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시투라 - 다음 중 가장 적합한 대응을 고르시오
시선은 앞을 향해 있었지만 귀는 옆을 향해 열려 있었다. 식당 백반을 앞에 두고, 지인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옆 테이블의 깔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비꼼과 농담 사이, 그 대상이 나와 지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밥을 다 먹었으면 빨리 나가든지 해야지, 괜히 손님 놓쳐 버렸네.”
“언니처럼 주인 걱정까지 해주는 손님이 어딨어. 하하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앞에 앉은 지인의 심도 깊은 이야기가 무색하게 내 안에서 들끓고 있는 말은 저열하기 짝이 없었다.
살다 보면 무례한 사람을 참 많이도 만난다. 그때마다 성질대로 대응하면 천하에 다시 없는 싸움꾼 딱지가 붙을 것이다. 그렇다고 매번 발끈할 수는 없으니 기분이 괜찮을 때는 상대의 내적 불행까지 걱정하며 퉁치고 넘어가기도 한다.
이번 경우에는 이유가 뭘까. 지역, 지인, 기분 탓이라고 해야겠다. 식사하고 있던 곳은 일터 바로 옆의 식당. 옆 테이블 사람들은 내가 현재 일을 하고 있는 곳의 회원들이었다. 내 앞에 앉은 사람도 같이 일을 하고 있는 지인. 그가 계속 말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면 가뜩이나 섬세한 성정의 지인이 깜짝 놀랄까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아니면 그냥 모든 게 귀찮았을 수도 있고.
이유를 확신할 수 없어도 마음에 남았던 원인은 비교적 분명했다. 저토록 무례한 사람들의 생각까지 통제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입을 마구 놀리는 건 막아야 한다. 적당한 임자를 만나는 것이 그런 사태를 막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평소 생각해 왔다. 내가 여기서 해치우지 못한 빌런이 나중에 어떤 짓을 저질러,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 올 지 알 수 없다는 게 나의 지론. 내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혼자 믿었다. 그것이 내가 세상에 대해 갖는, 일종의 사회적 도의 같은 거라면 좀 웃긴가.
식당 손님이 우리만이었던 건 아닐 터. 유독 우리 테이블이 표적이 된 이유도 뻔했다. 자기들보다 어려 보이는, 여성으로만 구성된 우리에게 비난의 화살을 꽂은 이유가 뭐겠는가. 자명한 배경만큼 내가 목소리를 높인 후에 벌어질 상황도 눈에 그려졌다. 짧은 순간에, 온갖 비관과 책임감과 자괴감과 귀차니즘까지, 모든 것들이 밀려왔다. 그 와중에도 지인의 말에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관두자.
평소 같았으면 옆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듣자마자 터트리고도 남았을 대거리를 나는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거리를 무슨 말로 시작할 생각이었든 날은 덥고 식사를 마친 내게 ‘포만감 후에 찾아온 불쾌’라는 이슈도 있었다. 그 상황에서 뭐라고 입을 떼든 감정적 대응은 지는 싸움, 본전도 못 건졌을 확률이 높았을 거라고 위안을 삼았다.
그러면서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읽었던 책에서 새로 배운 단어 ‘테시투라’를 떠올렸다. 테시투라는 사람이 가장 편안하고 적합한 음을 낼 수 있는 음역대를 뜻한다고 했다. 이 상황에서 마음에 소란을 남기지 않을 가장 적절한 대응이란 어때야 했을까. 무례함을 시전하는 빌런을 퇴치할 나의 테시투라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퇴근 무렵까지 마음이 불편했던 건, 이유가 무엇이었든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나란 사람은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지든 아무것도 안 했다는 데 절망하는 타입이었다.
테시투라의 핵심은 연주를 듣는 청중이나 상황이 아니라 부르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자기에게 가장 맞는 음역대를 찾아내는 건, 당연하게도 소리를 내보는 방법 뿐. 위트있는 대응까지는 아직 역부족이겠지만 적어도 마음에 남기는 일은 없도록 하자. 그것이 나의 ‘테시투라’라는 걸 앞으로는 의심하지 않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