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불렀고, 나 또한 그 시선을 부정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내가 태어난 이유이자 숙명이었으니까.
내 고향은 일본. 내가 바다 건너 한국까지 진출했다는 건 그만큼 내 존재가치가 인정받았다는 의미겠지. 나를 처음 만났을 때 사람의 반응은 한결같아.
"넌 뭐냐?"
"만년필이냐? 펜이냐."
그렇게 묻는 것도 무리가 아니야. 난 처음부터 만년필의 대체품으로 태어났으니까. 값비싼 만년필, 관리하기 까다로운 만년필, 일상적인 필기도구로는 조금 부담스러운 만년필. 우리 세계의 최상위 레벨이자, 왕족인 그 녀석을 대신하는 게 내 역할이었어. 내 머리는 파이버 닙이라는 불리는 뾰족한 플라스틱 닙. 볼이 굴러가며 유성잉크를 서서히 밀어내는 아이들과는 피지컬부터가 달라. 내 몸엔 왕족의 피가 흘러. 단지 그들처럼 금·은·동을 두르지 못했을 뿐. 만년필보다 더 실용적이고 값싼, 아니 하이테크의 결정체라고 할까. 나는 만년필 보다 저렴하지만 관리하기 쉽고, 무엇보다 만년필 만의 매력적인 필기감을 가졌어. 때론 만년필의 대체품이라 업신여김을 당할 때도 있지만, 내 자부심은 남달라. 비록 역사는 짧아도 나는 종이 위의 르네상스를 이끈 혁명가야. 이건 나의 정체성을 찾아 가는 이야기야.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의 상징은 '빵과 장미'입니다. 빵은 노동권을, 장미는 참정권을 뜻합니다. 그 상징이 외쳐진 이후,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디쯤 와 있을까요 ?
2026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여성의 날에 무엇을 말하고 싶을까요 ? 여성의 노동권과 참정권을 가진 21세기, 그렇다면 이제 충분한 걸까요 ?
일과 양육을 함께하고 싶은 여성은 여전히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걸까요?
저출산과 고령화를 이야기하는 정책 속에서 이미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은 얼마나 함께 다루어지고 있을까요. 영유아만 인구 정책의 대상은 아닐 거예요. 청소년을 키우는 가정, 돌봄과 생계를 동시에 책임지는 시간 역시 정책의 언어 안에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주변에서 "그래도 살아갈 만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볼 때 누군가는 결혼을, 또 누군가는 출산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테니까요.
다 큰 성인 남자가 어깨를 들썩이며 훌쩍거리고 있다. 아이처럼, 굳이 자기의 눈물을 감출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도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순간, 이럴 때 주의를 기울이는 건 예의가 아닌 듯했다. 부인인 듯한 여성이 남편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의 말을 건넨다. 여성의 목소리에도 물기가 묻어 있다. 나는 대학병원 유방센터 대기실에 앉아 있던 참이었다.
유방암 수술을 하고 벌써 세월이 많이 흘렀다. 암 환자만 만날 수 있는 교수의 진료를 진즉 끝내고, 다른 교수에게 진료를 받은 지도 몇 년이 지났다. 지난 5년 동안 매년 초음파 검사와 진료를 받아왔던 터였다. 매년 한 번, 공교롭게도 생일 즈음에 생일파티 하듯 이 루틴을 치러 왔다.
내가 다니는 대학병원 유방센터는 검사실과 진료실이 몰려 있어 여기를 드나드는 사람 대다수가 여성이다. 가끔 보이는 남성들은 환자의 보호자 자격으로 온 것일 테다. 사람들이 애정을 드러내는 방식이 다르듯 보호자들이 보이는 위로 방식과 감정 표현 또한 제각각이다. 환자한테 화를 내듯 하는 남편들도 있고, 세상 살갑게 챙기는 아들도 보았다. 대개는 무뚝뚝 하게 묵묵히 자기 할 일을 수행하는 듯 보이지만 떨리는 목소리, 갈 곳을 잃은 손, 멍해진 눈동자가 이곳에 암 환자가 많다는 걸 상기시킨다. 오히려 환자의 얼굴에 표정이 없다는 것이 특이할 뿐.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