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머 : 다정한 강박 - 불안을 길들이는 45분
아침 9시.
나는 타이머의 분침을 숫자 45에 맞춘다.
기지개를 한번 시원하게 켜주고, 비로소 글쓰기에 돌입한다.

긴장감이 손가락에 동력을 달아준다. 거침없이 딸깍딸깍거리는 소리가 엔진이 되어 뇌를 일깨운다. 무엇이든 쓸 준비가 돼 있고 써나간다. 물론 이렇게 쓴 글 태반은 휴지통 속으로 사라진다. 그래도 나는 쓴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시간감각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하는. 이를 테면, 배고픔, 피로감, 심장박동, 계절의 감각 같은 것들.
하지만 이 원초적 느낌이란 굉장히 주관적이어서 표준화된 도구가 필요했을 터.
시계는 지금 몇시인지,
캘린더는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하는지
그리고 타이머는 언제 멈춰야 할지를 알려준다.
그런 면에서 타이머는 인간이 만든 가장 다정한 강박이다.

타이머는 인간의 불안에서 태어났다. 가장 오래된 타이머인 모래시계는 망망대해에서 길을 봐야하는 항해사들의 눈이 되어 주었다. 항해사들은 나침반과 모래시계에 의존해 항로를 변경한다. 길을 잃을 것 같은 불안이 모래시계를 만든 것이다. 1926년 등장한 기계식 주방 타이머는 요리사의 불안에서 세상에 나왔다. 빵을 태울 것 같은 불안, 고기를 질기게 만들고 채소를 흐물흐물하게 만들 것 같은 불안. 그리고 지금 나의 타이머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것 같은 나의 불안과 반성에서 들인 것이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아지고 있다는 불안.
나이 들수록 하루가 짧게 느껴진다는 불안.
내게 남겨진 시간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소모되고 있다는 불안.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두 가지 시간이 있다고 말했다. 시계가 재는 시간과 우리가 실제로 살아내는 시간. 어제의 1시간과 오늘의 1시간은 같지만 신기하게도 인간 각자가 살아내는 시간의 느낌은 다르다. 의식이 깨어있을 때의 1시간과 멍하니 흘려보낸 1시간이 전혀 다른 무게를 지니는 것과 같다. 베르그송에 의하면 시간의 가속도는 나이가 아니라 밀도에 있다. 매일 루틴으로 굳어버린 일상은 뇌에 입력되지 않는다. 입력되지 않은 기억의 양으로 우리는 하루가 지나치게 짧다고 느낀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내는 나 역시 그랬다. 이대로라면 올해도 흔적 없이 지나갈 것 같은 불안으로 초조했다. 시간을 늘릴 수 없다면 시간에 생명을 불어넣어 보자. 의식을 촘촘하게 새겨넣는다면 단조로움이 사라지지 않을까. 이 불안이 사그라들지 않을까. 그래서 타이머를 샀다.
나는 책상 앞에 앉으면 가장 먼저 타이머의 분침을 돌린다. 짹깍짹깍, 초침소리에 맞춰 깊은 호흡을 들이마셨다 내쉰다. 스타트라인에 선 육상 단거리 선수가 된다. 분수가 줄어드는 것을 보며 의식이 단단해진다. 60분에 1천 자, 2천 자, 치열하게 기록을 갈아치우며 글력을 키워갔다. 시간에 쫓겼던 나의 하루가 시간을 추월했다.
내가 한동안 타이머와 씨름했던 이유는 무언가를 놓친 뒤의 후회를 견디지 못했기때문이다. 단순히 제한된 시간 안에 내 능력을 갈아넣는다는 의미보다 지극히 인간적인 공포가 깔려 있었다.
항해사도, 요리사도, 그리고 타이머를 썼던 모든 사람들이 비슷하지 않았을까.
놓치고 싶지 않을 것들.
불이 꺼지는 순간, 빵이 타버리는 순간, 약효가 사라지는 순간, 기차가 떠나는 순간 누군가를 기다리게 만드는 순간-
인간이 만든 다정한 강박도구인 타이머는 짹깍짹깍 자기만의 언어로 말한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마.”
“지금 이 순간, 최고의 능력을 보여줘.”
상실에 대한 두려움, 나는 그 불안을 떨칠 수 없다면 길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아 주문을 걸듯 타이머를 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