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을 잃은 언어(2)
-조이씨, 조이! 조이!
미나는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멍하니 서서 눈알만 굴리고 있었다. 눈의 깜박임이 비정상적인 속도로 불규칙하게 움직였다. 무심히 구급상자를 챙겨 든 팀장은 미나를 바라봤다.
-정신 차려. 흔한 일이야. 훈련받은 거 기억하지? 그대로 하면 돼. 별일 아니야.
빨리 오라는 팀장의 손짓에도 미나는 반응이 없었다. 팀장은 한숨을 쉬며 손에 든 구급상자를 내려두고, 미나에게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정면으로 봤다. 파랗게 질려있는 미나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이 자식! 호흡부터 해! 호흡!
그제야 미나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헐떡였다. 아무 말도 없이 정신을 못 차렸다. 팀장은 미나의 손목에 있는 뇌파 연결 버튼을 눌렀다.
-미쳤나 봐. 말도 안 돼. 이런 건 안 알려줬잖아. 팀장씩이나 돼서 설명도 안 해주고. 설명해 줬으면 우주고 나발이고 안 왔어. 어떡해. 나 못해. 나 집에 갈 거야.
-미나! 미나! 조이 찾으러 가야 해. 네가 조이처럼 될 수도 있어. 너 우주지원팀 의사야. 우린 한 팀이고, 팀원을 구하러 가야 해. 팀원 못 찾으면 우리 집에 못 가. 늦어질수록 찾기 힘들어. 지금 가야 돼.
가상으로 배우는 것과 직접 그 상황 안에 있는 건 이야기가 너무 달랐다. 우주에서 인명 피해는 먼지만큼 흔한 일이라는 걸 글로만 배웠다. 그럴듯한 직함을 주고 초보 의사를 데려오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구급상자를 들고 조이의 좌표로 팀장이 성큼성큼 뛰어갔다. 그 뒤를 멍한 눈으로 미나도 쫓아갔다. 미나의 초점은 이미 지구에 가 있었다. 팀장과의 거리를 좁히려고 노력했지만, 멀어지는 팀장을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그럴수록 발이 더 무거워졌다. 힘보다는 의지 문제였다. 팀장과의 간격은 점점 멀어졌다. 갑자기 멈춘 팀장은 몸을 돌려 성큼성큼 미나 앞으로 다가왔다. 주먹으로 미나의 우주복 머리를 박았다.
-아! 이 자식이 어디를 감히. 왜요! 아파요!
-긴장 풀지마! 내 말 잘 들어. 괜찮아. 나 믿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돼. 어려운 거 없어. 여기부터 조이 흔적을 살핀다. 알았지?
미나는 억지로 단단히 눈의 초점을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북위 25도, 동경 173도. 조이의 GPS가 끊어진 장소. 그 곳에 우뚝 서서. 천천히 360도 회전을 하며 낯선 물체를 탐지했다.
-헉
우주복이 벗겨진 채 땅에 처박힌 조이가 적외선 카메라에 잡혔다.
‘움직임 없음’
‘호흡 불안정’
‘맥박 약함’
‘체내 압력 상승 중. ’
우주복 헬멧 인식 창에 조이의 상태가 붉은색으로 번쩍거렸다. 미나가 소리 지를 사이도 없이 팀장은 뒤뚱뒤뚱 조이에게 뛰어갔다. 팀장은 응급 상자에서 꺼낸 라이프버블을 조심스럽게 조이 몸 전체에 씌웠다. 대형 풍선처럼 생긴 라이프버블 안에 쏙 들어간 조이가 보였다. 라이프버블의 입구를 단단히 잠그고 산소통을 연결했다. 산소가 채워질수록 라이프버블은 커다랗고 단단한 원통형 풍선이 되었다. 표면에 덧대어진 뽁뽁이 모양의 오돌토돌이까지 모두 산소가 들어가 주름이 빵빵해졌다.
라이프버블이 제멋대로 굴러가는 걸 방지하는 안전선 하나는 팀장의 몸에 다른 하나는 미나의 몸에 묶었다. 라이프버블은 작은 힘에도 잘 굴렀고, 내부에 조이는 외부 회전력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편안히 누워 이동하고 있었다. 방향이 틀어지면 미나가 좀 더 움직였고, 때론 팀장이 좀 더 움직였다. 산소로 가득한 라이프버블 안에서 조이는 다행히 호흡과 맥박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장애물이 많은 울퉁불퉁한 지형의 행성에서 부상자를 이동시키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우주선에 도착하자마자 미나는 조이를 살폈다. 약간의 긁힘이 여기저기 있으나, 큰 외상은 없었다. 하지만 호흡을 회복한 후에도 조이의 의식이 돌아오고 있지 않았다. 누가 왜 우주복을 가져간 걸까? 조이를 이렇게 만든 놈들은 우주복이 목적이었을까?
의식을 잃은 조이를 내려다보는 미나는 점점 더 불안해졌다. 생명체가 없다고 생각했던 이곳에 우리 말고 다른 생명체가 있다고 생각하니, 당장 지구로 돌아가고 싶었다. 생명체의 흔적을 찾는다고 했지, 생명체를 직접 만날 거라고는 들어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 생명체를 찾아 떠난 우주인들도 모두 그런 말은 없었다. 진짜 우리를 위협하는 생명체가 있다는 건 예상 밖의 결론이었다.
-조이가 의식을 회복할 때까지 체류 기간을 24시간 늘린다. 의식 없는 상태로 대기권을 통과한다는 건 어떤 건지 다들 알 테니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 이상.
-뭔 개소리야. 조이씨가 무엇에 공격을 받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곳에 더 머문다는 건 모두의 생명을 위험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을 살리자고 모두를 위험하게 하는 건 안 될 일입니다.
팀장의 뇌파는 익숙했지만, 미나의 뇌파를 처음 들은 타미는 흠칫 놀라 팀장을 쳐다봤다. 팀장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타미를 향해 눈을 깜박였다.
-이기적인 놈.
-말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닙니까? 지는 왜 갑자기 사람 좋은 척이야.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아! 생각은 했네. 연료와 산소 고려했을 때 하루 정도는 기다려 줄 수 있다는 말이다. 24시간이 지나도 조이가 의식이 없으면 그땐 출발한다. 그리고 미나, 아까 정신 못 차릴 때, 내가 뇌파 연결 켰다.
-%$@$#@%@^%&@$@#@$@%
미나의 텍스트가 해석되지 못하는 상태로 분주했다. 눈만 커져서 뭔가를 계속 떠올리려는 얼굴에 팀장과 타미는 입술 사이로 웃음이 삐져나왔다. 미나는 손목에 뇌파 스위치를 껐다. 미나의 얼굴에 귀한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사과는 안 해도 돼. 나도 그랬을 거 아냐. 서로 쌤쌤 하자. 그나저나 우린 생명체의 흔적을 찾아야 한다는 목적을 끝내지 못했어. 생명체의 단서도 없이 사망자만 싣고 간다면, 우리 모두 다음 비행을 약속받을 수 없어.
그때 조이의 것이었던 우주복에서 텍스트가 배달되었다.
-뭐지@#$@%@^? 이상하!#$!%@?
-지구인입니까? 오바.
-깜짝#$!#$%. 깜박&23$*&%.
상대방이 텍스트를 읽을 줄 모를 수 있다고 생각 했는지 팀장은 ‘소리 전송’ 버튼을 눌렀다.
-들리십니까?
팀장 옆으로 미나와 타미까지 숨을 죽이고 다음 텍스트를 기다렸다.
-조이님이 접속 해제 되셨습니다.
서로의 눈을 보며 각자의 머리 위에 떠다니는 물음표를 입 밖으로 뱉기 시작했다. 정리되지 못한 말들로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들려는 듯. 불안이 글자를 얻어 중력이라도 생기는 듯.
-자, 정리를 해보자. 지구인이였으면, 텍스트를 읽었을거야. 그리고 지구인이라면 아무것도 없는 이 행성에서 구조 요청을 했겠지? 조이의 우주복 장치를 가지고 있다는 건 조이를 저렇게 만든 생명체라는 건데. 내 말 틀린데 없지?
-지금 그걸 정리하는게 무슨 의미예요? 조이씨 의식과 상관없이 지금 당장 여기서 탈출해야 해요.
-쟤들도 우리 목소리 듣고 겁에 질려 도망가고 있었어. 못 들었어? 후다닥거리는 소리가 들린거 같았는데?
-팀장님, 뇌파 연결로 텍스트 전송이 되는건데 소리가 어떻게 들려요? 지금 농담이 나와요? 조이씨를 공격한 건 저 외계인일 텐데, 겁에 질려 도망가는지, 공격하려고 오고 있는지 어떻게 알아요.
-다섯번의 비행에서 공격적인 생명체를 만난 경험은 없었어. 생각보다 우주는 안전하다고. 그래도 돌아가기 전에 외계 텍스트라도 수집해서 다행이네. 하지만 이걸로 부족해. 멀리서 사진이라도 찍어 와야 해. 한 시간이면 충분해. 한 시간 후 내 텍스트에 아무 반응이 없으면 나머지 대원들은 그대로 지구로 출발한다. 이상.
미나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이제 팀장을 옆으로 째려보며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데이터 수집했는데 왜! 왜 위험한 상황을 더 만들려고 하는 거예요? 나 혼자 우주선 조작 못 해요. 팀장 없이 우리가 어떻게 지구로 가요.
팀장은 귀찮다는 듯이 기계 엔지니어 타미를 가리키며 말했다.
-쟤 잘해. 나랑 다섯 번째 비행이야. 수리만 잘하는 게 아니라 운전도 잘해. 타미, 부탁해. 이 얼간이 집에 가게 도와줘. 본부 과제를 안 하고 갈 순 없어. 그럼, 다음 비행은 없다고 알잖아.
팀장은 우주선 입구에 걸려 있는 우주복을 또 주섬주섬 입으며 마지막 비상식량을 씹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커피 한 모금만 마시면 소원이 없겠네. 거룩하게.
멀쩡한 연료 창을 매만지던 타미가 작은 캡슐 하나를 팀장에게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캡슐에선 익숙한 향기가 났다. 낚아채듯 캡슐을 잡은 팀장은 피식 웃으며 입에 넣고 혀를 굴렸다.
-넌 진짜 괜찮은 놈이야. 그건 알아둬. 지구에 가면 꼭 고백해라.
팀장은 우주선으로 데이터 전송이 가능한 블랙박스를 우주복 앞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곤 뒤도 안 돌아보고 하늘로 손을 휘적거리며 우주선에서 내렸다.
미나와 타미는 팀장이 들고 간 블랙박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팀장의 시선을 전송 받아 보고 있었다. 저벅저벅 거리는 팀장의 발소리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쯤, 팀장은 블랙박스의 줌을 당겼다. 익숙한 물건들, 우주복에 장착되는 칩과 뇌파 인식 장치들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우주복은 흔적도 없이 장치만 있었다. 갑자기 블랙박스 화면이 마구 흔들렸다. 급하게 지나가는 장면들로 봐서 팀장은 뛰고 있었다. 뇌파로 보내는 팀장의 텍스트가 깜박거렸다.
-부대 전원 이륙 준비! 이륙 준비! 물체를 갉아 먹는 생명체 발견. 우주복을 먹는 생명체 발견!
격하게 흔들리던 블랙박스는 순식간에 떨어져 까만 화면에 초점을 찾으려는 사각형만 깜박거렸다. 초점을 잃은 블랙박스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팀장의 가쁜 숨소리와 신음만 블랙박스를 통해 전송되고 있었다. 그때 팀장에게 온 마지막 메시지에 주저하던 타미는 이륙 버튼을 눌렀다.
-이 새끼들 눈코입도 없는 것들이 이게 얼마짜리 우주복인데. 이 자식들이. 타미 도망쳐. 사라지지 않으려면.
이륙하는 우주선에서 우리는 팀장을 찾았다. 팀장은 우주복의 반이 사라진 채 엎어져 있었다. 팀장이 안 보일 정도로 작아졌을 때 우주복이 없는 팀장만 있었다. 타미와 미나는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