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니 멘델스존

파니 멘델스존

"나는 예술가가 아니다.
나는 여성이다.
여성은 창조하는 존재가 아니라
창조된 것을 돌보는 존재이다."

파니의 일기 中 (1836년)

 결혼행진곡의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 많은 분에게 익숙한 이름일 듯합니다. 오늘은 그 누이인 파니 멘델스존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파니는 네 살 터울의 남동생 펠릭스와 함께 당대 최고의 스승들에게 음악을 배웠고, 두 남매의 재능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철학자 괴퇴는 파니를 "펠릭스만큼 재능이 있다"고 평했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는 문턱에서 시대는 두 사람의 운명을 갈라놓았습니다. 아버지는 딸의 재능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삶의 중심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는 않았지요.

 “음악은 펠릭스에게는 직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너에게는 그저 장식이어야 하고 결코 네 존재나 활동의 바탕이 되어서는 안 된다.”

파니가 14살이 되던 생일, 아버지 아브라함 멘델스존은 이와 같은 편지를 딸에게 보냅니다.

 누나의 재능을 누구보다 존경했던 펠릭스는 파니의 곡을 출판해 주는 대신, 자신의 이름 뒤에 숨겨서라도 세상에 내보내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아마 펠릭스에겐 이 방법이 누나를 위한 최선이었을 겁니다.

 영국 왕실 연주회에서 빅토리아 여왕이 펠릭스에게 가곡 「이탈리아(Italien)」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하자 양심의 가책을 느낀 펠릭스는 그 곡이 누나의 작품임을 고백한 일이 있었습니다(펠릭스의 교향곡 4번 ‘이탈리아’와는 다른 곡). 그러나 고백은 거기서 멈췄을 뿐 공식적인 악보 정정이나 저작권료의 귀속은 없었습니다.

 화가 빌헬름 헨젤과 결혼한 파니는 남편의 적극적인 지지 속에 비로소 용기를 내어 자신의 이름으로 된 악보 출판을 결심합니다. 그러나 1847년 첫 악보가 정식으로 출간되어 서점에 배포되기 직전인 5월 14일. 파니는 리허설 도중 뇌졸중으로 쓰러집니다.

향년 42세.
자신의 이름이 인쇄된 악보가 서점에 깔리는 것을 끝내 보지 못한 채 파니는 눈을 감았습니다.

 펠릭스의 죽음

누나의 죽음 소식을 들은 펠릭스는 깊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작곡을 멈췄고,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1847년 11월 4일, 누나의 죽음 6개월 후,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사람은 생전 가장 가까운 존재였고, 가장 멀리 살아야 했던 동반자였나 봅니다.

 2005년 7월,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세인트 캐서린 칼리지에서는 ‘파니 헨젤과 그녀의 서클(Fanny Hensel and her Circle)’이라는 학술 대회가 열렸습니다. 파니 헨젤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자리로 '멘델스존의 누나'라는 이름 뒤에 가려두었던 한 천재 예술가를, 200년 만에 정당한 역사의 무대 위로 불러내는 복권의 현장이었습니다.

 파니가 써 내려간 460여 곡들은 200년의 시간을 건너 이제야 우리에게 도착했습니다.

명(名) 프로젝트는 이처럼 지워진 이름을 발굴하고, 억압된 목소리를 기록하려 합니다.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한 수많은 파니들이 아직 우리 발밑에 무연고로 묻혀 있습니다. 그들의 삶을 하나하나 발굴하고 이름을 불러주는 일,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참고 문헌]

Oxford University Conference (2005): "Fanny Hensel and her Circle“
Susan Wollenberg, "Introduction," Nineteenth-Century Music Review, 4/2 (2007)

 * Op.8, Op.9 가곡집 (1827-1830년 출판)
→ 펠릭스 멘델스존 명의로 발표
→ 실제로는 파니의 작품 6곡 포함
→ 당대 큰 호평을 받음

 * 《Das Jahr(일 년)》
12개월의 정서를 치밀하게 재구성한 대작으로 140여 년간 어두운 서랍 속에 유폐되어 있었고 1989년에야 비로소 정식 출판.

 *「부활절 소나타(Easter Sonata)」
1970년대 발견 당시 여성은 장중하고 논리적인 소나타를 쓸 수 없다는 편견 때문에 "펠릭스의 초기 걸작"으로 홍보되었음. 끈질긴 필적조회 끝에 파니의 곡임이 증명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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