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있지만 혼자인 날
[청소년 정신건강 칼럼]
중간고사가 끝난 봄날. 교실이 시끌벅적하다.
“3반은 체육대회 유니폼 했대. 우리가 하려고 했는데”
“그럼, 담임쌤 얼굴 박힌 티셔츠 어때?”
“이건, 1반이 하기로 했다는데.”
곧 있을 체육대회를 앞두고 반 아이들은 벌써 들떠 있다.
응원 구호를 정하고, 함께 입을 응원복을 고르며, 누가 어떤 종목에 나갈지 이야기한다.
4등도 그 안에 섞여 있다. 의견도 내고, 웃기도 하면서 같이 준비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나만 조금 덜 설레는 것 같다.
체육대회 당일. 모두가 열정을 쏟아낸다.
응원 도구를 흔들고,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친다.
누군가 시작한 노래를 따라 부르며 웃는다.
4등도 그 안에 있다. 옆 친구와 함께 소리 지르고, 같이 웃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만 혼자인 기분이 든다.
모두가 신난 그 자리에서, 나는 생각보다 재미가 없다.
그래서 더 크게 웃는다.
상담실에서 만난 한 아이가 말했다.
“제가 축제위원회인데요… 축제가 기대도 안 되고, 그냥 혼자인 느낌이 들어요.
왜 그럴까요?”
5월은 축제의 달이다.
체육대회, 현장학습 등 학교는 일상에서 벗어나 특별한 시간을 만든다.
모두가 기대하고, 모두가 즐거워해야 할 것 같은 시간.
하지만 모두가 즐거운 것은 아니다.
그래서 축제 속 외로움은 조금 더 특별하다.
혼자 있을 때의 외로움이 아니고, 함께 있으면서 느끼는 고립이기 때문이다.
특히 4등의 축제는 더 외롭다. 4등은 축제에서도 4등이다.
늘 그 자리에 있지만 중심이 아닌 주변에 있는 사람.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이 아닌, 분위기를 따라가는 사람.
그런 4등을 부담스럽게 만드는 것은 즐거워야 한다는 집단의 분위기다.
“축제 때는 미친 듯이 잘 놀아야 해”
“밝게 웃지 않으면 분위기를 깨는 거야.”
이런 목소리가 어느새 내 안으로 들어와 나를 점검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내사라고 한다.
그래서 4등은 더 신나는 척을 한다.
정한 응원 구호를 열심히 따라 부르고, 친구들이 고른 반티를 묵묵히 입는다.
그 목소리를 맞춰주며, 거짓 자기를 충실히 수행한다.
‘즐거워야 하는’ 임무를 완수하고 집에 돌아온 4등은 완전히 지쳤다.
그렇다면, 축제가 즐겁지 않은 4등은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일까?
그건 아니다.
어떤 사람은 큰 무리 속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누군가는 조용한 시간 속에서 살아난다.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닌 에너지의 방향 차이일 뿐이다.
하지만 학교라는 집단은 종종 한 가지 방식만 정답이라고 말한다.
많이 어울리고, 크게 웃고, 밝게 응원하는 것.
그것만이 “제대로 즐긴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조용한 4등들의 방식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응원석 한쪽에서 조용히 경기를 보는 아이.
혼자 운동장 가장자리를 천천히 걷는 아이.
체육대회 풍경을 노트에 그리고 있는 아이.
이 아이들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축제를 보내고 있다.
함께 크게 웃지 않아도 괜찮다.
재미없어도 괜찮다.
조금 피곤해도 괜찮다.
나만 덜 신나 보인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니다.
당신의 방식대로 머무는 그 자리가 바로 당신의 축제다.
<4등을 위한 글>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만의 온도로 오늘을 지내도 괜찮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