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피고 지고

벚꽃이 피고 지고
Photo by Jei Lee / Unsplash

고등어조림이 뚝배기 위에서 지글지글 끓고 있었다. 내가 생선 가시와 씨름하는 동안 앞에서는 트럼프와 네타냐후가 짜고 벌인 전쟁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함께 강습을 듣는 사이였다.

“일부러 분유 공장 같은 데만 골라서 공격했다잖아.”

“선생님, 그거 어디서 봤어요? 아무리 트럼프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해도 미국이 그렇게 만만한 나라가 아니야. 미국 사람들 프로테스트 하는 거 보세요. 유튜브에서 이상한 거 보면 안 돼. SBS나 KBS 같은 걸 봐야지.”

뜻밖의 일갈에 당황했는지 내 앞에 앉은 이는 조용히 “나중엔 다 진짜로 판명 나더라”며 입을 비죽거리며 알탕 속 동태알을 입안으로 가져갔다. 나는 말없이 동태알이 그의 입안에서 터지는 광경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그가 음미하는 것은 동태알 터지는 식감일까. 알을 터트리며 반격을 준비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근데 학교가 공립이었어, 사립이었어?”

알탕에 집중하던 이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유학갔을 때 학생들이 선생 앞에서 키스하는 모습에 당황했다는 이야기에 대한 질문이라기엔 뼈가 있었다. 나는 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주의를 기울이며 무조림을 혀로 뭉개고 있었다. 이제는 저 사람의 공격 타이밍이군. 조림 때문인지 흥미진진한 상황 때문인지 모를, 입안에 침이 돌았다. 답하는 사람도 질문하는 사람도 모두가 아는 귀결. 상대가 망설이며 “공립”이라고 답하는 순간 1초도 안 돼 대꾸가 튀어나왔다.

“아, 그러니까 그렇지. 사립이었으면 덜했을 텐데.”

당신이 유학 간 학교가 공립학교라 학생들 질이 떨어진다는 편견도 모자라 대놓고 상대의 계급까지 싸잡아 떨어뜨리는 저 기막힌 되치기. 나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무시와 편견의 향연에 미각보다 더한 쾌감을 느꼈다. 소설 속 캐릭터가 완성형으로 현시한 것 같았다.

미국에서 공립학교를 다녔다는 사람은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표정이 썩어들어가든 말든 복수에 성공한 사람의 얼굴은 개운해 보였다. 그 광경을 목도하고 재미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면서도 뒷맛이 씁쓸했다. 이유가 뭐였을까.

이 갈등의 소재는 미국이 벌인 전쟁이었다. 갈등 당사자 두 사람 포함 누구도 폭격으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심지어 제3자인 나조차도 전쟁으로 희생된 무고한 목숨에 대해 떠올리지 못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말싸움에 집중한 채 촌극이 꽤 볼만하다고 생각했을 뿐.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니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누군가는 “너무 예쁘다”를 연발했고 누군가는 “조금 있으면 금방 또 다 떨어지겠네”라며 무상함을 짚었지만 나는 다른 것을 떠올렸다. 2014년부터 벚꽃이 필 때면 늘 떠올리는 이름, 세월호. 유가족의 발언 중, ‘벚꽃 피는 게 싫었다’는 말이 그 이후로 가슴에 박혀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무뎌지는 아픔도 있겠지만 어쩐지 벚꽃이 피는 계절에는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그 부채감마저 잃으면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마지막 염치마저 사라질 것 같았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 말에 섞인 자조의 습관은 왜 이토록 끈질기게 붙어있는 것인지. 전쟁 이야기보다 앞에서 벌어지는 촌극에 집중했었던 나는, 4월에 피는 지긋지긋한 벚꽃과 다를 게 무엇일까. 때를 모르고 피고 지는 내 안의 벚꽃만큼 무심한 것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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