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 Frida Kahlo
발이 왜 필요하겠어? 내게 날 수 있는 날개가 있는데.
1953년, 괴사해 가던 오른쪽 다리를 무릎 아래까지 절단해야 했던 여인이 일기장에 남긴 문장입니다. 그 옆에는 날개가 돋은 발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육체의 기둥이 잘려 나가는 순간에도, 비탄 대신 비상의 이미지를 끌어올렸습니다.
화가 프리다 칼로의 이야기입니다.
칼로의 삶은 일찍 부터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여섯 살 무렵 소아마비를 앓은 뒤 오른쪽 다리가 약해졌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가지 스포츠를 섭렵했습니다. 공부도 잘 했던 칼로는 여학생이 35명 밖에 되지 않는 멕시코 최고의 학교인 멕시코 국립 예비학교에 합격, 입학했지만 1925년 버스 사고로 몸에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강철 지지대가 몸을 관통했던 그 사고로, 그의 삶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궤도로 진입하게 됩니다.
의사를 꿈꾸던 칼로는 병상에 누워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침대는 감옥 같은 공간이었지만, 동시에 세계와 연결되는 작업실이기도 했습니다. 어머니가 천장에 달아준 거울 속에는 가까우면서도 낯선 자기의 얼굴이 있었고, 칼로는 그 얼굴을 바라보며 붓을 들었습니다.
나는 너무 자주 혼자이기에, 또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가 나이기에 나를 그린다.
자화상은 단순한 초상이 아니었습니다. 무너진 몸 위에 자아를 다시 세우는 의식이었습니다.
몸의 고통 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일까요. 칼로의 상처는 사랑 앞에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멕시코의 국민 화가이자 혁명가였던 디에고 리베라. 스물한 살의 나이 차를 넘어 그와 결혼했지만, 그 관계는 안정된 동행이기보다 서로를 찌르는 격렬한 충돌에 가까웠습니다. 남편의 자신 동생과의 외도를 비롯한 반복된 배신에, 공개적인 양성애자인 칼로역시 자유연애를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유산으로 남편의 아이를 여러번 잃은 칼로의 내면은 깊이 침잠합니다.
하지만 칼로는 고통을 숨기는 대신 형상으로 바꾸어 캔버스 위로 가져갔습니다.

《두 명의 프리다》(1939). 두 자아는 서로의 손을 놓지 못한 채 앉아 있습니다. 하나는 상처 입은 심장을 드러낸 프리다, 다른 하나는 보다 단정하고 독립적인 프리다. 두 심장을 잇는 혈관은 끊어지지 않고, 피는 흰 드레스를 적시며 흘러내립니다. 누군가를 사랑했던 자아가 어떻게 분열하고, 또 어떻게 스스로를 봉합하려 애쓰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칼로의 몸은 더 무너졌습니다. 거듭되는 수술, 척추와 몸을 지탱하기 위한 강철과 가죽의 보형물. 그림 속 칼로의 몸은 갈라져 있고, 척추 자리에는 금이 간 기둥이 버티고 있습니다. 몸을 메운 못들은 고통이 추상적인 감정이 아님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균열 한가운데에서, 칼로의 눈빛만은 정면을 향하고 있습니다.

서양 미술사와 문학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프랑스의 시인이자 평론가인 앙드레 브르통은 프리다의 작품을 초현실주의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칼로는 거부했습니다. 자신은 꿈을 그린 것이 아니라 현실을 그렸다고 했지요.
1953년, 멕시코에서 열린 첫 개인전. 칼로는 침대째 전시장으로 옮겨졌습니다. 꽃과 장신구로 치장한 채 누워있는 그 침대는 하나의 무대였습니다. 삶과 고통 그 자체가 예술임을 보여주는 퍼포먼스였지요.

육신과 정신의 고통속에 평생 치열함을 이어가던 칼로가 마지막 붓을 들어 그린 그림은, 겉은 단단하지만 속은 상처 입기 쉬운 자신을 닮은 수박입니다. 그리고 그 뜨겁고 붉은 속살 위에 그는 단 한 문장을 남겼습니다.
Viva la Vida.
인생이여, 만세.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그의 일기장에 남긴 그 말처럼, 치열하게 이 땅을 살다간 칼로가 어느 곳에서든 온전히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이별이 기쁘기를, 그리고 결코 돌아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프리다 칼로

사진과 글의 출처는 프리다 칼로 재단의 사이트입니다. https://www.frida-kahlo-foundation.org/
Chavela Vargas - Llorona (요로나 / 우는 여인)
프리다의 실제 연인이자 소울메이트였던 차벨라 바르가스가 부르는 멕시코 전통 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