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버터플라이 힐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
AFP 자료사진 (2006년 5월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

연일 뜨거운 날씨가 계속됩니다. 아무리 한여름이라지만, 새벽과 저녁의 공기까지 침범한 열기는 심상치 않습니다. 이럴 때 길가에서 만나는 나무 그늘은 생존을 위한 적당한 쉼터가 되어줍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피할 수 있는 나무 밑이 사라져갑니다. 가게 간판을 가린다는 이유로, 낙과가 바닥을 더럽힌다는 이유로, 편의에 방해가 된다는 온갖 이유를 붙여 우리보다 오래 살아온 나무가 잘려 나갑니다. 심지어 얼마 전엔 미술관 옆에 세워진 나무가 독살당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작은 그늘 하나에도 감지덕지해야 할 계절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이기심입니다.
반면, 벌목 당할 위기에 처한 숲을 지키기 위해 60미터 높이의 나무 위에서 738일을 버텨낸 사람이 있습니다. 28년 전의 일입니다.

스물세 살의 여성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Julia Butterfly Hill). 캘리포니아의 레드우드 숲을 거대한 벌목 계획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그는 1,000년이 넘는 세월을 견뎌온 레드우드 '루나' 위로 올라갔습니다. 환경단체의 연좌시위에 자원해 잠시 올라갔지만 어지러움으로 내려와야 했고, 몇 주 뒤 다시 마음을 다잡고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 걸음이 무려 2년이 넘는 긴 투쟁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 시위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면 738일이나 버틸 이유가 없었겠지요. 벌목회사는 그를 끌어내리기 위해 헬리콥터를 나무 근처로 저공 비행시켜 발판을 뒤흔들거나, 나무 밑에 요원을 배치해 식량 공급을 차단하거나 주위 나무들을 베어내며 공포감을 조성했습니다.
더 힘들었던 것은 자연 그 자체였습니다. 힐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은 2미터 남짓의 작은 방수포 천막 하나였는데 상공 60미터에서 몰아치는 칼바람과 태풍, 사정없이 내리쬐는 폭염과 비바람을 맨몸으로 견뎌내야 했습니다. 자그마치 빌딩 20층 높이. 그 제한된 공간에서 온갖 극한 상황을 홀로 맞았습니다.

1998년 고공 시위 중인 줄리아 버터플리아 힐 AFP 자료사진

1999년 12월, 738일 만에 벌목회사가 손을 들었습니다. 루나와 그 주변 반경 60미터 안의 나무들을 영구히 보호하겠다는 합의서에 서명한 것입니다. 비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2미터 발판 위에서 버텨온 시간이, 마침내 숲을 지켜냈습니다.

힐은 어떻게 이 레드우드 숲에 자신의 청춘을 던졌을까요?
1996년, 대형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긴 그는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삶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지친 몸과 마음을 다독여주던 곳이 바로 레드우드 숲이었습니다. 자신이 위로받고 구원받았던 숲이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베어져 나간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힐은 망설임 없이 행동에 나섰습니다.

이번 글진 '명 프로젝트'에서 줄리아 힐의 서사를 골라 든 것은, 얼마 전 보았던 한 인터뷰의 잔상이 강렬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돈을 많이 벌면 강남 한복판의 빌딩을 사서 무너뜨리고 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
"자연은 아름답기 때문에 그 이유만으로도 보호할 가치가 충분하다."라고 말하던 조경 수목 플랫폼 '루트릭스' 안정록 대표. 조경 수목이라는 사업은 나무를 상품으로 다루는 일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업의 논리와는 달리, 나무를 효용이 아닌 '존재 그 자체'로 보는 그런 시선이 가능해진 건 힐과 같은 이들의 노력 덕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숨이 턱 막히는 계절의 한복판, 길을 걷다 만나는 작은 그늘이 이전과 조금은 다르게 다가옵니다. 짧은 선선함 뒤에 남아 있는 이 땅의 수많은 '루나'들이 묵묵히 내어주는 그늘, 그리고 그것들을 지켜낸 사람들의 서사가 모두에게 기억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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