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욕탕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고 헤매다 보면, 땅으로 없어질 거 같은 중력이 느껴지는 날이 있어. 노는 것도 자는 것도 어떤 것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 시간을 묵묵히 기다리다 문득 깊은 물 속에 나를 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 여기는 도시라서 바다가 가까이 있지도, 강이 가깝지도 않았어. 그래서 어떻게 했는지 알아? 우리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목욕탕이 생각났지. 우리 동네 목욕탕의 오픈 시간은 6시. 그 시간에 가면 아무도 없을 거야. 가장 깊고 뜨거운 물 속에 나를 넣자.
5시 50분에 부스럭부스럭 짐을 챙겨 나갔어. 아무도 모르게. 다행히 내 방은 출입구가 달라서 잠귀가 밝은 엄마도 내가 나가는 소리를 들을 순 없었을 거야. 그래도 고양이처럼 아주 살금살금 대문을 나섰지. 어둠이 물러가지 않은 새벽의 공기는 뇌 속까지 얼어버릴 듯했어. 칼 같은 찬바람이 옷 사이사이로 비집고 들어왔지. 텅 빈 거리를 상상하며 머리는 산발에 눈곱도 안 떼고 나왔는데, 어디선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사람들에 놀라 점퍼 모자에 머리를 구겨 넣었어. 빠른 걸음을 재촉하며 앞만 보는 사람들에게 나는 조용히 지나가는 길고양이 정도였는지, 낯선 눈동자가 나를 스치지는 않았어. 잔뜩 웅크린 더러운 얼굴의 나는 괜히 눈치가 보여서 입장료를 계산하는데도 사장 아줌마의 눈을 피했어. by 이안_이안의 숏텐츠 | |
- 노트북 세대인 내가 다시 지우개를 드는 이유
나는 노트북 세대의 작가다. 하루 종일 노트북 앞에 앉아 문장을 쓰고 지우는 일이 나의 일상. Delete키는 나의 실수를 손쉽게 증발시킨다. 흔적도, 흉터도 남지 않는다. 단, 0.1초. 실수가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사라진다. 지움이 이토록 가벼워진 시대지만, 내 노트북 옆엔 언제나 백지와 연필 그리고 지우개가 놓여있다.
문장이 꼬이는 날이 있다. 아무리 고쳐써도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장들이 이어질 때 나는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좋아하는 필기구를 잡는다. 그것이 연필일 때도, 만년필일 때도 혹은 그 외의 어떤 필기구일 때도 있다. by 서사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작 : 영화 스파이
한국인에게는 한 해를 시작할 기회가 세 번 주어진다고 한다. 1월 1일, 설날, 3월이다. 어릴 때부터 새로운 환경에 진입하거나 새로운 사람들을 잔뜩 만나왔던 3월은 긴장감과 기대감이 공존한다. 양력과 음력의 시작을 모두 놓친 우리에게 3월은, 습관처럼 찾아온 ‘써드 찬스(third chance)’이다. 하지만 지금 난 이 기회마저 외면하고 싶다. 기대감이 사라진 자리에 의무감만 가득 찼기 때문일까. 어쩌면 두려움이 강해서일지도 모른다. 안주해서는 안 될 것 같지만, 어떤 취미와 자기 계발로 나를 채워야 할지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나는 불안감으로 시작을 미루고 싶을 때, 폴 피그 감독의 코미디 영화 <스파이>를 본다. 이 감정의 실체를 유쾌하게 풀어내기 때문이다. 주인공 수잔 쿠퍼는 교사 출신으로, 10년 전 미국 중앙정보국(Central Intelligence Agency)에 입사하여 사무 정보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가 전담하는 요원은 아름답고 능력 있는 남자 브래들리 파인이다. by 이표_표류일지 
살다 보니 강력계 형사란 게 입장이 그랬다. 일단 노동 강도가 센 편이라든가, 목숨 건 잠복근무를 밥 먹듯 하는 것치곤 박봉인 거라든가, 실수령액이 높게 찍히는 달이 있긴 해도 그럭저럭 먹고 살 정도라든가. 뭐 자잘한 거 말고도 직접적인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다. 툭하면 밤길 조심하라는 둥 위협하는 폭력배들이 그녀 앞에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그럼 ‘전직’ 강력계 형사는 좀 입장이 낫나? 글쎄, 그 질문에 주인하는 대답을 망설였다. 물론 어릴 때부터 형사는 그녀의 꿈이자 목표였고, 100% 만족스럽진 않아도 어느 정도는 이뤘다고 할 수 있었고, 20대 초에 검도 특채로 들어가 거의 십 년 가까이 일했으니 이만하면 충분히 사회에 이바지했고.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전직할 마음을 먹은 와중 영 개운치는 않았다. 인하가 연줄로 추천받았던 한직들은 여럿 있었으나 개중 그녀가 고른 곳은 해문 교도소 간수 일이었다. by 가넷베리_가넷베리의 숏텐츠 MORE>>>
by 마침_시필 시-시-시-작! 동시에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 공포가 폐부로 밀려 들어와 눈동자를 굴리며 입 밖으로 도망친 음정들을 줍느라 노래는 늘 허리가 끊겼고 ‘너는 꼭 부르다 말더라’라는 말은 주석처럼 달렸다 ‘꼭'이라는 부사에 갇혀 첫 음은 다시 떼지 않았고 오물조물 입술만 움직이며 침과 함께 삼켜버린 것들로 키가 자랐다 <더 보기>
by 김지혜_4등을 위하여 새 학년이 시작되는 3월의 첫째 주. 교실 안은 설렘의 소리로 가득하다. 벌써 친구를 사귀고, 함께 웃는 아이. 작년에 친했던 친구와 같은 반이 되었다며, 환호성을 지르는 아이. 자기 자리를 찾아 자연스럽게 책상을 정리하고, 공간을 만들어가는 아이들. 그런데 복도에는 아직 한 발짝도 교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아이가 있다. 문 너머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오히려 한 걸음 물러선다. ‘저 안에 내 자리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상담실에서 만난 많은 교실 밖 청소년들은 이 장면을 이야기한다. 새 학기가 무섭고,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이 어려운 청소년들은 자기소개를 해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두려움에 며칠 전부터 잠을 설친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하며 말한다. “다른 친구들은 잘 지내는데, 저만 그러는 것 같아요.” <더 보기>
by 이지선_햇살 좋은 창가 내게 시작은 장애물 달리기처럼 느껴진다. 하나를 넘으면 또 하나가 보이고, 그늘처럼 따라온다. 그래도 넘는 법을 조금씩 알게 된다. 급하게 뛰는 사람도 있고 먼저 앞서가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내 속도로 간다. 반복 속에서 나만의 걸음이 생기고 그 모습 그대로의 나를 조용히 받아들인다. 출발과 끝 사이, 그 긴 시간은 달려가야 할 대상이 아니라 햇살을 통과하는 과정이다. <더 보기>
by 윤명주_사적인 지각변동 내게 다른 세상을 열어준 이는 가수 이상은이었다.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았던 그를 처음 본 후 다음 날 교실의 분위기를 기억한다. 우리는 “어제 그거 봤어?”로 말문을 열고, 대걸레를 마이크 삼아 “담다디, 담다디, 담다디 담”하며 건들거렸다. 왠지 모르게 신명났던 그날, 지루했던 일상에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쉬는 시간마다 떠들썩했고 내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우리 반 반장이었던 A가 시끄럽게 떠들던 나를 조용히 부르더니 말했다. “너도 이상은 좋아해? 우리 같이 가요톱텐 갈래?” <더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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