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순

김명순

여기 두 문장이 있습니다.

"그의 문학은 나이로 치면 30대 중년여자, 피부로 치면 육욕에 거친, 지방질은 거의 다 말라 없어진 퇴폐하고 황량한 피부."

그리고 같은 작가를 두고 쓰인 또 다른 문장이 있습니다.

"교훈 같은 흔적은 조금도 없으면서도, 자미있고, 그 자미가 결코 비열하지 않은 — 고상한 자미."

전혀 다른 평가입니다. 하나는 평론을 빙자하며 작가의 몸을 겨냥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작품 자체를 읽고 있습니다. 두 문장이 향하는 사람은 김명순입니다. 필명은 탄실. 1896년생. 한국 근대 문학사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여성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우리나라 여성 최초로 시집을 발간했고, 수필,소설,번역을 넘나들며 기자와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1917년, 그는 『청춘』 현상문예에 단편소설 「의심의 소녀」가 당선되며 문단에 발을 들였습니다. 이때 심사위원 이광수는 김명순의 문학에 대해 고상한 재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데뷔 이후 남성 중심의 문단은 그것과 상반된 공격을 그에게 퍼붓습니다.

김명순의 이름이 불릴 때, 작품보다 먼저 따라오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일본 유학 시절, 그는 이응준으로부터 강간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언론은 피해자인 그를 '문제적 여성'으로 낙인찍어 버렸습니다. 첫 직장인 매일신보에서도 꾸준한 성희롱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1924년,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김기진이 『신여성』에 「김명순씨에 대한 공개장」을 발표한 것입니다.

"성욕적 생활에 무절조하다 못해 방종하게 지내던 사람"

표면은 비평이었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작품이 아니라 작가의 외모와 성적 이미지를 끌어와 인격을 훼손하는 언어들. 비평의 형식을 빌린 폭력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글이었죠. 그것도 문단이라는 공론장에서, 공개적으로 자행되었습니다.

이건 단순히 한 사람의 감정 표출이 아니었습니다. 남성 중심의 평가 구조, 문단 내부의 권력 관계 — 그 모든 것이 한 여성 작가를 향해 집중된 결과였습니다. 김명순이 공격받은 건, 어쩌면 그가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는 여성 작가였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방정아<김명순 초상>2018.<그림, 신여성을 읽다 – 신여성의 탄생, 나혜석 김일엽 김명순 작품>展

김기진 외에도 우리가 익히 아는 염상섭, 김동인, 방정환 등은 소설과 비평을 통해 '자유연애자', '남성편력자', '성격파탄자', '처녀 행세하는 사람' 같은 표현을 서슴지 않으며 김명순을 매도했습니다.

김명순은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김기진의 공개장 발표 이전에도 자전적 장편소설 『탄실이와 주영이』를 통해 자신의 결백을 문학으로 증명하려 했습니다. 또한 「김기진씨의 공개장을 무시함」이라는 반박문으로 맞섰습니다. 제목부터 당당한 "무시함". 그러나 이 목소리는 편집진에 의해 끝내 지면에 실리지 못했습니다. 방정환은 김명순에게 고소를 당해 소설 연재를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김명순은 김기진이 선호하는 사상적 경향을 반영한 소설 「손님」을 쓰며 분투했지만, 끝내 문단의 터전을 잃고 일본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길 위에서 동냥으로 연명하던 그는 1951년 아오야마 뇌병원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렇다면 가해자 이응준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일본 정부에서 훈장을 받았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동시에 육군 참모총장으로 발탁되었습니다. 체신부 장관을 역임하고 인촌문화상을 수상했으며, 사후에는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승승장구의 삶 끝에 맞이한 편안한 죽음이었습니다.

씁쓸함을 넘어 참담합니다. 가해자의 이름은 훈장과 관직으로 기억되고 피해자의 이름은 추문과 낙인으로 지워졌습니다. 게다가 그 능력까지 같이 폄하되었습니다. 그 시대 문단이 지우려 했던건 그의 '방종한 사생활'이 아니라 남성의 언어에 등장한 '여성의 자의식'이 아니었을까요.

2010년대 이후, 그를 다시 읽으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습니다. 『김명순 문학전집』이 간행되고 미발굴 작품들이 복원되면서 그는 비로소 문학사 안으로 귀환했습니다. 연구자들은 그의 문학이 유미주의와 표현주의 계열의 선구적 업적임을 밝혀냈습니다. 이제 김명순은 '비극적인 여성 작가'라는 수식어 대신, 근대 문학의 성차별적 구조에 균열을 낸 주체로 읽히고 있습니다.

그를 다시 읽는 일은 단순한 복권이 아닙니다. 문학이, 비평이, 언론이 어떤 목소리를 지워왔으며 그 지움이 어떻게 정당화되었는지 묻는 과정입니다. 김명순의 문학은 이제야 비로소 '작품'으로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유언 (遺言)

조선아 내가 너를 영결(永訣)할 때

개천가에 고꾸라졌던지 들에 피 뽑았던지

죽은 시체에게라도 더 학대해다오.

그래도 부족하거든

이 다음에 나 같은 사람이 나더라도

할 수만 있는 대로 또 학대해보아라

그러면 서로 미워하는 우리는 영영 작별된다

이 사나운 곳아 사나운 곳아.

-김명순(金明淳·1896∼1951)


인용-김기진의 「김명순씨에 대한 공개장」 분석-서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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