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을 잃은 언어 (7) - 하나

중력을 잃은 언어 (7) - 하나
Photo by Ihor Chubarov / Unsplash

미나의 개인 인큐베이터 안으로 두드리는 진동음이 빠른 박자를 만들었다. 새벽에 겨우 잠든 미나는 억지로 눈에 힘을 주어 빛을 받아들였다. 타미가 헤매는 미나를 억지로 부축하여 일으켰다. 

- 아직 수면 시간인데 미안해요. 그런데 급해서요.

- 아, 괜찮아요. 무슨일인데요?

- 조이가 없어졌어요.

 미나는 벼락을 맞은 듯 정신이 확 들어왔다. 정신없이 밀실로 달려갔다. 조이를 연결하던 여러 선이 주인을 잃은 채 방향 없이 늘어져 있었고, 상태 전원은 꺼져있었다. 

- 이주씨도 안 보여요. 아무래도.

- 멀리 가지 못했을 거예요. GPS 추적기 어디 있죠?

 이주의 GPS는 우주선에서 제법 떨어져 있었다. 그들의 거점으로 의심되는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미나는 빠르게 우주복을 착용하고 구급 박스를 들었다. 출발하려는 미나 앞을 눈곱도 안 뗀 팀장이 막아섰다.

- 꼭 가야 할까? 본부에서도 조이는 귀환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고…….

- 조이랑 이주가 사라졌어요. GPS 위치로 먼저 출발할게요.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라진 대원에 대한 메뉴얼을 얘기했다. 하지만 역시 잘못 들은 건 아니었다. 

- 지금 우주선 출발합시다. 두 명 살리려다 다 죽을 수도 있어.

 육두문자가 나올 뻔했다. 평소에 미나라면 필터 없이 내뱉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건 속이 시원한 육두문자가 아니었다.

- 지금 어떤 상황 파악 없이 본부에 가면 꾸며 낼 얘기가 너무 많잖아요. 우선 상황을 보시고 어려운 보고서의 빈칸을 좀 채우시지요. 조금이라도 위험한 상황이면 팀장님 말대로 바로 출발하는 데 협조할게요. 약속해요.

 팀원이 사라졌을 때, 팀장 메뉴얼은 사람을 우선시하는 순서로 짜여있다. 한 사람도 조난 상태로 버릴 수 없다. 본부의 명령이 있지 않다면 모두를 데리고 귀환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목숨이 그렇게 아까웠다면, 이팀장은 이곳에 오지 말아야 했다. 본부가 예상하지 못한 직원의 돌발 행동에 대비해 우주선은 한 사람이 독단적으로 운전할 수 없도록 모든 팀원과 연결되어 있다. 위급 상황에서도 두 사람의 키가 들어가야 우주선 조작이 가능하다. 

 미나는 박팀장이 그랬던 것처럼 다리에 힘을 단단히 쥐고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앞으로 향했다. 지난밤, 결박 상태로 잠든 이주의 팔에 푸른빛이 돌았다. 자는 동안만 잠시 풀어둔다는 미나의 선택을 후회했다. 고르지 못한 지면에 걸려 오른쪽 발목이 꺾이며 넘어졌지만, 미나는 다친 발목을 감싸안지 않았다. 벌떡 일어나 다시 걸었다. 바람과 중력을 거스르는데, 깊은 물 속을 걷듯이 허우적거렸다. 미나는 고개를 돌려 뒤따라오는 이팀장을 봤다. 점점 거리가 벌어지는 모습이 작년 자신의 걸음과 겹쳐졌다.

 알고 있다. 조이를 살릴 방법은 애초에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복귀에 대한 메뉴얼은 없었다. 미나는 꿈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조이가 계속 말을 걸었다. 

 ‘살려줘요. 살려줘.’

 숙주를 죽이지 않고 개체수를 조절하고 있는 생명체에게 희망을 걸어야 했다. 그들도 해칠 의도는 없다고 믿고 싶었다. 조이가 있는 지점에 가까워졌을 때 미나는 이주가 보였다. 조이를 향해 절을 하고 있던 이주는 이제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양손을 하늘 향해 펼치며, 동동거렸다. 들리지 않은 텍스트를 자막에 뿌리고 있었다. 다행히 라이프벌룬에 감싸 안전하게 옮겨진 조이는 아직 혈색이 괜찮아 보였다. 어두운 밀실에서 보다가 밖에서 보니, 형체는 더 시체 같았다. 타미가 먼저 보낸 드론과 보안 로봇이 조이와 이주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드론과 로봇을 지휘하던 타미가 미나를 봤고, 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타미가 드론을 보며, 버튼을 눌렀다. 라이프벌룬 위쪽을 날던 인공지능 드론이 공중에서 흡착형 핑크 분자를 뿌렸다. 공중에 날리는 듯, 가라앉는 듯 그 공간을 핑크 먼지로 가득 채웠다. 물질이 닿으면 달라붙어 버리는 핑크 분자가 표면에 내려앉자, 우리는 볼 수 있었다. 라이프벌룬 주위에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그것들은 라이프벌룬을 감싸고 있었다. 그 객체의 수는 수백은 되었다. 조이의 모든 구멍에서도 그것들이 탈출하고 있었다. 엄마의 부름을 받고 달려 나오는 강아지처럼 서로 먼저 탈출하려고 조이를 상처 내고 있었다. 라이프벌룬을 가득 채우는 안과 밖은 그것들의 군집에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핑크빛 투명 조명 기구처럼 보였다. 조이를 감싸고 있는 그것들이 모두 서로 한 덩이가 되어 심장이 뛰듯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눈부시던 라이프벌룬이 폭발하며 객체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미나는 조이에게 달렸다. 

- 멈춰!

 이팀장이 소리쳤다. 하지만 미나가 빨랐다. 미나는 정신없이 달려가 피를 쏟아내는 조이의 상처들에 봉합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이기 시작했다. 일제히 쏟아지던 그것들은 더 이상 조이에게 남아 있지 않아 보였다. 제발 모두 집을 찾아 나왔기를 바랐다. 미나의 뒤를 따라 뛰던 타미가 새로운 라이프벌룬으로 조이와 미나를 함께 감쌌다. 

- 버텨줘요. 조이.

 폭발하여 흩어진 객체들은 커다란 덩어리가 되었다. 여러 개의 다리로 서로가 서로를 연결해 나갔다. 라이프벌룬보다 훨씬 큰 덩어리가 분홍색 혈관처럼 움직였다. 그들은 하나가 되자 움직임이 선명해졌다. 피 흘리는 조이를 치료하느라 미나가 정신없는 사이 이주는 우주복을 벗고 있었다. 그들의 분홍색 집합체는 이주에게 모여들었고, 이주는 어느 때보다 황홀한 얼굴로 그들을 안을 듯이 팔과 다리는 크게 벌렸다. 순간 모든 객체 들은 이주를 삼키듯이 에워쌌다. 그것들은 구름처럼 부드러워 보였지만, 이내 뾰족한 모양으로 회전했다. 찰나였다. 모든 객체들은 이주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주를 통과하는 모든 객체들에 의해 이주는 공중분해 되었다. 말릴 틈도 없이 벌어진 광경에 모두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보안 로봇이 라이프벌룬 주위로 밀착했다. 로봇들이 유선형의 방패 보호막을 만들며 라이프벌룬을 엄호했다. 소리만 지르고 상황 파악이 안 되던 팀장은 라이프벌룬 옆에 바짝 붙어서 손만 올린 채 움직임을 따랐다. 미나는 구급 박스에 소염제, 항생제, 진통제를 모두 조이에게 주사했다. 타미는 보안 로봇과 필사적으로 라이프벌룬을 이동시켰다. 예측할 수 없던 죽음, 물러설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위험에 모두 숨이 가빠졌다. 

- 정신 차려요. 조이. 이렇게 소모품으로 사라지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눈에서도 피가 흐르는 조이가 끈적이는 응고를 이기며 눈을 떴다. 미나는 의료용 거즈를 꺼내 조이의 눈물에 적셔 붉은 자국을 닦았다. 체액과 피를 토해낸 조이의 입에서 드디어 사람의 소리가 나왔다. 

- 미나씨, 고마워요. 

- 피가 너무 많이 나와요. 말 안 해도 알아요. 그만 말해요.

- 난 진짜 내가 외계인이 된 줄 알았어. 그들의 생각이 나한테 들려왔어요. 아무도 돌려보내지 않을 거래. 애쓰지 마요.

 다음 장면에서 죽더라도 미나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조이의 몸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생명을 없애기 위해 특수 약제를 주사했다. 잠시 정신을 차렸던 조이는 신음을 내며 다시 잠들었다. 로봇 덕분인지, 타미 덕분인지 죽음도 움직임도 모두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덕분에 우리는 우주선으로 복귀했다. 버텨준 로봇들이 뜯기는 광경을 보며 타미와 이팀장은 이륙 버튼을 눌렀다. 우주선에 달라붙은 그들은 대기권을 통과할 때 붉게 폭죽처럼 타올랐다. 

 미나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매일 찾아오는 타미의 병문안 덕분에 지구에 무사히 돌아온 걸 알았다. 지금은 2개월 정도가 지났다고 했다. 여전히 눈만 감으면 그 분홍색 구름 같은 분 자들에 둘러싸여 있다. 조이는 어떻게 됐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래도 오늘 미나는 격리실 창을 통해 규리를 볼 수 있었다. 못 본 새 너무 커서 규리를 못 알아볼 뻔했다. 100점짜리 시험지를 들고 와서 칭찬을 많이 해줬다. 칭찬을 받은 규리는 울었다. 왜 우는지 미나는 알았다. 

 저녁마다 미나에게 오는 타미는 격리실 문 앞에 한참을 서 있다 갔다. 말 한마디 하지 않는 타미지만, 미나는 이제 타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 아니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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