐츠
초세필 펜 : 가늘고 긴 분투

초세필 펜 : 가늘고 긴 분투

그 펜은 정말 가늘고 잘 써졌다. 0.28mm. 솔직히 숫자로 굵기를 가늠하기는 힘들다. 0.5mm, 0.7mm와 같은 대중적 사양의 비교대조군이 있기에, 굉장히 가늘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처음 만난 건 서촌 골목의 작은 문구점이었다. 기록과 관련된 소품을 파는 그곳은 손바닥 만한 작은 다이어리가 상징적인 곳이었는데, 그 다이어리에 적합한 초세필 펜도 구비해놓고

By 서사이 - 도구의 사생활
그땐 그랬지

그땐 그랬지

햇볕에 달궈진 골목을 뛰어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가장 먼저 찾았던 것은 냉장고 속 수박이었다. 칼이 닿자 ‘쩍’ 소리를 내며 갈라진 수박은 여름을 통째로 품은 듯 붉은 속살을 드러냈다. 한 조각을 베어 물면 턱끝으로 차갑고 달콤한 물이 흘러내렸다. 어린 시절 무더위를 이겨내는 보양식은 시원한 수박이었다. 그때 그 시절 어른들은 나와는 정반대였다. 흑염소탕,

By 이지선 - 햇살 좋은 창가
적정선을 넘지 말 것 _ '혼코노'

적정선을 넘지 말 것 _ '혼코노'

어느 평일 퇴근 시간, 지하철역 근처 사거리 보행자 신호가 한꺼번에 초록빛을 냈다. 모든 방향 차량이 멈춘 거리 위, 사람들이 사방팔방으로 건너갔다. 대각선 방향을 향해 발을 떼었을 때, 난데없는 고함이 들렸다. 사람들이 일제히 바라본 곳에는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말쑥한 옷차림의 여성이 있었다. 그는 허공을 향해 있는 힘껏 소리쳤다. 정확히 뭐라고

By 이표(李表) - 표류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