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탈주 스캔들 (11) - 어지간하면 딴 데 힘 안 쓰려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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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고 익숙한 복도식 아파트. 복도 끝에서 세 번째 집으로 들어가면 ‘삼촌’과 둘이 살았던 집이 나온다. 해외 출장이 잦았던 부모님을 대신해 자주 돌봐주셨던 분.

눈앞에 선명하게 시큰대는 한 사람을 떠올리던 인하의 눈가가 찡그려졌다.

 

- 형사 일을 하겠다고?

- 네, 이미 발령났어요.

- 뭐라고?

 

진로를 결정한 뒤 말을 전하자 혀를 내두르는 아버지와 짧은 통화를 종료한 뒤에도 인하는 사실 잘 이해가 안 갔다. 고개를 갸웃했다. 친부모보다 가까운 사이였던 사람이었으니 인생 방향을 결정할 때 영향 미치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여유롭지 않은 형편에도 한집 살고 밥 해먹이면서 내 학업 뒷바라지 해주신 분이야.”

때론 혈연보다 지연이 더 뼈에 사무쳤다.

“피가 섞였든 안 섞였든 삼촌이 내 은인이란 건 안 변해.”

인하는 해진의 멱살을 단단히 틀어잡았다. 해진은 흐트러진 제 옷깃과 인하를 번갈아 내려보며 씩 웃더니, 느리게 양손을 들어 올려 저항 의사가 없단 걸 표시했다.

“부럽네요.”
“뭐?”
“이래서 한집 살라는 거구나 싶고.”

지근거리의 속삭임이었다. 낮고 느른한 목소리는 매혹적이라서, 무심결에 사람을 홀리고 귀 기울이게 했다. 인하에게 멱살 잡혀 코끝에 가까이 닿은 해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아, 없던 정도 생기게 하는 것 같아서요.”
“…….”
“여긴 나름대로 밀실이고, 이렇게 가까이에서 몸 맞대고 있으니 형사님의 진심을 볼 수 있게 됐잖아요.”

정체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잠깐 감시탑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상황이기도 했다. 해진은 초연할 뿐인 여자를 향해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리고 내가 위험할 거란 생각은 안 하네.”
“뭐?”
“정말 몰랐어요?”

사실 내가 형사님 많이 봐준 거라는 거? 귓전을 긁는 말에 인하의 표정이 굳었다. 잠깐 간과한 게 떠오른 탓이었다.

정해진은 일 년 가깝게 친하게 지내던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초주검으로 만들었다고 했지. 그래서 독방 신세가 된 이력까지 파악 중이건만 평범한 시민이 사형수 되기까지 사연이야 얼추 비슷하게 파란만장했으니 귀담아 듣긴 어려웠다.

혀를 쯧, 찬 인하는 이를 악문 채 해진의 셔츠 옷깃을 잡아채어 속을 훑었다.

“저, 뭐 하세요?”
“잠깐 가만히 있어.”

확인해봐야 할 게 있었다. 혹시라도 도감청 장치가 없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한 과정이었으나 단단한 가슴 근육이 손에 걸렸다. 의도치 않게 피차 곤란해졌다.

“갑자기 왜 이렇게 적극적이세요.”
“이건, 됐고, 잠깐 입 좀 다물어봐.”
“하긴 그러네요. 우리 사이에 무슨 말이 필요하겠어요. 언제든 신호만 주심 되는데. 마침 오랜만에 손이 자유로우니 저도 좀 근질거리던 참이거든요.”
“아, 좀 닥치라고!”

머릿속이 아득하다. 여기저기 흩어진 단서가 머릿속을 찔러댔다. 셔츠 옷깃을 꽉 틀어잡고 있던 손끝에서 힘이 풀렸다.

낯선 데 뚝 떨어진 지 꼬박 24시간가량 흘렀으나 접촉하려는 인간도 없다. 일반적인 선박보다 느린 속도로 이동할 뿐이란 걸 깨닫고 나자 난감했다. 안 그러려 애를 써도 몸을 부풀리는 초조감에 입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해진의 어깨에 머리를 박았던 인하는 그를 뿌리쳤다. 감정적으로 굴고 싶지 않은데 쉽지 않았다.

“진정해요. 이렇게 열 내도 해결 안 돼요.”
“그래야지. 아무튼, 너 배 운전할 줄 알아?”
“차 면허밖에 없지만 뭐, 어깨너머로 봐둔 것도 있고, 형사님이 원하시니 시도는 해 볼게요.”

어떤 인생을 살면 어깨너머로 크루즈 운전법을 배울까 싶었지만 인하는 더 묻지 않았다.

항해 중이면 항해를 주관하는 인간이 있겠지, 그래서 배의 맨 앞 부분, 선장실로 향할 생각을 했다.

그렇잖아도 이 선박은 개인 소유라기엔 상당한 크기였는데, 여기저기 들쑤시며 보니 아무래도 이 배를 움직이는 건 사람이 아닌 듯했다. 자동 항해 장치 기술이 적용됐단 걸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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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판이 상당히 커진 듯했다. 관제탑이나 형사 측 인력이 아닌 제3의 인물이나 세력이 개입됐을 가설을 세우면서, 인하는 지금까지 얻은 정보를 다시 취합했다.

“그런데 이건 어떻게 열지?”

선장실 앞에선 잠깐 막혔다. 그러나 해진이 무시무시한 악력으로 문고리를 비튼 덕분에 진입할 수 있었다. 태연하게 문을 여는 걸 보는데 잘 믿기지 않았다.

“뭐, 뭐야, 이게 사람 힘이라고?”
“내가 어지간하면 딴 데 힘 안 쓰려 했는데, 요리도 해 먹고 행복한 신혼 생활을 즐기려는 와중에 방해하는 놈이 있으니 좀 빡치네요.”
“진짜 미친놈인가?”
“이만하면 정상일 텐데.”

그러나 매끄럽게 진입한 선장실에서 튀어나온 건 전혀 예상 밖이었다. 인하는 널찍한 선장실에 어울리지 않게 자그만 인영을 보자마자 눈을 의심했다.

“어, 사람……?”
“흐으, 사, 살려주세요!”

겁에 질려 몸을 웅크리는 상대의 모습에 인하는 황급히 주워들었던 파이프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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