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

환절기
사진출처-필자제공

겨울을

장롱 깊숙이 밀어 넣었다

입을 다물지 못하는 문을 뒤로

햇살의 눈인사를

유리창이 오해 가득 품으면

셔츠 한 장을 꺼내

몸에 걸친다

손목엔 지난 계절의 흔적이

잊었던 시절을 건드린다

골목 하나 돌아서자마

어귀를 지키고 있던 추위가

기다렸다는 듯 귓가를 서성이는데

하나, 둘, 셋을 세기도 전

어깨에 내려앉는 목련이

홑겹의 기억보다 무거울까

다시,

닫혀 있던 장롱문을 열고

게워 내듯 뱉어내는

외투 한 벌을 꺼내어 걸친다

그 무엇이 무엇을 한다 해도

해는 제 할 일만 할 뿐

한 손엔 벗은 옷가지를 들고

다른 한 손엔 하루의 균형을 잡은 채

이럴 수도,저럴 수도 없는

어정쩡한 소매를 추스른다

난 언제쯤

끝 단까지 평온한

온도를 걸칠 수 있을지

채 녹지 않은 그늘 위로

분홍을 밀어 올린 것들이

허공에 나부낀다

 


Read more

15. 탈주 스캔들 (15) - 취조는 때와 장소를 안 가리네

15. 탈주 스캔들 (15) - 취조는 때와 장소를 안 가리네

셋을 태운 보트가 외딴 무인도 해변에 선체를 마찰하며 멈춰서자마자 인하는 안도감에 푹 한숨을 내쉬었다. 폭발하는 크루즈에서 나와 물을 헤치고 다시 뭍으로 올 때까지 쌓인 긴장감이 상당했다. “에스코트할께요, 형사님.” “손 치워라…….” “가만히 좀 계시겠어요?” 인하가 반발하든 말든 해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에스코트했다. 보트 비상함에 다행히 소독약과 붕대 등등이 있어서, 응급처치하는 건

By 가넷베리Garnetberry - 가넷베리의 숏텐츠
기록하는 자의 태도

기록하는 자의 태도

여러 번의 북토크를 진행하는 동안 관객들이 내게 가장 궁금해 한 질문은 이거였다. “기록하시면서 구술자의 어떤 모순을 발견하셨나요?” 순간 멈칫했다. 인간의 모순에 관심이 많다는 후기를 쓴 게 화근이었다. 내 구술자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쩌렁쩌렁 귓가를 때렸다. 당사자를 곁에 두고 그의 뒤틀린 삶과 모순을 발가벗겨 전시하라는 요구. 웃자고 하는 얘긴가? 그렇다면 그에 걸맞게

By 윤명주 - 사적인 지각변동
이미지 출처: 드라마 《영 셸던》 공식 스틸컷 © CBS / Warner Bros. Entertainment Inc.

바위를 굴리는 데 필요한 85% _ 드라마 《영 셸던》

‘환승 이직’에 성공했다. 지난 몇 년간 위장병을 앓아가며 애써왔던 게 무색할 만큼 나의 거취는 빠르게 정해졌다. 이력서도 제출하지 않았는데 간단한 지원 양식만 보고도 면접이 잡혔다. 내 일정에 다 맞춰주겠다 하여 기존 직장에 연차를 내지 않아도 됐다. 유달리 잘 본 것 같지도 않은 15분이 지나 이틀 후 합격 연락을 받았다.

By 이표(李表) - 표류일지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손바닥을 펼쳐 휴대폰을 볼 공간조차 없었다. 불빛의 반사 때문에 손을 움직이다 보니 앞사람 팔꿈치를 건드렸다. 등을 찌르기도 하고 스치기도 했다. 앞사람과 뒷사람 사이 10센티미터 미만. 그 공간에 나를 밀어 넣었다. 낯선 사람들, 등짝의 뜨거움이 나에게도 전달됐다. 머리 위에서 불어오는 에어컨 바람조차 땀을 머금은 끈적한 뜨거움을 식히지 못했다. 출입문이 열릴 때마다

By 이지선 - 햇살 좋은 창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