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고독 _《이반 일리치의 죽음》
근데 네 발은 왜 그렇게 깨끗하고 예뻐? 옛날 드라마 대사가 한동안 밈(meme)이었다. 발레하는 동생의 위선을 꼬집은 언니를 누가 더 똑같이 따라 하는지 보며 깔깔 웃었다. 한편, 내 기억 하나와 연결되어 억울한 감정이 일순 치솟곤 했다. 겉으로 깨끗한 발도 고통스러울 수 있다고.
국토대장정에 참가했을 때 내 발은 끝까지 깨끗했다. 다른 이들은 물집이 최대로 영글거나 터지고 나서 흉으로 남는 등 영광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나는 그런 게 하나도 없었다. 왼쪽 발바닥이 찢어질 듯 아팠을 뿐이다.
대학교 이름으로 진행된 국토대장정은 비교적 풍족한 환경이었다. 참가 학생 101명의 행렬 끝엔 구급차 한 대가 따라다녔다. 안전요원은 자기 몸 상태를 파악하여 힘들면 하루에 일정 구간 그 차를 이용하여 움직이도록 권했다. 하지만 20대 초중반의 청춘들에게는 자존심이 걸려 있었다. 어떻게든 순도 백 퍼센트 완주증을 받고 싶었다. 나는 9일째 아침에 승복했다. 12일의 기승전결 중 ‘결’에 가까운 시점이었다. 스트레칭으로 마무리하던 전날 밤, 처음으로 발에 불편함을 느꼈다. 하지만 물집으로 가득한 발 사이에서 내 아픔은 별거 아니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몇 걸음 떼기도 전에 통증이 극심해져 차에 탑승했다. 딱 한 구간만 타려던 것이 하루 일정 중 절반 이상으로 늘어나기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족저근막염’ 때문이었다. 여전히 조금만 무리해도 같은 곳이 고통으로 불탄다. 그때는 이런 병명을 몰랐기에, 내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조원들이 원망스러웠다. 오늘도 차에 타냐는 말에 내가 너무 엄살을 부리는 것 같은 수치스러움이 밀려왔다. 차창 밖에서 누군가 f(x) 노래를 선창하면 곧바로 떼창이 되었다. 얼마 전까지 내 것이었던 소란은 고요한 차 안과 대조되어 존재감을 드러냈다. 동승자가 한 명도 없을 땐 고독감이 배가 되었다.

그때 나는 왜 그렇게 고독했을까. 내 아픔을 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했을까.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 이반 일리치의 부고가 알려지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그들은 소식을 듣고 죽은 사람이 제가 아님을 다행히 여기며, 금세 일상을 이어간다. 이반 일리치가 근무하던 법원 판사 자리를 누가 채울 것인지, 그 행운이 제게 올 건지 따져보기도 한다.
이렇게 한 사람의 죽음이 주변에 미치는 이야기로 흐를 줄 알았던 소설은, 2장부터 이반 일리치의 전반적인 삶과 질병, 고통 속에서 맞이한 죽음까지 그의 시선에서 이어간다. 처음 통증은 별거 아니었다. 그런데 고작 몇 주 만에 저명한 의사들도 정확한 원인과 치료를 찾아내지 못한 불치병이 되었다. 며칠 내내 소리를 질러 댈 정도였다. 처음엔 그를 잘 돌봐주려던 가족은, 신경질적인 그의 태도에 지쳐버린다. 이반 일리치는 제 고통에 무심한 의사와 가족들에게 증오심을 느낀다. 유일하게 의지하던 요양 보호사 게라심도 멀리한 후 흘린 눈물은 진정한 고독이었다.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길버트 오설리번의 ‘Alone Again’ 노랫말처럼 우리는 일상에서 수시로 고독을 느낀다. 나의 불행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 나만 느끼는 고통. 특히 질병이 그렇다. 홀로 감당할 수 없어 넘쳐흐른 고통을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실재 사이의 간극은 우리를 또 다른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혼자 있고 싶으면서 동시에 타인과 함께했을 때만 안정을 얻는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이반 일리치는 열반에 이른 듯,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닌 채 세상을 떠난다. 이 소설의 카타르시스는 이반 일리치의 '해방'을 목도한 후 다시 1장으로 돌아갔을 때 처절할 만큼 선명하게 밀려온다.
내 삶에서 질병이란 병원에 가면 낫는 것이었다. 어릴 때 꽤 고생했던 뇌수막염이나 최근 걸렸던 대상포진도 그랬다. 호되게 앓았던 코로나도, 그 정도면 공감대를 살 추억으로 넘길만했다. 그런데 내게 처음으로 우울감을 안겨준 질병은 별거 아닌 아킬레스건염이다. 꾸준히 족저근막염으로 고통받았던 왼발 때문인지, 양발에 탈이 났다. 정형외과는 물론 한의원에도 가보았지만 낫질 않는다. 만성이 되어 걸을 때마다 통증이 지속된다. 씨름선수 출신이라는 정육점 사장님은 나에게 처참하게 선고했다. 안 낫는다.
발 통증은 내 생활을 모두 무너뜨리고 있다. 외출이 꺼려지고 체질인 줄 알았던 ‘집순이’ 생활도, 이제는 간수를 두고 갇힌 것 같다. 죽음에 이르는 질병도 아닌데. 내 고통을 축소하려다가 실패한다. 고통을 알아달라 이 글도 쓰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써 내려가도, 겉으로 깨끗한 발의 고통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