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니 멘델스존
"나는 예술가가 아니다. 나는 여성이다. 여성은 창조하는 존재가 아니라 창조된 것을 돌보는 존재이다." 파니의 일기 中 (1836년) 결혼행진곡의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 많은 분에게 익숙한 이름일 듯합니다. 오늘은 그 누이인 파니 멘델스존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파니는 네 살 터울의 남동생 펠릭스와 함께 당대 최고의 스승들에게 음악을 배웠고, 두 남매의
"나는 예술가가 아니다. 나는 여성이다. 여성은 창조하는 존재가 아니라 창조된 것을 돌보는 존재이다." 파니의 일기 中 (1836년) 결혼행진곡의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 많은 분에게 익숙한 이름일 듯합니다. 오늘은 그 누이인 파니 멘델스존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파니는 네 살 터울의 남동생 펠릭스와 함께 당대 최고의 스승들에게 음악을 배웠고, 두 남매의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의 상징은 '빵과 장미'입니다. 빵은 노동권을, 장미는 참정권을 뜻합니다. 그 상징이 외쳐진 이후,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디쯤 와 있을까요 ? 2026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여성의 날에 무엇을 말하고 싶을까요 ? 여성의 노동권과 참정권을 가진 21세기, 그렇다면 이제 충분한 걸까요 ? 일과 양육을 함께하고 싶은 여성은 여전히 둘
다 큰 성인 남자가 어깨를 들썩이며 훌쩍거리고 있다. 아이처럼, 굳이 자기의 눈물을 감출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도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순간, 이럴 때 주의를 기울이는 건 예의가 아닌 듯했다. 부인인 듯한 여성이 남편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의 말을 건넨다. 여성의 목소리에도 물기가 묻어 있다.
이 메일이 잘 안보이시나요? 글진 geulzine의 뉴스레터 01호 FEATURE STORY 욕탕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고 헤매다 보면, 땅으로 없어질 거 같은 중력이 느껴지는 날이 있어. 노는 것도 자는 것도 어떤 것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 시간을 묵묵히 기다리다 문득 깊은 물 속에 나를 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 여기는 도시라서 바다가 가까이 있지도,
[청소년 정신건강 칼럼] 새 학년이 시작되는 3월의 첫째 주. 교실 안은 설렘의 소리로 가득하다. 벌써 친구를 사귀고, 함께 웃는 아이. 작년에 친했던 친구와 같은 반이 되었다며, 환호성을 지르는 아이. 자기 자리를 찾아 자연스럽게 책상을 정리하고, 공간을 만들어가는 아이들. 그런데 복도에는 아직 한 발짝도 교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아이가 있다. 문
내게 다른 세상을 열어준 이는 가수 이상은이었다.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았던 그를 처음 본 후 다음 날 교실의 분위기를 기억한다. 우리는 “어제 그거 봤어?”로 말문을 열고, 대걸레를 마이크 삼아 “담다디, 담다디, 담다디 담”하며 건들거렸다. 왠지 모르게 신명났던 그날, 지루했던 일상에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쉬는 시간마다
한국인에게는 한 해를 시작할 기회가 세 번 주어진다고 한다. 1월 1일, 설날, 3월이다. 어릴 때부터 새로운 환경에 진입하거나 새로운 사람들을 잔뜩 만나왔던 3월은 긴장감과 기대감이 공존한다. 양력과 음력의 시작을 모두 놓친 우리에게 3월은, 습관처럼 찾아온 ‘써드 찬스(third chance)’이다. 하지만 지금 난 이 기회마저 외면하고 싶다. 기대감이 사라진 자리에
표류일지: 불안 세대의 문화 기록 <표류일지>는 시작을 미루고, 선택을 의심하며, 시대를 표류하는 한 90년대생의 문화 기록이다. 대중문화 속 장면에서 내게 필요한 말을 찾아낸다. 작가 소개 이표(李表, Ipyo) ipyo.writer@gmail.com 불안이 일상이 된 세대, 90년대생. 하루 종일 TV 앞에 있던 어린 시절을 지나며 보고·듣고·
시-시-시-작! 동시에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 공포가 폐부로 밀려 들어와 눈동자를 굴리며 입 밖으로 도망친 음정들을 줍느라 노래는 늘 허리가 끊겼고 ‘너는 꼭 부르다 말더라’라는 말은 주석처럼 달렸다 ‘꼭'이라는 부사에 갇혀 첫 음은 다시 떼지 않았고 오물조물 입술만 움직이며 침과 함께 삼켜버린 것들로 키가 자랐다 ’마침표를 찍을 수
1. 노트북 세대인 내가 다시 지우개를 드는 이유 나는 노트북 세대의 작가다. 하루 종일 노트북 앞에 앉아 문장을 쓰고 지우는 일이 나의 일상. Delete키는 나의 실수를 손쉽게 증발시킨다. 흔적도, 흉터도 남지 않는다. 단, 0.1초. 실수가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사라진다. 지움이 이토록 가벼워진 시대지만, 내 노트북 옆엔 언제나 백지와 연필 그리고
내게 시작은 장애물 달리기처럼 느껴진다. 하나를 넘으면 또 하나가 보이고, 그늘처럼 따라온다. 그래도 넘는 법을 조금씩 알게 된다. 급하게 뛰는 사람도 있고 먼저 앞서가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내 속도로 간다. 반복 속에서 나만의 걸음이 생기고 그 모습 그대로의 나를 조용히 받아들인다. 출발과 끝 사이, 그 긴 시간은 달려가야 할 대상이
살다 보니 강력계 형사란 게 입장이 그랬다. 일단 노동 강도가 센 편이라든가, 목숨 건 잠복근무를 밥 먹듯 하는 것치곤 박봉인 거라든가, 실수령액이 높게 찍히는 달이 있긴 해도 그럭저럭 먹고 살 정도라든가. 뭐 자잘한 거 말고도 직접적인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다. 툭하면 밤길 조심하라는 둥 위협하는 폭력배들이 그녀 앞에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