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 듯 닮아 있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은 사람들이다. 서로 다른 A와 B가 만나 DNA로 연결된 생명체 A∩B를 만든 인연이다. 밑바탕이 같은 뿌리를 이루고, 그 안에서 각자의 가지를 펼치며 자라난다. 외모도 습관도 조금씩 닮아가고 또 달라지며 서로의 모양을 만들어 간다.
가족은 서로 다른 정답을 가진 A와 B가 함께 만나 A∩B를 만들어 간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서툰 선택과 오답까지도 조용히 받아들이는 사이로,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는 관계이다. 그래서 가족은 정답을 찾는 관계라기보다는 함께 문제를 해결하며 답을 만들어 가는 관계인지도 모른다. 행복한 우리 가족은 항상 웃는 모습만은 아니어서, 울다가 웃다가 함께 성장하며 나아간다.
커피는 꼭 스타벅스 걸로, 누구나 이름을 알 만한 명품 가방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기.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고 꿈꿨던 멋진 ‘커리어우먼’의 모습은 이러했다. 현실은 물론 영화 속에서도 허영심으로 매도되었던, 성공을 향한 여성들의 욕망이 매력적이었다.
개봉하고 20년이 지나서 다시 보니 내 사회 초년생 시절 지녔던 건방진 모습이 ‘앤디’라는 캐릭터에 그대로 담겨 있어 이불을 찼다. 업계 선배들이 쌓아온 노력이 우스워 보이고, 나는 다르다고 외치던 그 오만함. 이제는 웃으며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하자마자 다시금 쓴맛이 뒤따랐다. 후배 하나를 끼고 가르칠 수 있는 ‘에밀리’ 정도의 선배가 되어 있을 거라 믿었던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가정의달은 나에게 괴리감을 주는 요소 중 하나다. 쉬는 날 하나 없는 4월을 지나, 5월은 달력 위 빨간 글씨가 주는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아무 생각 없이 나섰던 번화가에는 아이들을 위한 행사가 곳곳에서 진행되었다. 열심히 참여하는 아이들의 몸짓이 귀여웠다. 딱 그 정도 감상으로 스쳐 지나가는 나와 달리, 엄마의 발걸음이 자꾸 멈췄다. 그 머무름 속에 어떤 마음이 담겨 있는지. 나는 외면했다.
에밀리가 되지 못했다고 해서, 엄마의 삶을 살겠다는 건 아니었다. 동창이었던 엄마와 아빠는 고등학교 진학부터 길이 달라졌다. 회사에서 승진을 바라고 자기 사업체를 꾸려 나가는 삶을 당연하게 꿈꾸는 아빠와 직장 생활은 결혼으로 끝나고 노동의 강도에 비해 보상이 적은 ‘아르바이트’로 자녀 용돈을 채워주는 엄마의 삶. 운영하던 가게는 가장의 사업 밑천이 되는 게 당연했던 삶.
버스의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 본다. 품이 넉넉한 스커트를 입고 모자까지 갖춰서 쓰고 있다. 할머니와 함께 해 온 세월만큼 여러 번 빨아 입은 티가 나는 옷이다. 비싼 옷은 아니지만 주름이 잘 가는 치마라 다림질도 꼼꼼하게 했으리라. 바닥에 앉아 다림질을 하는 할머니 모습을 그려본다. 할머니는 옷에 맞춰 신은 단화 안에 스타킹도 아니고 양말도 아닌, 얇은 나일론 소재의 양말을 단정하게 신고 있었다. 할머니의 스타킹 양말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말랑말랑해져 온다. 저분은 분명 평생 나쁜 짓은 안 하고 산 사람일 거야. 맨발에 슬리퍼 차림인 너저분한 내 발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비록 내 발은 서늘하고 지저분해도 마음만은 좋다.
나이를 먹으니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를테면 위에 적어 내려간, 어떤 신발에도 양말을 챙겨 신는 나이 든 여성들처럼, 좋아하는 것, 혹은 반대로 참을 수 없는 것들의 목록이 길어진다. 나는 나란 사람에 대해 점점 더 잘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런 변화가 일상을 좀더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도 알게 된다. 나이가 든다는 건,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점점 얄팍해져 가는 것으로만 알았는데. 그러면서 대체 나이 들어서 좋은 게 무어냐고 항변했더랬다. 생각했던 것보다 좋은 일들이 많아지고 그런 나를 발견하는 일이 즐겁게 느껴진다.
어릴 때 나는 눈만 감았다 뜨면 내가 원했던 장소에 가 있기를 바랐다. 드라마에서처럼 과정은 없고 시도와 결과만 있는 인생이길 소망했다. 세상사에 대해 뭣도 모를 정도로 어렸지만, 과정이 주는 불편함과 고통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5월의 길 위는 달리는 사람들로 한창입니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5km부터 풀코스까지, 성별의 경계 없이 달리는 마라톤 열풍은 이제 익숙한 풍경입니다. 하지만 이 당연해 보이는 풍경 뒤에는 불과 100년도 채 되지 않은 치열한 투쟁의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1950년대와 60년대, 여성을 연약한 존재로만 가두려는 사회적 시선 속을 캐서린 스위처도 살았습니다. 당시 여성에게는 진지한 운동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시러큐스 대학교는 남성에게는 장학금과 엘리트 프로그램을 제공했지만, 여성에게는 가벼운 '놀이의 날(play days)' 수준의 활동만 허용했습니다.
캐서린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자립심을 심어준 인물이었습니다. 캐서린이 치어리더가 될지 고민할 때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인생은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참여하는 것이다." 그 말은 캐서린의 평생 신조가 되었습니다. 필드하키 팀에 들어가기 위해 매일 1마일을 달렸고, 이는 ‘몸을 단련하는 일이 지닌 정직한 힘’에 대한 평생의 믿음으로 이어졌습니다.
때론 ‘좌절’은 큰 결단으로 가져옵니다. 린치버그 대학시절 캐서린은 여성 팀 스포츠에 진지함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분노했습니다. 경기에서 지고도 그저 웃어넘기는 팀원들의 태도에 실망했던 것이지요. 시러큐스로 편입한 뒤 남성 크로스컨트리 팀의 코치 아니 브릭스와 훈련을 시작하며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게 됩니다. 눈보라 속에서 혹독한 훈련을 이어가던 중 캐서린은 끝없이 보스턴 마라톤의 역사만 읊어대는 아니에게 외쳤습니다. "이야기만 하지 말고, 그냥 그 경주를 직접 뛰자고요!"
극강의 실용적인 만년필이 필요했다. 휴대하기 좋고, 카트리지 같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잉크충전방식에, 가능한 오래 쓸 수 있는 것으로.
가격대는 1, 2만원대에서 고르기로 했다. 조카가 일본 여행 선물로 준 2만원대 만년필이 기준이 됐다. 이왕이면 한중일 만년필을 비교해볼까. 거의 유일무이한 국산 만년필이 존재하는 덕분에 어쩌다보니 ‘한중일 만년필 삼국지’란 제목의 글을 써보기로 한 것이다. 중국제 만년필은 비슷한 가격대 중 리뷰가 좋은 만년필 1종을 선택했다.
한중일 국가대표 만년필을 소개한다.
제품을 홍보할 목적이 아니라서, 편의상 소설 <삼국지>의 주인공인 ‘조조’, ‘유비’, ‘손권’이란 별칭을 붙여보았다. 순전히 첫인상으로 붙인 이름이다.
조조는 육각형의 바디에서 풍기는 카리스마가 강하다. 완벽한 인간의 척도로 ‘육각형 인간’이란 말이 유행해서 일까. 외모만 따지면 육각형에서 이미 한수를 먹고 들어간다. 왜 육각형이었을까,를 유추해보면 아마도 이 브랜드의 시조새 격인 볼펜에서 형태를 따왔을 것으로 보이는데, 절반은 성공하고 절반은 실패한 선택이 아닌가 싶다. 일단 익숙한 육각형 형태에서 오는 친숙한 그립감은 장점. 그러나 필자의 경우 하필 시조가 볼펜똥으로 기억되는 볼펜인 탓에 만년필로서의 기능에 편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엄연히 볼펜과 만년필은 매카니즘이 다른 필기구다. 과연 아들이 아버지를 능가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