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을 잃은 언어 (6) - 여섯 개의 점
코마 상태인 조이가 말을 한다는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이주는 도망치듯 무언가를 찾으러 간다며 달려 나갔다. 밀실 상태 등이 붉게 번쩍거렸고, 조이의 몸이 뒤틀렸다. 이번엔 진통제를 투약했지만, 경직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바이털 수치를 확인하는 사이 조이와 눈이 마주쳤다. 텅 비어 있는 눈동자가 말하고 있다고 느낀 건 처음이었다.
- 조이씨, 나 보여요? 나 누군지 알아보겠어요?
조이는 자기 팔을 온 힘을 다해 움직였다. 그제야 미나의 눈에 조이의 팔이 보였다. 조이의 팔에 붉게 부풀어 오른 자국은 무슨 기호 같았다. 기역과 니은 같은 그림이 아닌 점으로만 만들어진 기호. 이게 뭐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 잠깐만 기다려요.
미나는 이주가 향한 곳으로 달려 나갔다. 우주선 밖 멀지 않은 곳에 그가 있었다. 온갖 기호로 가득한 그의 대화창이 미나가 가까이 가자 모두 지워졌다.
- 조이씨가 뭐라고 말하는 거 같은데, 좀 가서 봐줘요.
- 알아요.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어요.
- 무슨 말인데요?
- 살.려.줘…… 해줄 수 있어요?
- 살리려고 여기까지 온 거잖아요.
이주는 한 박자 느리게 고개를 들어 미나를 봤다. 알 수 없는 기호들이 자막으로 찍혔지만, 미나는 느낄 수 있었다. 환멸.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이를 보는 듯한 무시. 쓴웃음이 그의 얼굴에 올려졌다. 미나는 다음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주는 행성 바닥에 다시 시선을 박은 채 돌을 뒤적거렸다.
- 뭘 찾고 있어요?
- 쓰레기
미나는 쓰레기를 찾는 이주를 바라보며, 조이에게 해줄 수 있는 답을 고민했다. 미나, 자신은 다른가?
이번 우주복은 테플론 소재 없이 만들어졌다. 외계 생명체의 주식으로 테플론이 지목되었기 때문이다. 행성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무기물이 아닌 인공 합성물이 외계 생명체의 먹이라는 사실이 연구자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우주쓰레기가 인공행성을 만들 정도로 심각한 문제이긴 했지만, 그 우주쓰레기를 먹어 치우는 생명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주복을 먹어 없애는 사실을 1년 전 블랙박스에서 확인한 후 본사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를 찾았는지, 손으로 감싸고 일어서는 이주를 미나는 조용히 뒤따랐다. 당연한 듯 암실로 들어가려는 이주의 팔을 미나가 잡았다.
- 조심해 달라고 말했을 텐데요.
- 그들과 대화한다고 말했을 텐데.
- 무슨 의미예요?
- 그들은 나한테만 말해. 그들은 나를 원해. 그들이 원하는 걸 말하고 있어.
- 뭔 헛소리야. 조이씨 잘못되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 그들을 자극해서 다치는 건 누가 될까? 조이뿐 일까? 너도 다칠 수 있어. 그들은 피해자야. 잘못이 없다고. 너희들이 가해자라고. 남의 땅에 무단으로 침입했잖아.
이주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내려다보듯 눈을 흘기며 미나의 팔을 뿌리쳤다. 미나는 밀실의 문을 가로막고 양팔에 힘으로 버텼다.
- 그 쓰레기로 뭐 할 건데. 조이씨 몸에 그 쓰레기를 넣는 건 혈관을 막는 위험한 행위라고.
- 애송이 같으니. 잘 들어. 여긴 누구도 살아 돌아갈 수 없어. 그들의 말이라도 고분고분하게 들어야, 네 몸뚱이 하나는 지킬 수 있을 거야.
우악스럽게 걷어내는 이주의 손길에 미나는 바닥에 나뒹굴었다. 떨어지며 부딪친 충격으로 팔을 감싸고 있을 때, 타미가 나타나 미나를 일으켰다.
- 조이에게 가줘요. 조이에게서 이주씨를 떼어놔야 해요. 이주씨 이상해요.
고개를 끄덕이고 달려 들어간 타미와 이주가 서로 무언가에 부딪치는 소리가 났고, 고성을 지르는 이주가 타미의 손에 끌려 나왔다.
- 굶주린 그들의 폭발을 나는 막으려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들이. 감히 나를. 이제 너희들은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이주는 온몸의 힘줄을 세웠다. 첫인상과는 너무 다른 광기 넘치는 눈빛에서 악마를 보았다. 어디에 박혀있다가 왔는지, 이팀장이 놀란 눈으로 소란을 보고 있었다.
- 왜 이제야 나타나요. 팀장님! 이주씨가 밀실로 들어가서 이상한 짓해요. 막아야 해요. 가서 끈이라도 가져와요. 빨리!
이팀장은 이주의 눈을 보더니, 이해가 가는 상황이라는 듯 빠르게 창고로 뛰었다. 조이의 밀실은 붉은색으로 깜박였다. 미나는 그 붉은색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타미와 미나가 몸으로 이주를 압박하는 동안 이팀장이 끈으로 묶었다. 미나는 응급 상자에서 올란자핀을 꺼내 들었다. 이주의 팔 근육에 주사를 꽂았다. 이주의 몸에 힘이 빠지는 게 보였다. 산소가 부족한 공간에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 타미와 미나는 숨을 거칠게 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미나는 남은 힘을 끌어모아 벽을 손으로 디디며, 밀실로 들어갔다. 조이의 몸은 요동치고 있었다. 체내 객체가 증가한 것인지, 이번엔 산소포화도가 한계치에 있었다. 내부 산소 농도를 최대치로 올렸다. 여전히 조이의 팔에 선명한 붉은 기호들. 무슨 의미일지 가늠이 안 되었다. 이주를 믿을 수 없지만, 이주가 필요했다. 약에 취해 쳐져 있는 이주는 빈 눈동자로 허공을 보고 있었다. 이주에게서 거리를 유지한 채 미나는 눈높이를 맞춰 앉았다.
- 조이씨랑 어떻게 대화가 가능한 거예요?
- 내가 말해준다고 너희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그들은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위대한 생명체야. 그들의 객체는 각기 다른 생명체지만 커다란 하나의 집합체처럼 움직이고 소통해. 조이도 연결되어 있어. 그래서 조이도 말을 해. 그들을 통해서. 나에게만.
- 외계어인 건가요? 조이의 몸에 그린다는 그 언어.
- 아니, 위대한 그들은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 중에 자신들과 소통이 가능한 가장 만족스러운 언어를 스스로 찾았어. 그 언어를 어떻게 찾고, 어떻게 학습하는지는 물어보지 마. 나도 몰라. 그들이 말해준다고 해도, 이해하지도 못하겠지만. 그들이 선택한 언어가 바로 볼 수도 느낄 수도 있는 우리의 점자야. 그게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보였어. 내가 아는 그 여섯 개의 점들이.
이주와의 대화로 미나는 더 혼란스러웠다. 다 헛소리 같다가도, 다 진실인 거 같은 말들. 미나는 지구가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따뜻한 물을 홀짝였다. 이주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조이에게는 청각 장애를 가진 동생이 있었다. 조이는 박팀장 욕할 때면 알아듣지도 못하는 수어를 했었다. 익살스러운 그 표정이 웃겨서 미나는 같이 웃어주곤 했다. 동생과 놀기 위해 수어도 점자도 배웠다는 조이. 그녀의 뇌를 그들이 학습한 것이라면 이주의 말은 진실이 된다. 진실이라고 해도 미나의 머릿속엔 질문들이 사슬처럼 엮였다. 저녁 수프를 든 타미가 옆자리에 앉았다.
- 고백은 했어요?
- 별걸 다.
태풍의 눈 안에 고요함을 견디기 힘든 미나는 어쭙잖은 농담을 던지며 긴장을 풀려고 했다. 그 문장에 붉어지는 타미의 얼굴을 보니, 꺼낸 단어를 주워 담고 싶었다. 미나의 긴장에 이용하기엔 그 깊이가 가볍지 않아 보였다. 1년의 세월이 어떤 결론이든 닿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얼굴은 진행 중인 듯했다. 미나는 답지않게 서투른 위로를 뒤적였다.
- 타미씨 진짜 알면 알수록 괜찮은데, 그 여자분 안타깝네요.
많은 말이 담긴 눈으로 타미가 미나의 눈을 한참 봤다. 직선으로 다가오는 시선이 화살처럼 느껴져서 미나는 눈을 돌려 초점을 더 정확히 지구에 고정했다.
- 작년에 박팀장이 말했던 게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눈코입도 없는 것들이’ 하지만 우리가 우주선에서 바라본 장면은 박팀장 주위에 아무것도 없었어요. 카메라에 담기지 않는 생명체인지, 왜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는지, 혹시 아는 거 있으면 알려줄래요?
- 미안해요. 자세한 건 저도 잘……. 내일 혹시 팀장님과 다른 계획이 있어요?
- 무슨 계획? 전 아무 말도 못 들었어요.
타미가 말하기를 팀장은 본사의 메뉴얼대로 사고 위치에 조이를 안전장치 없이 놓아두고 나머지 팀원 전원은 빠르게 우주선으로 복귀해서 지구로 출발하라는 계획이라고 했다. 다른 생명체에 오염된 조이를 버리는 것이 본사의 계획이었다.
본사는 조이를 살리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포장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팀원을 위해 희생한 영웅적 우주인으로 만들며, 자신들의 잘못을 아무도 모르게 덮을 것이다. 유가족에게 거액의 합의금을 제시하며 감사하다는 인사말도 잊지 않을 것이다. 본사가 사람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우린 계약서를 보며 알고 있었다. 우주로 이송된 우리의 몸은 개미 목숨만큼이나 하찮아진다는 걸. 우주선보다 값비싼 인간은 없다는걸. 언론으로 어떤 영웅도 죽음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걸. 이미 박팀장 때 경험했다.
- 조이한테 뭐라도 하겠다고 약속했어요. 저 히포크라테스 선서한 의사예요. 살아있는 생명을 버리고 가는 건 못해요.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면, 하나만 도와줘요.
구체적인 계획에 도와줄 동료까지 구했지만, 미나는 영원히 오늘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수면제나 진정제 투약도 미룬 채, 눈을 감을 수 없었다. 내일이 올까 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