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을 잃은 언어 (5) - 바라지 않던 행성
우주선 발사 카운트가 시작되었다.
인간은 요단강을 건널때 가장 귀한 기억이 재생된다고 했다. 미나는 우주선 발사할 때마다 그랬다. 이번 영상의 주인공도 규리였다. 이륙 직전 규리와의 통화에서 대답도 없이 악을 쓰며 우는 규리에게 미나는 화를 냈다.
- 엄마, 목소리 지금밖에 못 듣는데 계속 울기만 할 거야? 규리야! 규리야. 엄마 규리한테 할 말 있어. 제발 들어줘.
호통 소리에 딸꾹질까지 하며 울음을 삼키는 규리에게 미나는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말들을 해야 했다.
- 엄마 금방 집에 돌아갈 거야. 또 혼자 있게 해서 미안해. 이번이 마지막이야. 다시는 혼자 두지 않을 거야. 평생 약속해.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엄마 메시지로 다 보내놔. 언제가 됐든 엄마는 다 보고, 규리한테 답해줄 거야. 밥 잘 먹고, 잘 놀고 있어야 해. 그래야지 엄마 빨리 만날 수 있어. 알았지? 엄마가 규리 아주 많이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울음을 삼키던 규리의 울음소리가 처음보다 더 커졌다. 미나의 엄마가 전화를 대신 받아 들고, 먼 길 떠나는 딸의 안부를 걱정했다. 전화가 종료된 후 미나는 자신의 가족이 겪어야 할 고통의 무게가 지구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부정적인 모든 감정이 표면으로 들끓었다. 절규였는지, 울음이었는지 터져 나왔다. 주사기를 들고 있는 직원들이 달려들었다. 소리를 지르며 사지의 힘을 끌어모았지만, 동공이 풀렸다. 그 와중에 눈물은 볼을 타고 내려왔다. 놓지 않으려는 미나의 의식 속에서 모든 순간의 규리가 아주 빠르게 겹쳤다. 미나의 동공이 흔들렸다.
우주선이 정상궤도에 들어서자, 하나둘 안전띠를 풀었다. 행성까지는 일주일을 더 날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새로운 얼굴이 보인다. 외계 생명체가 증명되었으니, 혹시라도 그들과 소통을 기대했는지, 이번엔 언어학자 김이주가 추가되었다. 신임 팀장으로 온 이필립은 아까부터 식량창고에서 물건의 개수를 세고 있었다. 물류 데이터에 다 적혀 있다고 말했는데도 사람과 기계는 언제든지 실수할 수 있다며, 못 믿는다고 저러고 있다.
- 오케이. 적혀 있는 데이터와 정확히 일치하네요. 2년 전 비행에서 데이터 정보와 실제 식량 재고 수량이 틀려서 엄청난 싸움이 났어요. 그런 건 미리미리 예방해야겠죠?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라 식량이 부족해지는 상황에서는 특히 아주 난폭해지거든요. 각각의 비상식량을 나눠서 한사람 분량의 양을 각자 일지에 적어둬요. 남의 것 먹지 않도록 조심하시고.
첫인사부터 아주 숫자 숫자 한다. 미나는 한 가지만 생각했다. 살아서 가족에게 돌아가야 한다. 미나는 자기를 여기에 끌고 온 조이의 상태부터 봐야 했다. 지금, 이 공간에 같이 있는 것이 말이 안 되는 상황일 수 있다.
일반 조정실과 분리된 조이의 인큐베이터 밀실은 암흑과 가까웠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체내의 모든 물질들을 수면 상태로 이동시키려는 계획인 듯했다. 코마 상태에 빠진 조이는 움직임이 거의 없어서 송장 같았다. 언뜻언뜻 비치는 하얀 피부, 여윈 얼굴. 윤기가 흐르던 짧은 머리는 이제 등을 덮을 정도로 길어져 있었다. 밝고 생기 넘치던 조이의 얼굴은 과거에 느낌으로만 남았다. 이제 조이는 낯선 이의 얼굴이었다.
미나는 조이의 일지에 체온, 혈압, 맥박, 호흡수, 산소 포화도를 적었다. 조이가 살아 있다고 느끼는 유일한 숫자들. 조이의 의료 일지 앞쪽에 붉은 글씨로 주의 사항이 적혀 있었다.
< 주의 사항>
1. 불을 켜지 마시오. 객체의 활발한 활동으로 환자의 체내 기체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2. 자극하지 마시오. 객체 번식과 운동성이 증가하여 환자의 신체 손상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3. 인큐베이터 오픈은 우주선 외부에서 하십시오. 모든 우주인의 생명에 위험이 될 수 있습니다.
놓치고 있는 텍스트가 있는지 뒤적거리는 미나 옆으로 이팀장이 발소리도 없이 가까이 다가왔다. 인큐베이터 주변을 살피는 시선이 조심스러웠다. 인큐베이터에서 누가 듣기라도 하는 듯 팀장은 미나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 행성에 도착할 때까지 이 격리실 접근은 최소한으로 하세요.
- 의료 일지에 적히지 않은 내용이 있을까요? 제가 해야 할 역할이라는 게 일지 확인하는 거뿐인 건지 아무 설명도 못 들어서요.
- 지금 미나씨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알고 있는 그게 전부.
그때 우주선 외벽에 미세 운석이 부딪치는 진동이 둔탁하게 퍼졌다. 순간 흔들리는 우주선으로 균형을 잃은 미나가 빠르게 안전바를 잡았지만, 인큐베이터 쪽으로 몸이 기울었다. 찰나에 이팀장은 미나와 인큐베이터 사이에 손을 넣어 미나를 당겼다. 미나와 팀장의 순발력 덕분에 아주 가벼운 충돌이었다. 하지만 조이에게는 아니었다.
인큐베이터 상태등이 초록색에서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조이의 손이 정맥과 동맥 선을 따라 울퉁불퉁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여전히 무의식 중인 조이는 통증 때문인지 몸을 비틀었다. 조이에게 연결된 링거 선으로 하얀 액체가 흘러 내려갔다. 조이의 몸은 서서히 움직임이 사라졌다. 벽에 붙어 상황을 지켜보던 이 팀장은 경직 되어 있는 미나를 밀실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 밀실 출입은 미나씨랑 저만 가능합니다. 임무 완수할 때까지 팀원들에게 정보 공유 금지. 앞으로 더 조심하라구.
매섭게 쳐다보며 경고를 날리는 팀장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밀실에서 멀어졌다. 미나는 양손으로 인공호흡기 모양을 만들어 입과 코를 감쌌다. 공기의 움직임을 차단하고 숨을 천천히 쉬려고 노력했지만, 손이 떨려 잘되지 않았다. 주머니에 있던 신경안정제를 꺼내 목에 넘겼다. 천천히 움직이며 미나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취침 모드 스위치를 눌렀다. 미나의 호흡기가 연결되고 침낭 같은 시트가 온몸을 감쌌다.
점차 호흡이 안정적인 박자를 찾고 있었다. 미나는 뜬금없이 박팀장이 생각났다. 지난 비행에서도 불안도가 높아지면 미나는 호흡이 힘들었다. 미나가 호흡이 힘들 때, 욕을 하면서도 박팀장은 미나를 챙겼다. 팀장이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버리고, 우주선을 출발시킨 박팀장이었다.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행성 착륙 완료, 미나는 마지막으로 조이의 바이탈 체크를 위해 밀실로 조심히 들어갔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조용한 상태. 약물로 계속 수면 상태인 조이가 미나는 제일 신경이 쓰였다. 본부가 조이의 편이 아니라면 미나도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할 생각은 없다.
- 조이씨한테 이럴 자격 아무한테도 없는데……. 버텨줘요. 나도 뭐든 해볼게.
밀실에서 나왔을 때 밀실 문 앞에는 타미가 서 있었다. 미나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미나도 알고 있다. 타미는 죄가 없다는걸. 하지만 누구에게라도 쏟아내고 싶은 감정이 가득한 건 미나의 잘못도 아니었다. 미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이 지랄도 필요한 순간이 온다. 아끼자.'
1년 만에 온 행성은 여전했다. 우주선 오른쪽에선 타미가 태양광 패널과 안테나의 작은 부품을 교체하고 있었다. 미나는 왼쪽으로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우주선 입구에 앉아 있는 이팀장은 오늘도 우주복 안에서 외계인 탈출 게임 중이었다. 주인이 우주복 안에서 외계인과 싸우느라 바빠서, 주인을 잃은 우주복 팔이 공기 인형처럼 허우적거렸다.
간간이 돌풍이 불었다. 우주복 오른쪽 팔이 때마침 불어온 돌풍에 방향을 잃고 허우적거리다 이팀장의 앞 통수 헬멧을 강타했다. 꽤 큰소리를 내며 팀장은 뒤로 나자빠졌다. 모두가 고개를 돌렸지만, 자막 액정에 무한 키읔은 막을 수 없었다.
- 고개 돌려도 다 보입니다. 흠. 이번 비행에서 뇌파 수신기는 모두 켜요.
괜히 팀원들 단속하는 단어들, 아무도 읽어주지 않았다. 박팀장이 찔러대던 뾰족한 돌들이 가득 있는 이 척박한 행성에 다시 오다니, 미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미나는 한발 한발 행성에 내디딜 때마다 감각털이 솟았다. 둘러보려던 걸음을 멈추고 이팀장에게 다가갔다.
- 오늘 박팀장 유품 수거하는 날?
- 아니. 조이가 공격당했던 위치와 같은 위치라서 내일 다 같이 처리할 겁니다. 오늘은 우선 우주선 재가동을 위한 재정비가 우선이에요. 보안 로봇이 주변에 진을 치고 있어요. 멀리 가지 말아요. 근데 말이 짧다.
- 존칭 받고 싶으면 뇌파 수신기 끄게 해주던지. 뇌파까지 통제하는 능력은 없어서.
잔소리를 써대는 팀장을 뒤로 하고 미나가 우주선에 들어갔을 때, 이주가 밀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미나는 달아나려는 이주를 잡았다.
- 이주씨, 어떻게 거기서 나와요? 이팀장이 저랑 팀장만 들어갈 수 있다고 했는데.
- 지구에서부터 환자 대면 연구했어요. 조이씨가 저한테는 말을 해요.
- 거짓말. 코마 상태인데 어떻게 말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