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

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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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천천히 열고 입구에 섰다. 최대한 길게 손을 뻗어 불을 켜고 움직임과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작은 움직임도 들리지 않음을 확인한 후, 내가 가야 할 동선에 모든 물건을 장우산으로 넘어트렸다. 물건 뒤에 혹은 아래에 숨어 있을 그것들에게 도망갈 시간을 주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하나가 없어진다고 끝날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들의 출입을 모두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은 버린 지 오래였다. 언제나 누군가는 공생 상태로 함께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저 내 눈에만 띄지 않기를. 도망갈 시간을 주었음에도 공생의 규칙을 어긴 자들에게 자비는 없을 테니. 가장 구석에 사각지대를 향해 가지런히 높여있던 실내화를 던졌다. 마지막으로 장우산으로 천장과 벽을 한 차례씩 두드렸다. 이걸로 나의 존재는 충분히 알렸다.

-왜 안 들어가고 있어?
-침입자가 있을 수도 있어. 기다려야 해.
-뭐래.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들어와. 우리 집에 그런 거 없어.

나는 스치고 거침없이 들어가는 지은을 넋 놓고 쳐다봤다. 완전히 혼자 있음을 확신하는 저 말투. 낯설다. 어떻게 이런 세상에 저런 안정감을 가질 수 있지? 두드리지도 살피지도 않고 소파에 몸을 던지는 저 과감함은 어디서 오는 거지? 지은이는 진짜 자기 혼자만의 집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넌 이 집에 너 혼자 있을 거라고 어떻게 확신해?
-그걸 왜 의심해?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항상 대비해야지. 침입자는 어떤 형태로 우리에게 올지 몰라.

저 표정은 ‘저거 또 시작이네’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질문을 멈출 수 없다. 저 아이의 행동과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다. 이해되지 않으면 불안하다. 불안하면 함께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관계의 틈을 좁히기 위해 나는 물어야 한다. 어떻게 그 상태에 도달했는지. 하지만 기다려도 답이 없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자, 답을 찾는 중일 것이다. 소파의 모서리 틈을 경계하며 천천히 소파 끝에 걸터앉았다.

-커피랑 캐모마일 있어. 뭐 마실래?
-오후 1시가 넘었으니, 내 선택지는 캐모마일밖에 없어.

커피포트에 수돗물을 받으며 질문하는 지은이를 빤히 바라봤다. 내 동공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물론 계산 된 행동은 아니었다.

-아, 왜! 모?
-수돗물에 어떤 성분이 녹아들어 우리에게 올지 알고 수돗물을 먹어?
-끓이잖아. 끓이면 괜찮아.
-너희 아파트 물탱크에 뭐가 살면 어떻게? 그런 상상 안 해봤어?
-너의 세상은 그렇구나. 나의 세상은 비교적 안전했어. 괜찮아. 지금까지 먹었는데 안 죽었어. 그럼 된 거 아냐?

미량의 물질은 바로 죽지 않고 몸에 쌓인다는 말을 삼켰다. 지은이가 커피포트 버튼을 누르고 적당한 머그잔을 찾고 있는데, 난 머그잔들이 놓인 곳에서 시선이 멈추었다. 컵들이 다 땅을 향해 뒤집혀 있었다. 입이 닿아야 하는 그 면들이 모두 다 무엇이 돌아다닐지 혹은 돌아다녔을지 모를 바닥과 맞닿아 있었다. 머그컵을 타고 그것들이 꾸물꾸물 기어오르는 자리가 보이는 듯했다.

-잠깐, 미안한데 나 컵 한 번만 씻어도 될까?
-얼마든지.

거의 포기에 가까운 양팔의 제스처와 함께 한 발짝 뒤로 물러나는 지은을 향해 나는 약간 허리를 굽힌 자세로 몸을 흔들어 고마움을 표현했다.

-혹시 고무장갑은?
-우리 집엔 그런 거 안 키워.
-그럼 나 못 씻는데. 미안.

물러서는 내 자리에 파고드는 지은이는 맨손으로 주방세제의 거품을 머그잔에 바르고 있었다. 주방세제의 거품만큼 내 피부가 갈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젖지도 않은 손을 매만지며 가방에 핸드크림을 찾아 뒤적거렸다.

-참, 인생 피곤하게 살아.
-그렇지. 모든 감각이 그렇게 태어나서 나도 유감이야.

귀찮다는 듯한 표정에서 아주 약간 동정의 눈빛을 비친 지은이가 캐모마일 티백을 뜨거운 물 속에 넣었다. 티백의 미세 플라스틱이 머그컵 안에 캐모마일보다 많은 영역을 차지 하며 퍼져나갔다. 모든 얼굴의 근육을 이용하여 무표정을 노력했다. 색만 잃은 얼굴로 머그컵을 입에 가져다 댔다.

-어때? 유기농 캐모마일이라고 해서 사봤는데.

입에 머금은 한 모금의 미세플라스틱을 삼켰다.

-응,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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