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철렁했다는 표현은 너무 진부하다. 그렇지만 이처럼 정확한 표현은 없다. 문자 속 “불합격”이라는 단어만 유난히 선명해 보였다. 또 탈락이다.
하긴 면접 전부터 기분이 이상했다. 오후 3시 면접에 적어도 5분 전에 와 있으라는 문자가 왔다. 공지가 없어도 15분 전에는 면접장에 도착해 있어야 한다. 나는 35분 거리의 면접장에 가기 위해 2시 17분에 집에서 나왔다. 간신히 8분 전에 도착할 시간이었다. 오후의 서울 버스는 간격을 맞추기 위해 평소보다 천천히 달렸다. 5분 전은커녕 아예 지각할 것 같았다. 그런데도 내 마음은 둥둥 떠 있었다. 할 말을 반복해서 외우면서 시계를 확인했다. 도착 예정 시간이 점점 늦어진다. 조급해야 마땅하지만, 그냥 모르겠단 심정이었다.
막판에 조금 뛴 덕분에 늦지 않게 도착했다. 물을 마시고 대기실에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옆자리엔 같은 면접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예상보다 인원이 많았다. 저마다 옷차림이 달랐다. 어떤 이는 각 잡힌 정장 차림이었다. 면접 복장은 보수적일수록 좋다. 반대로 대다수는 지나치게 자유로운 복장이었다. 괜찮은가, 싶다가 뭐 어쩌겠나 하는 심정이 되었다. 내 옷을 보게 된다. 추울 때 면접은 처음이었다. 옷장 깊숙한 곳에 모직 투피스가 있어서 해결했다. 블라우스 대신 목티를 입었다. 면접 복장을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었다. 계절마다 면접 복장을 갖추는 것도 일이니까.
내 차례가 되어 면접장에 들어갔다. 입을 떼자마자 이틀간 달달 외운 문장이 형편없이 나왔다. 분명 남의 옷차림을 살피며 물을 마실 만큼 여유로웠는데 목덜미가 뻣뻣해졌다. 목소리가 선명하게 나오지 않아 양해를 구하고 말을 멈췄다. 창피했다. 아니, 솔직히 창피하지 않았다. 이런 면접자가 한둘인가. 시간이 지나고 공간이 익숙해지자 나는 곧 떨지 않을 수 있었다. 모든 말이 웅웅대는 소리로 바뀌었다.
더듬더듬 어두운 공간에서 동공이 확장되어 물체의 윤곽이 또렷해지길 기다렸다. 끝없는 까만 복도 안에 우린 숨을 죽였다. 유월이 내 옆에, 호야가 내 품에 있었다. 경계 자세로 몸이 잔뜩 굳어 있는 호야를 가방 안에 넣었다. 어두운 복도를 유월과 나는 되도록 빨리 숨을 죽이며 발소리도 없이 움직였다. 까만 복도 끝에 있는 문 사이로 빛이 스미며 윤곽을 드러냈다. 다행히 그 문에 자물쇠는 없었다.
문손잡이를 천천히 돌리자,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유월과 나는 두 눈을 마주치며 신호를 보냈다. 문이 열리는 틈에 문을 강하게 밀어붙이며 몸을 빠르게 움직였다. 밝은 빛이 쏟아져 두 눈은 하얀 백지상태였지만, 온몸에 부딪치는 것들을 무시하며 우리는 거침없이 앞으로만 달렸다. 우리를 잡으려던 손들은 미끄러지듯 허공을 허우적거렸다. 그들보다 어린 우리가 좀 더 빨랐다. 좁고 가는 길로 달렸다. 굽이굽이 꺾어진 길이 우리가 살길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호야가 떨어질세라 가방을 꽉 끌어안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뒤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을 때 우리는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그제야 머리와 얼굴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느껴졌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를 맞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땅 위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폴짝거렸다. 유월도 웃고 있었다. 한 손엔 호야를 안고, 한 손은 유월의 손을 잡았다. 우린 울었는지 웃었는지 모르게 적셔 들어갔다.
나는 연필을 좋아한다. 나무와 흑연의 향기, 종이 위에 스치는 서걱거림, 공들인 시간만큼 조금씩 닳아가는 그 감각. 그러나 연필에게는 치명적 단점이 있었다.
쉽게 뭉툭해진다는 것.
끝까지 샤프할 수 없다는 것.
이름처럼 샤프한 샤프의 등장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샤프의 선택권이 넘치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누군가 인생 샤프를 꼽으라고 하면 나는 망설임 없이 ‘제도 샤프’를 떠올린다. 까맣고 가벼운 바디, 얇고 정밀한 파이프. 그 시절 제도 샤프는 필통 속을 점령한 국민 필기구였다. 사실 제도 샤프는 일본 펜텔사 P205의 복제품이었지만, 나는 진품을 써본 적이 없었다. 비교대상이 없었기에 배신감도 없었다. 국산 제도 샤프 한 자루가 전부였다.
그런데 왜 하필 ‘제도’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제도 샤프, 그러니까 제도용 샤프란 자를 대고 정밀한 선을 그어야 하는 설계사나 건축가를 위해 촉을 길게 만든 샤프를 말한다. 정밀함을 강조하려는 마케팅의 한수였을까. 의도가 무엇이든 천 원으로 건축가의 정밀함을 살 수 있음에 홀렸다. 나는 그 가짜 도구를 쥐고 진짜 미래를 꿈꾸었다. 제도 샤프로 수많은 깜지를 써내려갔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나는 그저 그 여성의 의도가 정말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대체 그렇게 옷을 (안) 입은 이유가 뭐예요?’라고 물었다간 옆의 남성에게 얻어맞을 게 뻔했다. 그래서 참았다. 애가 보는 앞에서 두들겨 맞을 순 없으니.
피부과에서 치료를 받는 애를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병원 대기실의 정적을 깨고 한 커플이 들어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듯 한 곳으로 쏠렸고, 곧이어 설명하기 힘든 난감한 침묵이 흘렀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고개를 돌려버리는 여성들과 까만 눈동자가 호기심에 반짝이는 남성들 간 표정의 대비. 이것은 과연 나의 착각이었을까.
상의도 만만치 않았지만 핵심은 여성의 스커트였다. 벌룬 스커트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그것은 하반신을 가리기 위한 도구라기보다 노출을 극대화하기 위한 연극적 장치에 가까웠다.
소파에 앉아 있던 내 시야에는 원치 않았던 장면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아슬아슬한 검은색 속옷과 대비되는 살색의 면적이 지나치게 넓어, 마치 일상적인 공간에 영화 <아노라>의 스트립 댄스 시퀀스가 강제로 재연되는 것 같은 이질감이 느껴졌다. 나는 타인의 차림새에 무심한 편이지만, 이 정도의 시각적 습격 앞에서는 무심함조차 소용없었다.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