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시 창고-시 못쓰는 밤
예쁜 유리잔 속에 잘 영근 달 하나 담가
컴퓨터 앞에 놓아두고
. . .
아무 말도 고이지 않은 맑은 수면
. . .
키보드 위에 가지런히 모아놓은 손가락들
꼼지락꼼지락 눈치만 보다
슬그머니 거리를 넓힌
검지 끝에 시작되는 세상 구경
부업삼아 회사 차려 폐업까지 시켜보고
갈 길 잃은 내 마음 심리 파악 완료
주인 찾은 강아지 소식에 가슴 쓸어내리다가
아차, 당근에 팔 물건 사진도 찍어야지
금강산도 식후경, 전국 식도락 여행을 빼놓으면 쓰나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제일인데
화면에 붙어버린 내 거북목을 어쩐담
찰랑이는 백지까지가 만리쯤은 되는지
돌아 돌아 겨우 띄워 놓은 첫 줄 위에
'날 좀 보소... '
줄지어 선 글자들 사이
깜빡이다 사라지고,
떠올랐다 가라앉는 커서
이러쿵저러쿵 어째저째 모여든 말들은
마침표를 찍지 못한 채
파일 더미 속으로 스며들어
깊은 밤만 되면 슬그머니 헤맨다는,
반토막난 감정들이 떠다니는
전설의
시 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